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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3.05.26 나의 아버지, 전각가 서용철. 3
  2. 2023.04.11 작업의 이유
  3. 2022.10.14 큰 마음 1
  4. 2022.08.04 평온을 구하는 기도
  5. 2022.07.25 작가와 돌봄의 사이
Text2023. 5. 26. 02:11

부모님이 시골로 내려가신지 벌써 20년이나 지났다. 부모님의 시골생활은 처음부터 정말 녹록치 않았는데, 아버지의 전각 박물관 운영이 잠시 중단되기도 했고, 먹고사는 문제로 간간히 일을 나가시기도 했고, 박물관 천장에서 물이 새거나 집 안의 수도가 터져 작은 공사와 작품들 보수로 엄청 고생도 많이 하셨다. 이사도 무지 많이 하셨고, 그 사이 아버지의 6000점 넘는 돌들이 옮겨지다가 부숴지거나 금이 가기도 했다. 다시 터전을 잡은 영주에서도 또 몇번의 이사 끝에 작품들을 잘 보관할 수 있는 공간을 찾으셔서 얼마전에야 그 공간을 볼 수 있게 됐다.

얼마 전, 만성적으로 불편해하시던 아버지의 부비동 쪽 코 수술을 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엑스레이를 찍다가 폐에서 2.7센치 정도 되는 암을 발견했다. 두달 전 다른 곳에서 찍었던 엑스레이에서는 아주 깨끗했다고 했는데. 그 두달 사이에 그렇게 빨리 커질 수 있는 것이었는지 의문이 들면서 이런 암 조기발견은 너무나 큰 천운이라는 생각에 다행이라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내가 시험관을 계속 실패하며 나에게 오지 않은 그 운들이 아버지에게 가서 이렇게 천운을 누리시는 거라면 전혀 슬프지 않다고 느꼈다. 내가 병원에 생필품과 반찬들을 이고지고 가져갔더니, 그 돌덩이 같이 무거운 걸 바리바리 싸들고 온 딸이 안쓰러웠는지… 아버지가 병상에서 내게 고생했다고 문자를 보내주셨다. 그런거 참 안보내시는 분인데. 나는 아기도 잘 키우고 싶고, 착한 딸도 되고 싶고, 작업도 잘하고 싶고 그렇지만....뭐니 뭐니 해도 건강이 가장 최고니까! 아버지의 코 수술은 잘 끝났고 이제는 폐 수술을 앞두고 있다. 이런저런 검사들을 하고 난 뒤, 5일만에 병원 퇴원을 하며 함께 시골에 왔다. 작업장에도 들렀는데, 아프셨는데도 그 사이 이렇게 정리를 잘 해두신걸 보니 참 몸을 움직이는걸 좋아하시는 건 여전하다 싶었다. 나도 아버지의 그런 면들을 닮았다.

할아버지의 작품을 처음 보는 아기가 돌에 엄청난 관심을 보였다. 아래에 깨진 돌들을 보고 있는 할아버지와 손녀.
이 흰색 단 아래에는 돌들이 가득 가득 쌓여있다. 아직 그 돌들은 바깥 구경을 못하고 있는 상태다.
아빠의 작업장에서 발견한 옛날 잡지. 지금이랑 비교하니 느낌이 너무 다르다. 울 아빠 너무 많이 늙어버리셨네...ㅠㅠ
요즘은 찾기 어려운 상아. 아버지는 내 도장도, 울 아기의 도장도 모두 상아에 새겨주셨더랬지. 귀한 도장이다.
해남 옥돌인데, 일일이 다 갈고 다듬어서 만드신 도장이다. 아버지가 아주 오래전 해남 옥돌을 사들이기위해 아파트를 팔고 그 돈으로 억대의 돌들을 다 사들이셔서 해남에는 옥돌이 없다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있는데, 그건 루머가 아니고 정말 사실이다.ㅎㅎㅎ 아버지가 해남에 있는 돌들을 다 사셔서 이제는 구하기 힘들다고 한다. 6000점이나 되는 전각 작품들이 다 그 해남옥돌로 만들어졌다.
이런 돌들은 중국산 돌이다. 해남 옥돌과는 차이가 나는 돌들이지만 이 또한 구하기는 쉽지 않다.
아버지는 <성서> 신약과 구약을 6년만에 돌에 새기셨고, 최단기간 최다전각으로 세계 기네스를 보유하고 계시다. 작품들 사이에는 아버지의 명예가 소박하게 놓여있다.
이 돌이 금보다 비싼 돌이라는 "계혈석"이다. 이름은 마치 닭의 핏빛 같다고 해서 붙여진 것인데, 붉으면 붉을수록 훨씬 가치가 높다고 한다.

