Text2024. 7. 6. 22:16

 나혜석 답사를 마치고 돌아와서도 며칠 간 나혜석 생각만 했다. 그리고 함께 답사를 다녀온 선생님들 생각도 많이 했다. 밤새 나혜석 이야기에 눈이 반짝반짝하시던 선생님들... 그 순간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60-70세 되신 원로 작가님들께서 드로잉북을 손에서 놓지 않는 모습을 보며, 진심으로 감동받기도 했다. 나는 왜 드로잉북을 까먹고 가져가지 못했는가... 정신을 어따두고 그랬을까... 생각하며, 기록이 가장 중요한데 사진만 찍어두고 자필 기록을 많이 못한게 내심 아쉬웠다.(예전에 그렇게 드로잉 많이 하고 다니던 나 어디로 갔지? 지하철 드로잉도 많이 했는데. 지금 내 드로잉북 어디갔니...) 그렇게 나혜석 관련 영상을 찾아보고 책을 읽고 있던 와중에 기획자에게 연락이 왔다. 서울아트가이드 북에 실릴 나혜석 답사기를 써야 하는데, 함께 답사를 다녀온 선생님들께서 나를 추천해주셨다고. 난 이럴때마다 너무 너무 쓰고 싶으면서도 한발 뒤로 물러나서 '내가 과연 잘 쓸 수 있을까' 의심을 먼저 하곤 한다. '나'에 대해 절대로 관대해 지지 않으려는 몸부림이 도져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아주 오래 고민하고, 결정을 미루고 있던 차에 내가 머뭇거리는 걸 관장님이 아셨는지... 관장님께서 연락을 주셔서 이렇게 저렇게 쓰면 된다고 말씀해주셨고, "그럼 일단 써보겠습니다!" 하고 용기를 냈다. 그 다음날부터 도서관에 박혀 나혜석 글을 주구장창 읽었다. 

 나혜석 글을 쓸 때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작가인 내가 느끼는 것, 그리고 화가로서의, 예술가로서의 나혜석에 대한 나만의 글을 쓰자는 것이었다. 쓰다보니 분량이 엄청 늘어났고, 나중에는 그걸 1페이지로 줄이느라 애를 먹었다.

 글을 쓰는 도중에 갑자기 서재에 꽂힌 2016년도 다이어리를 펼쳐보게 되었다. 그때 왜 그 다이어리에 손이 간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는데, 결과적으로 보면 이 행동은 정말 꼭 필요한 것이었다. 8년 전 나는 그 다이어리에 영화 감상문 같은걸 참 많이도 적어놨었는데 거기엔 [장미의 땅: 쿠르드의 여전사들] 감상평이 적혀있었고, 여성의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여전사들의 이야기에서 엄청난 감흥을 받은 이야기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와! 나는 지금 한국의 여전사 나혜석에 대한 글을 쓰고 있는데! 바로 이거야! 싶어 이 내용을 꼭 글에 넣기로 했고, 가장 내 마음에 드는 문장이 완성 되었다. 어릴적부터 항상 미래의 나를 위해 기록을 해둬야 한다며 그렇게 끄적여놨었는데, 그게 이렇게 쓰일줄이야. 기록쟁이었던 과거의 내가 참 기특했다. 서울아트가이드 책에 실릴 나혜석의 글은 8월이나 9월호에서 읽을 수 있다.^^ 이런 소중한 기회를 주신 선생님들께 너무 감사드린다. 진심으로 너무 기쁘고 행복하다. 날 추천해주셨던 정정엽 선생님께서는 내 글을 읽으시고, 이렇게 잘 나올 줄 알았다며 창창한 후배님이 있어 든든하다고 하셨다. 감개무량.ㅠㅠ 그리고 수원 박물관에 딱 3권 남은 나혜석 도록을 전부 다 구매해뒀었는데 그 중 한권을 나를 줘야 겠다고 하셨다. 너무 감동받아부렀다. 좋은 기회로 좋은 작가 선생님들과 답사를 다녀온것도 황송한데, 이렇게 내 글이 서울아트가이드에까지 실리게 되다니. 올해 상반기의 가장 즐거운 일을 꼽으라면 바로 이것이다! 글을 보내고, 너무 너무 행복해서 내 몸이 힘든것도 몰랐다. 요즘 그냥 몸도 마음도 다 바빠서 정신 없었는데 그 와중에도 나혜석만 생각하면 기쁨이 몰려왔다. 내년에 어떤 작품이 나올까. 우리는 어떤 전시를 하게 될까. 마냥 신이 난다.

 

