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2025. 2. 17. 15:49

# 이미지를 다루는 직업이라는 것. 개인전을 11회 치른, 이젠 43세나 먹어버린 나지만 여전히 작업은 너무 어렵다. 급변하는 세상의 속도에 맞추기 어렵고, AI가 그려내는 그림들이나 쏟아지는 정보들 틈에서 나만의 것을 찾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인거다. 정보는 많아졌지만 내용은 없는 시대. 지금의 나는, 내가 추구하는 작업들은, 과연 이 시대를 반영하는 그런 작업들일까(시대를 반영하지 않으면 어떤가). 이것을 말하고자 하는 나의 의지가 과연 진실된 나만의 의지인가(꼭 '진실된 나의 의지'가 필요한가). 나의 경험은 내가 어딘가에서 읽은 것, 본 것, 들은 것의 총집합일텐데 그 중 무엇을 빼고 무엇을 넣어야 하나(어쨋든 누구나 모든 경험은 뒤죽박죽이다. 무엇을 빼고 넣든 상관이 없다). 나의 창작이 과연 새로움일까(요즘 세상에 새롭다는 게 과연 있을 수 있나. 재생산일 뿐이다). 반드시 그래야 하는것은 아니지만 그랬으면 좋겠다 믿는 나의 신념은 바뀌어야 하는걸까(바뀌지 않아도 된다).

 10시간을 공들여 작업한 손그림들보다 더 멋지고 아름다운 이미지들이 널려있음에 가끔은 이런 어설픔, 흠이 있어보이는 그림들이 더 경이로울 수 있는거라고 나에게 말해줘야 할 것만 같다. 왜냐하면 그 가치들을 가릴 수 있는 눈이 존재하다는 걸 나를 통해 증명하고 싶기 때문이다. 

"좋은 작업(이야기)은 오히려 빈집을, 울타리 없는 정원을, 바닷가의 인적없는 모래톱을 닮아야 한다. 관람자(독자)는 자신만의 무거운 짐과 오래도록 소중히 간직한 소지품을, 의심의 씨앗과 이해의 가위를, 인간 본성의 경로가 그려진 지도와 굳건한 믿음이 든 바구니를 챙겨 그 장소에 들어선다. 그런 다음 작업(이야기) 속에 눌러 살며 구석구석 탐험하고, 가구를 자기 입맛에 맞게 다시 배치하고, 자기 내면 세계의 밑그림으로 온 벽을 뒤덮고, 이로써 작업(이야기)을 자신의 집으로 삼는다. 한 사람의 작가로서, 나는 상상할 수 있는 미래의 모든 거주자를 만족시킬 집을 짓는 것은 힘에 부칠 뿐더러 답답하고 막막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보다는 차라리 나 자신이 현실과 언어로 지은 인공물 사이의 공감대에 위로 받으며 아늑하고 평온하다고 느끼는 집을 짓는 편이 훨씬 더 낫다."

-켄리우 <은랑전 서문에서>

# 비비언 고닉은 '작가에게 무슨일이 일어났는가는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작가가 그 일을 큰 틀에서 이해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의 나는 무슨 일이든 기억해내려고, 기억하고 싶어서, 과거를 회상하는 일이 하루 일과중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떠올리고, 후회하고, 가슴 아파하는것이 전부였다면 지금의 나는 곧잘 잊어버리려고 노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과거는 배어나오고 침투하고 튀어나올 기회를 엿보는 전쟁터의 적군같다. 나는 내 삶의 전체를 아주 멀리서 보고싶다. 그래서 내 자신의 두려움과 비겁함과 기만을 다 이해해보고 싶다. 그렇게 나의 상황과 나를 거리두기 하고 싶다. 작년부터 올해까지 계속되는 시험관은 정신을 번뜩 차렸더니 8차라고 한다. 고차수 난임 환자가 된 것이다. 나의 일상은 어느새 나와 작업 보다는 내 몸과 나의 가족이 더 중요해진 것 처럼 흘러간다. 당연히 우선순위를 따지려들면 일이나 작업보다 자식이 더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작업을 소홀히 해도 괜찮다는 의미는 아니다.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고 해서 그게 덜 중요하다는 뜻이 아니라는 사실은, 내가 엄마가 되고, 예성 예술가로서 살아가면서 느끼는 아주 설명하기 힘든 서사 같은 것이다. 왜 그것을 증명해야하지?라고 생각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래야만 하는 상황이 오고야 말기 때문에. "나는 이렇게 힘이 들지만 작업은 손을 놓고 있지 않아요!", "저는 아이를 돌본다는 이유만으로 경력단절 화가라는 수식을 달고 싶지 않아요!", "나의 자아를 확장하고 예술가로서의 자아까지도 확장하려면 SNS를 놓을 수 없어요!", "저는 잊혀지는 작가가 되고 싶지 않아요....."