아빠의 칼들들 보고 있으니 시간의 무게가 느껴지네. 아버지가 오래 오래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그래서 아버지가 작업도 계속 하시고, 또 아버지의 작품도 많은 분들이 보셨으면 좋겠다. 이제 곧 수술을 앞두고 있어서 걱정이 많다. 수술이 잘 되서 이전보다 더 건강해진 모습을 뵐 수 있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한다. 아버지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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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oun
Text2023. 4. 11. 13:00

작업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열 네살의 내가 무엇때문에, 무엇에 이끌려 그렇게 부모님께 각서를 쓰고서까지 미술을 시작하게 된 걸까.

그림이 너무 좋아서? 뭔가를 만들고 싶어서?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이 커서? 내 마음의 중심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

마음을 가득 채우는 것.

출렁거리고 넘치고 확 쏟아버리게 하는 것.

다른 이야기들이 생성되는 것.

서로의 마음이 통하는 것.

무너지고 다시 일어서게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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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oun
Text2022. 10. 14. 16:33

생각 정리가 어렵고 머릿속이 복잡해서 글을 써야지 하고 펼쳐두고도 제대로 글을 못썼는데, 오늘 나는 내 작업에 대한 생각을 정리했다. 삶을 살아가며 죽음을 생각하고, 죽음을 일상에서 떠올리는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왔는데, 이제는 내 삶에서 사랑을 이해하는 과정도 죽음을 이해하는 것과 똑같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하나의 생명을 키우며 뼈져리게 느낀다. 이제는 사랑을 이해하는 과정이 녹아든 작품을 그려보고 싶다.

최근에 운동을 시작했고, 두달만에 6킬로 정도 감량했다. 살이 빠지니까 허리도 덜 아프고, 이전에 버리려고 했던 옷들이 다 들어가서 돈이 굳었다. 허리 디스크 재활치료와 건강을 위해 좀 더 천천히 나를 돌봐가며 작업을 하려고 한다. 재단 기금 공모가 곧 끝나는데, 그걸 썼다 지웠다 하는 나. 이걸 지금 작성하는게 좋을지 아니면 조금 더 나를 돌보고 나중에 하는게 좋을지 고민하다가 결국 파일을 다 삭제해버렸다. 급하게 하지 말자... 기금 공모는 언제든 있는거니까. 나의 삶이 변화 된 만큼 자연스럽게 나의 작업이 변화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작업을 계속 하기 위해서 그간 좋아하던 일도 포기해야만 했다. 아무래도 타투는 시작을 하는 순간부터 몸이 너무 힘이들고, 앞이 안보인다. 이걸 하면 끝-특히 내 몸상태-이 어떻게 될지 알기에 그걸 알면서 내 몸을 망치는게 너무 두려웠다. 일단 많은 고민끝에 그것을 접기로 결정했고 마음에서도, 환경적으로도 덜어내고 정리하는 중이다. 뭐든지 참 쉽지 않다. 그래도 나는 내가 지금 할 수 있는것을 한다. 내 마음에 사랑이 가득해서 아가를 볼때마다 행복하니까 그 행복의 순간을 절대 놓치고 싶지 않다. 내 삶에, 내 작업에 그 생명의 온기가 너무 가득해져서 이제는 이전과 똑같이 작업할 수 없게 되버린 것이다. 이 차곡 차곡 쌓여가는 무수한 감정들을 어떻게 풀어낼지 기대도 되고, 내 인생이 어떻게 변해갈지도 궁금하다. 후회는 없다. 온전한 사랑의 힘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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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oun
Text2022. 8. 4. 14:16

평온을 구하는 기도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을 평온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은혜를 주시고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를 주시고

그리고 그 차이를 깨닫게 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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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oun
Text2022. 7. 25. 12:26

# 자신의 삶과 육아를 철저하게 분리시켜 작업하는 작가들도 있지만 나는 육아 자체의 경험이 내 삶에서 너무 큰 부분이었기에 분리시켜 작업할 수가 없었다. ‘돌봄’의 경험이 내 삶에 주는 영향을 계속 생각하고 있었기때문에 작업에 스며들듯이 그렇게 신작들이 나오게 된 것이다.

육아에 대한 작업을 해야지가 아니라 내가 삶에 대해 갖고있던 가치관, 큰 틀, 절대 변하지 않을 것 같던 생각들이 180도 변화하게 된 경험들이 자연스레 작업으로 옮아간 것이다. 엄청난 변화가 아닐 수 없었다. 모성애를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도, 그 시작이 육아에서부터 시작한 것도 아니지만 결국 나는 그 과정에서 느낌 많은 것들을 내 그림에 넣으려 했다. 그게 욕심이라면 욕심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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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o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