Posted by goun
Music2024. 6. 20. 12:16
Posted by goun
books2024. 6. 19. 15:08

나는 정보라 작가님이 어떤 생각을 하고 삶을 살아가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취미가 데모이고 부조리한 상황들에 다한 항의를 담고 싶으셨구나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 스스로 SF작가라고 말하신 적도 없으니 그런 쪽으로는 기대를 하지않는것이 더 나은 것 같기도 하다. 어쨋거나 부커상 후보에도 오르셨고, 책도 자주 내시니까 열심히 전업작가 생활을 하시는구나 했는데, 전업이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걸 이번 책을 통해 알았다. 그래서 그냥 내가 읽은 글로써만 이분의 작품들을 이해하고 쓰는 감상평이라 하겠다.
처음 몇몇의 단편을 읽고서 엄청 실망스러웠다. [여자들의 왕] 그 때의 실망감과 비슷했다. 이유는, 이런 중대하고 가볍지 않은 소재들을 가지고 이렇게 밖에 표현하지 못하나?였다. 소재를 그저 툭 던져놓고서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쓴 것 같은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문장 자체를 엄청 고민하고 퇴고하며 쓰는 게 아니라 투쟁과 운동에 몰입된 자신과 동물권 관련된 이야기를 그저 툭 던져놓는 느낌.(던져놓는게 뭐 어때?라고 말 한다면 할말 없지만 나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하는 수준의 글빨이었다.) 소재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나 이야기의 구성에 있어 탄탄한 구조가 돋보이는 것도 아니고, 문장들도 성의 없이 의식의 흐름대로 나열되어 있다. 뭔가에 꽃히면 바로 그냥 파바박 하고 빠르게 써 내려가고 뒤 안돌아보는 느낌이다. 문장은 정제되어 있지 않고, 어떤면에서는 거칠고 단순하다. 경북지역의 외국 투자자 공장 부지에 대한 이야기들도 몇문장으로 그냥 끝내버리는 패기. 답답하게 계속 검은 덩어리 얘기만 주구장창 나오다가 결국 그게 고래가 되어 자신들의 외계 바다로 들어갔다는 결말. 해파리는 또 어떻구? 해파리에서는 분명 죽음과 삶에 대한 고찰이 있었다. 그래서 이건 좀 읽어볼만 한가 싶다가... 일기처럼 쓰여진 작가의 말을 읽고 또 한번 실망. 해파리라는 소설에서 어디에 '정신 감응'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오죠? '정신 감응'이라는게 조금이라도 설명이 되었다면 이해를 할텐데, 그렇게 단어 혹은 글로 대충 툭 써놓으면 끝나는 그런 둔감함이 나는 너무 불편한 것이다. 좀 더 깊이 있게 다룰수는 없는건가? 더 예민하게 바라볼 수는 없는건가? 왜 선과 악은 그렇게 단순하게 그려지고 이런 어두운 소재들을 가볍게 다루어야 하지? 내가 창작을 하는 사람이라서 더 예민하게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난 이러저러한 이유로 이 작가님이 과대평가를 받고 있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아니면 저주토끼 번역가님의 실력이 매우 뛰어나다거나…)
그런데 사실 이런건 다 개인의 취향 차이일지도 모르겠다. 어떤 분은 정보라 작가님의 글이 재미있기 때문에 좋다고 하고, 어떤 분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방식에서 자기 자신을 밀어붙이는 힘이 있다고도 하는데, 내 기준에서는 신선한것도 없고 재미도 없고 산만하고 가볍다고 느낀다. 이건 아주 주관적인 감상이다. 아주 솔직하게는… 정말 좋은 작가들이 많은데 그런 작가들은 과소평가 되고, 누군가는 전업으로 글을 쓰지 않으면서도 과대평가 되는 현실이 싫은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내 시간을 들여 감상평을 남기고 있네. 이것 또한 작가님에 대한 애정일까… 강의하고 데모하면서 소설을 쓴다는 건 어쩌면 더 어려운 일이었는지도 모르는데.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것보다 무엇이라도 남기고자 하는 그 열정을 내가 잘 몰랐을지도. 아무튼 나는 또 다음 책이 나오면 읽어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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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oun
books2024. 6. 19. 15:07

박문영 작가님의 이전 책에서는 죽음에 대한 심층적인 탐구가 보였다면, 요즘은 인간의 탄생과 그로인한 육아의 노동을 넘어 선 사랑과 이해(애착)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시는 것 같다. 지금까지의 관념들은 싹 다 버리고, 전복하고, 비틀면서 다채로운 구조로 이야기들을 만들어낸다. 문장 하나하나 얼마나 많은 퇴고 끝에 완성을 했을까… 얼마나 연구를 많이 하셨을까 그런 고심의 흔적이 엿보인다. 주인공들 뿐만아니라 그 주변 것들에까지 다양한 연구와 노력의 흔적들이 느껴지니 말이다. 하나라도 가벼이 넘기지 않고 어떻게하면 나의 상상을 현실처럼 그려낼 수 있을지 고민하는 그 의지! 그리고 매번 결론은 상상 그 이상이다.

“연음은 땅에 누워 몸을 최대한 웅크렸다. 그는 무주지 사람들이 처음에 품은 질문을 사랑했다. 열린 강령, 양육 수칙보다 더 자주 중얼거리던 말이었다. 자신이 아는 것 이상을 꿈꾸지 못하는 인간이 인간일까. 자신과 이미 닮은 것만을 사랑하는 존재가 아름다울까. 연음은 그런 물음을 조용히 곱씹어보던 시간이 좋았다.” -p.40

“지구가 열악한 행성이 된 이유를 기후 변화 때문이라고 답할 수는 없었다. 그건 누군가 죽은 이유를 심정지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했다. 그러니 질문을 이렇게 바꿔야 했다. 지구가 열악한 행성이 될 때까지 누가, 어떻게 살았나. 왜 그렇게 지냈나.”
-p.41

아직 이 책을 다 읽지 못했지만, 나는 박문영 작가님의 책들이 너무 좋다. 그래서 다 읽지도 않았으면서 뭐라도 남겨놓고 싶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이번 SF 독서모임에서도 이 책을 추천했고 바로 다담주에 읽고나서 토론하기로 했다. 어떤 이야기들이 나올지 기대된다. 

Posted by goun
Travel2024. 6. 17. 16:25

Posted by go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