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Egypt2010. 7. 11. 02:16


고요한 골목길에서 너덜해진 핑크색 원피스를 입은 아이가 나타났다. 자신을 찍고 있는 내 눈을 전혀 바라보지 않은 채, 계단을 손으로 쓸거나 허공을 바라보거나 빨래가 널어져 있는 담 너머를 응시하곤 했다.

난 혼자하는 여행이 좋았다. 지독한 외로움 끝에서 나는 무념무상의 상태가 되곤 했으니까.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는 상태의 나는 눈으로 들어오는 모든 것들을 있는 그대로 본능적으로 받아들였으니까. 밤이되면 큰 그림자들이 나를 덮쳤고, 타인들은 거대한 담장을 이루었다. 그것도 장미꽃 향기 폴폴나는 가시 덩쿨로 만들어진 담장. 오래된 벽 안에 둥지를 튼 새들이 내 머리위를 날아다니고, 나무들은 집 한채를 삼켜버리기도 했다. 사람보다 열배정도는 커 보이던 초코송이 모양의 짚풀더미, 거리의 인부들, 골목 어귀에서 차이를 들고 돌아다니는 꼬마 차이왈라들, 나일강 위의 까마귀 떼들... 나만 그 골목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으로 그곳을 버티고 있었다.

'Travel > Egypt'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교감  (0) 2010.08.01
카이로 카이로 카이로  (0) 2010.07.16
기억, 발걸음  (4) 2010.07.02
알렉산드리아의 밤  (0) 2010.06.28
프란시스 베이컨이 생각나는 풍경  (10) 2010.06.26
Posted by goun
Travel/Egypt2010. 6. 12. 15:12

바네사 비크로프트의 다큐멘터리 영화 '예술가와 수단 쌍둥이'를 보았다. 평소에도 바네사의 사진작업들을 꽤 흥미롭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번 수단에서의 작업을 보고나니 더 인상적이었다. 그녀의 작업은 예전보다 훨씬 덜 정치적이지만 뭔가 한마디로 정의내리기 쉽지 않은 내용들과 압축된 에너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다. 입양에 대한 그녀의 생각들을 추진해나가는 모습, 그리고 그 상황에서 그녀가 작업에 담으려한 메시지들, 입양이 좌절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극복하고 작업으로 풀어나가는 모습이 참 감동적이었다. 갸날프고 예민해보이는 그녀의 내면에서 발동하는 본질적인 에너지. 그것은 내게 필요한 부분이요, 가장 닮고 싶은 부분중 하나다. 그리고 그녀가 작업에만 몰두할 수 있게 하는 주변의 환경들도 매우 부러웠다.


나는 여행 중 수단 사람들을 몇몇 만났다. 아스완에서 정착해 살고 있는 사람들의 60~70% 이상이 수단 사람들인데, 그들은 자신들의 문화와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고 애썼다. 잠시나마 이집션이라는 말을 듣는다치면 의례 얼굴이 구겨지고 '나는 이집션이 아닌 수단 사람이다. 누비안이다.'라고 말한다. 그건 그들에게 남은 마지막 자존심의 표현같았다. 수단에서는 젊은 이들이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다른 곳으로 많이 떠난다. 수단이라는 나라에는 국민들을 위한 국가적 안보도, 그들의 희망도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여자들과 어린아이들은 그 안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위해 애쓴다.