Posted by goun
Text2024. 11. 21.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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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oun
Text2024. 10. 22. 14:19

# 내 아이를 보며 '생의 찬란한 아름다움'에 대해 처음으로 깊이 느끼게 되었고, 아이가 자라나는 걸 보면서 정말 반짝이고 예쁜 작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갖게 되었다. 세상에는 엉터리가 많고, 생의 유한함속에서 고통은 자라나고, 마음은 항상 가난하다고 믿어오던 나였다. 그래도 가야할 길을 가야한다는 다짐과, 절망하고 싶지 않아 조그마한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던 순간들이 모여 하루 하루가 만들어졌다. 희망이 있기때문에 희망을 갖는게 아니라 희망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는 여전히 전쟁과 기아와 고통속에 하루에도 수십 수백명의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다. 내가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생의 반짝임에 대해 이야기할 때 누군가는 그 생의 원초적인 공포를 대면하면서 죽음을 목전에 둔 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어떤 작업을 해야만 할까. 순백의 아름다운, 순수하고 평화로운 그림들을 그려야할까? 그 그림은 과연 내가 그리고자 한 세계일까? 그 작업 안에는 불편한 침묵이 존재하는 게 아닐까? 수많은 고통의 외연에 대해 냉정한 거리를 두고 살아갈 수 있을까? 작업으로 어떤 것들을 지켜낼 수 있을까?
죽은 사람, 죽어가는 사람, 죽고 싶은 사람, 죽고싶은 정도는 아니지만 딱히 살고 싶지도 않은 사람, 살고 있는 사람, 살아가는 사람, 너무나 살고 싶은 사람, 태어나고 있는 사람, 태어날 사람.......  

 

Posted by goun
Text2024. 9. 2. 15:41

# 프리다의 책을 읽었다. 프리다는 내가 알던 것 보다 더 자유분방한 사람이었네...어디보자,,, 프리다와 관계를 맺은 사람은 10대 때 첫사랑 알렉스(알레한드로 고메스 아리아스)부터 시작해 여자 사서, 인쇄소를 하던 아빠의 친구 페르난데스, 티나(디에고 리베라를 소개시켜준 여자), 디에고 리베라, 니콜라스 머레이, 이사무 노구치, 레온 트로츠키, 그의 비서 장, 조지아 오키프, 쥘리앙 레비, 독일인 하인츠...알려진 것만 이 정도. 성적으로도 너무 자유로웠고, 자신의 사상도 자유로웠을 뿐만아니라 작업에 있어서도 자유로웠다. 그는 팬 섹슈얼리스트에다가 폴리아모리스트였던 것. 엄청난 다자연애 끝에 리베라와 재결합을 할 때 성관계를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쓴 것도 재미있다. 그녀는 처음부터 폴리아모리스트였을까 아니면 리베라의 계속되는 성적 외도때문에 복수심에 불타 시작된걸까? 아마도 나는 그녀가 태어났을때부터 폴리아모리스트였을거라 생각한다. 모든 부분에서 욕망이 강렬하고 솔직했던 그녀였으니까. 우리나라에서 그랬다면 나혜석에게 돌을 던진 많은 사람들처럼 똑같이 프리다도 돌을 맞았으려나? 프리다보다도 어쩌면 더 강렬하게 여성주의 예술, 민주주의 예술, 자유주의 예술을 하고자했던 나혜석이었는데, 자신의 서사를 그림으로 표현하기까지 그 당시 서양화라는 것은 나혜석에게 너무 큰 장벽이지 않았을까. 보고 듣고 배우는 것들 자체가 달랐기때문에 그림보다 글이 어쩌면 더 편한 매개체였을수도 있다. 나혜석의 작품을 평가하기 이전에 전쟁을 겪은 비운의 여성으로서의 삶을 먼저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주체적인 삶을 살아간 나혜석을 프리다처럼 똑같이 이해하고 싶고 그래야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비록 나혜석이 프리다보다 10년은 먼저 태어났지만 말이다.

# 나혜석이 살던 그 당시, 일본 유학이나 여행을 갈 수 있었던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부유한 집안의 사람들이었고, 그들은 여성이지만 정말 약자로서의 여성의 처지는 잘 몰랐던, 그런 사람이었을 것이다. 아마 나혜석도 그러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그녀는 자신의 처지가 어떠한지 잘 알았고, 그 앞이 어떠할지 알면서도 자신의 선택에 후회없이 살다 간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자신이 하고자하는 이야기들을 남기기 위해 끝까지 글을 썼고 작업을 했으니까. 글이 소실되고 그림들이 불타 사라져 남아있지 않다고해도 그가 보낸 그 시간들의 흔적은 남아있으니까. 그런 그녀의 삶은 반쪽 페미니스트로서의 삶이 아니었다. 만일 그가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다면 어떨까? 많은 것들이 달라졌을까? 나는 잘 모르겠다.

