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혜석 답사를 마치고 돌아와서도 며칠 간 나혜석 생각만 했다. 그리고 함께 답사를 다녀온 선생님들 생각도 많이 했다. 밤새 나혜석 이야기에 눈이 반짝반짝하시던 선생님들... 그 순간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60-70세 되신 원로 작가님들께서 드로잉북을 손에서 놓지 않는 모습을 보며, 진심으로 감동받기도 했다. 나는 왜 드로잉북을 까먹고 가져가지 못했는가... 정신을 어따두고 그랬을까... 생각하며, 기록이 가장 중요한데 사진만 찍어두고 자필 기록을 많이 못한게 내심 아쉬웠다.(예전에 그렇게 드로잉 많이 하고 다니던 나 어디로 갔지? 지하철 드로잉도 많이 했는데. 지금 내 드로잉북 어디갔니...) 그렇게 나혜석 관련 영상을 찾아보고 책을 읽고 있던 와중에 기획자에게 연락이 왔다. 서울아트가이드 북에 실릴 나혜석 답사기를 써야 하는데, 함께 답사를 다녀온 선생님들께서 나를 추천해주셨다고. 난 이럴때마다 너무 너무 쓰고 싶으면서도 한발 뒤로 물러나서 '내가 과연 잘 쓸 수 있을까' 의심을 먼저 하곤 한다. '나'에 대해 절대로 관대해 지지 않으려는 몸부림이 도져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아주 오래 고민하고, 결정을 미루고 있던 차에 내가 머뭇거리는 걸 관장님이 아셨는지... 관장님께서 연락을 주셔서 이렇게 저렇게 쓰면 된다고 말씀해주셨고, "그럼 일단 써보겠습니다!" 하고 용기를 냈다. 그 다음날부터 도서관에 박혀 나혜석 글을 주구장창 읽었다.
나혜석 글을 쓸 때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작가인 내가 느끼는 것, 그리고 화가로서의, 예술가로서의 나혜석에 대한 나만의 글을 쓰자는 것이었다. 쓰다보니 분량이 엄청 늘어났고, 나중에는 그걸 1페이지로 줄이느라 애를 먹었다.
글을 쓰는 도중에 갑자기 서재에 꽂힌 2016년도 다이어리를 펼쳐보게 되었다. 그때 왜 그 다이어리에 손이 간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는데, 결과적으로 보면 이 행동은 정말 꼭 필요한 것이었다. 8년 전 나는 그 다이어리에 영화 감상문 같은걸 참 많이도 적어놨었는데 거기엔 [장미의 땅: 쿠르드의 여전사들] 감상평이 적혀있었고, 여성의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여전사들의 이야기에서 엄청난 감흥을 받은 이야기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와! 나는 지금 한국의 여전사 나혜석에 대한 글을 쓰고 있는데! 바로 이거야! 싶어 이 내용을 꼭 글에 넣기로 했고, 가장 내 마음에 드는 문장이 완성 되었다. 어릴적부터 항상 미래의 나를 위해 기록을 해둬야 한다며 그렇게 끄적여놨었는데, 그게 이렇게 쓰일줄이야. 기록쟁이었던 과거의 내가 참 기특했다. 서울아트가이드 책에 실릴 나혜석의 글은 8월이나 9월호에서 읽을 수 있다.^^ 이런 소중한 기회를 주신 선생님들께 너무 감사드린다. 진심으로 너무 기쁘고 행복하다. 날 추천해주셨던 정정엽 선생님께서는 내 글을 읽으시고, 이렇게 잘 나올 줄 알았다며 창창한 후배님이 있어 든든하다고 하셨다. 감개무량.ㅠㅠ 그리고 수원 박물관에 딱 3권 남은 나혜석 도록을 전부 다 구매해뒀었는데 그 중 한권을 나를 줘야 겠다고 하셨다. 너무 감동받아부렀다. 좋은 기회로 좋은 작가 선생님들과 답사를 다녀온것도 황송한데, 이렇게 내 글이 서울아트가이드에까지 실리게 되다니. 올해 상반기의 가장 즐거운 일을 꼽으라면 바로 이것이다! 글을 보내고, 너무 너무 행복해서 내 몸이 힘든것도 몰랐다. 요즘 그냥 몸도 마음도 다 바빠서 정신 없었는데 그 와중에도 나혜석만 생각하면 기쁨이 몰려왔다. 내년에 어떤 작품이 나올까. 우리는 어떤 전시를 하게 될까. 마냥 신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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