내가 만난 수단 사람들 중에는 아스완에 있는 필레섬으로 가기위해 펠루카를 운전하며 돈을버는 누비안이 있었는데, 그들은 그렇게 일해도 고작 일인당 이집트 파운드로 10~20파운드(약 2000원에서 4000원)를 번다. 바람이 반대방향으로 불때는 아무리 노를 저어도 제자리다. 30분~1시간을 꼬박 저어야 힘겹게 나일강을 건널 수 있다. 날도 더워서 이들의 이마에는 땀이 금방 뚝뚝 떨어졌다. 처음에는 이렇게 우리랑 잘 놀다가 나중에는 팁을 좀 무리하게 강요하기도 해서 아주 밝은 모습으로 헤어지지는 못했다. 이들에게 5파운드..10파운드...(500원..1000원)의 팁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알고 있었다. 그 돈을 아끼기 위해 이들과 언쟁을 하거나 얼굴을 구기고 싶지 않았다. 팁을 많이 줄수는 없었지만, 노를 젓는 캡틴이 내 눈빛을 읽었으리라고 믿고 싶다.
이들이 우리에게 알려준 노래는 "압두르기봐~ 헤나헤나~" 인데, 이 노래의 뜻이 "너무 좋아~ 가자가자~" 라며 내게 알려주어서 이 노래를 알게 된 후에 누군가가 음식점에서 이 음식어때? 라고 묻거나 기분이 어떠냐고 물으면 나는 '압두르기봐~"라고 말하면서 좋다는 시늉을 했다. 그때마다 사람들의 반응은 갸우뚱?이었다. 나와 내 친구를 이상하게 쳐다보거나. 나중에 알고보니, 압두르기봐는 아스완의 또라이 중에 상 또라이!!! 의 이름이고, 헤나는 내 팔에 있는 문신을 보고 이들이 즉흥적으로 지어낸 가사였다! 이 사실을 어떻게 알았냐면, 에드푸로 가는 펠루카를 탔을 때, 내가 밤에 압두르기봐 노래를 불렀더니 그 펠루카 캡틴이 배를 잡고 뒤로 꼬꾸라지면서 그 노래 어디서 배웠냐고 배꼽을 잡는거다. 그래서 이 동영상을 보여주었는데, 이 둘은 그 캡틴의 친구였고 그때 압두르기봐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도 알게됬다. 우리에게 귀여운 사기를 친 이 두명의 수단인들. 압두르기봐 사건이라고, 우리는 절대 잊을 수 없는 웃긴 일이었다. 그리고 압두르기봐 때문에 두번째 펠루카 캡틴은 이틀동안 나만보면 두시간동안 배꼽을 잡고 쓰러지기도 했다. 나는 '저사람 웃다 죽겠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나중에는 얼굴만 봐도 웃음이 터져서 내 배꼽도 사라질 뻔 했다!ㅋㅋㅋ 아 웃긴다 진짜. 요리하면서도 낄낄..아침에 배에서 자고 일어나서도 낄낄..아무튼 나와 캡틴은 진짜 끊임없이 웃었다. 자, 그럼 그 압두르기봐 음악을 즐겨볼까나. 흐흐


잊지못할 압두르기봐 사건을 만들어준 두 수단인들. 이들의 노래는 진짜 잊지 못할꺼다. 그리고
나중에 내가 압두르기봐가 누군지 알게되었다는 것도 이들은 모르겠지? 풉. 난 다 알고있다구!



계속 웃던 캡틴. 그렇게 깔깔거리고 오랫동안 웃다가 숨도 못쉬고 말이지..그렇게 웃는 수단인의 모습은 진짜 코믹 그 자체였다.
이들은 내게 있어서 이집트에서 만난 가장 특별한 수단인들이다. :D 

'Travel > Egypt'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알렉산드리아의 밤  (0) 2010.06.28
프란시스 베이컨이 생각나는 풍경  (10) 2010.06.26
아나 베흐벱 만수  (2) 2010.06.11
카르낙 신전의 여기저기  (1) 2010.06.09
시와의 동키들  (2) 2010.05.31
Posted by goun
Travel/Egypt2010. 5. 29. 23:28

까마귀 가짜 아님

'Travel > Egypt'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와의 동키들  (2) 2010.05.31
밤에 만난 아이들  (2) 2010.05.29
이집트의 폐.업.정.리. 비디오 샵  (0) 2010.05.19
유동하는 자리  (0) 2010.05.14
풀숲의 이집트소년  (0) 2010.05.11
Posted by goun
Travel/Egypt2010. 4. 2. 08:33


                                                   이집트 '누비안 오아시스'에서 바라본 아스완의 거리

'Travel > Egypt'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알렉산드리아 숙소  (2) 2010.04.07
룩소르의 밤  (0) 2010.04.07
버스에서 만난 무슬림 가족  (2) 2010.04.02
시와Ⅰ- 동키타고 하루여행  (0) 2010.04.02
시와Ⅱ - 동키 드라이버의 멋진 제안  (0) 2010.04.02
Posted by goun
Travel/Egypt2010. 3. 31. 09:57

아무리 소음과 공해가 심하고 더럽고 흥정이 어렵고 사기를 많이 치는 이집트라지만,
내가 느끼고 온 이집트는 그런것보다도 훨씬 아름답고 사람들 착하고 인정많고 정겹고 순수한, 너무 많은 온기를 품고 있는 그런 나라였다. 그 친절하다는 터키에서도 전혀 느끼지 못한 사람냄새를 맡을 수 있었고.
이렇게 아름다운데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다음번 이집트를 다시 갈 수만 있다면 나는 관광이 아닌 진짜 여행을 100%하고 돌아올것이다. 투어따윈이제 필요 없는거야. 왕가의 계곡, 왕비의 계곡, 피라미드, 하셉수트장제전, 신전, 박물관 들은...안녕이다.

'Travel > Egypt' 카테고리의 다른 글

드디어 피라미드  (2) 2010.04.01
나를 그려준 룩소르의 하마다  (4) 2010.03.31
산책, 아스완  (0) 2010.03.31
바하리아 오아시스 <흑사막 + 크리스탈 사막>  (0) 2010.03.31
토우 훈이 그리기  (2) 2010.03.27
Posted by go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