Posted by goun
Text2024. 7. 6. 22:16

 나혜석 답사를 마치고 돌아와서도 며칠 간 나혜석 생각만 했다. 그리고 함께 답사를 다녀온 선생님들 생각도 많이 했다. 밤새 나혜석 이야기에 눈이 반짝반짝하시던 선생님들... 그 순간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60-70세 되신 원로 작가님들께서 드로잉북을 손에서 놓지 않는 모습을 보며, 진심으로 감동받기도 했다. 나는 왜 드로잉북을 까먹고 가져가지 못했는가... 정신을 어따두고 그랬을까... 생각하며, 기록이 가장 중요한데 사진만 찍어두고 자필 기록을 많이 못한게 내심 아쉬웠다.(예전에 그렇게 드로잉 많이 하고 다니던 나 어디로 갔지? 지하철 드로잉도 많이 했는데. 지금 내 드로잉북 어디갔니...) 그렇게 나혜석 관련 영상을 찾아보고 책을 읽고 있던 와중에 기획자에게 연락이 왔다. 서울아트가이드 북에 실릴 나혜석 답사기를 써야 하는데, 함께 답사를 다녀온 선생님들께서 나를 추천해주셨다고. 난 이럴때마다 너무 너무 쓰고 싶으면서도 한발 뒤로 물러나서 '내가 과연 잘 쓸 수 있을까' 의심을 먼저 하곤 한다. '나'에 대해 절대로 관대해 지지 않으려는 몸부림이 도져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아주 오래 고민하고, 결정을 미루고 있던 차에 내가 머뭇거리는 걸 관장님이 아셨는지... 관장님께서 연락을 주셔서 이렇게 저렇게 쓰면 된다고 말씀해주셨고, "그럼 일단 써보겠습니다!" 하고 용기를 냈다. 그 다음날부터 도서관에 박혀 나혜석 글을 주구장창 읽었다. 

 나혜석 글을 쓸 때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작가인 내가 느끼는 것, 그리고 화가로서의, 예술가로서의 나혜석에 대한 나만의 글을 쓰자는 것이었다. 쓰다보니 분량이 엄청 늘어났고, 나중에는 그걸 1페이지로 줄이느라 애를 먹었다.

 글을 쓰는 도중에 갑자기 서재에 꽂힌 2016년도 다이어리를 펼쳐보게 되었다. 그때 왜 그 다이어리에 손이 간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는데, 결과적으로 보면 이 행동은 정말 꼭 필요한 것이었다. 8년 전 나는 그 다이어리에 영화 감상문 같은걸 참 많이도 적어놨었는데 거기엔 [장미의 땅: 쿠르드의 여전사들] 감상평이 적혀있었고, 여성의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여전사들의 이야기에서 엄청난 감흥을 받은 이야기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와! 나는 지금 한국의 여전사 나혜석에 대한 글을 쓰고 있는데! 바로 이거야! 싶어 이 내용을 꼭 글에 넣기로 했고, 가장 내 마음에 드는 문장이 완성 되었다. 어릴적부터 항상 미래의 나를 위해 기록을 해둬야 한다며 그렇게 끄적여놨었는데, 그게 이렇게 쓰일줄이야. 기록쟁이었던 과거의 내가 참 기특했다. 서울아트가이드 책에 실릴 나혜석의 글은 8월이나 9월호에서 읽을 수 있다.^^ 이런 소중한 기회를 주신 선생님들께 너무 감사드린다. 진심으로 너무 기쁘고 행복하다. 날 추천해주셨던 정정엽 선생님께서는 내 글을 읽으시고, 이렇게 잘 나올 줄 알았다며 창창한 후배님이 있어 든든하다고 하셨다. 감개무량.ㅠㅠ 그리고 수원 박물관에 딱 3권 남은 나혜석 도록을 전부 다 구매해뒀었는데 그 중 한권을 나를 줘야 겠다고 하셨다. 너무 감동받아부렀다. 좋은 기회로 좋은 작가 선생님들과 답사를 다녀온것도 황송한데, 이렇게 내 글이 서울아트가이드에까지 실리게 되다니. 올해 상반기의 가장 즐거운 일을 꼽으라면 바로 이것이다! 글을 보내고, 너무 너무 행복해서 내 몸이 힘든것도 몰랐다. 요즘 그냥 몸도 마음도 다 바빠서 정신 없었는데 그 와중에도 나혜석만 생각하면 기쁨이 몰려왔다. 내년에 어떤 작품이 나올까. 우리는 어떤 전시를 하게 될까. 마냥 신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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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o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