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군데에서 진행한 릴레이 전시가 끝이 났다. 11명의 좋은 작가님들과 함께 했던 즐거운 기획전이었다. 서울 봉은사와 강원랜드, 아리샘터의 공간 특징이 매우 달라서 다양하게 디피된 모습이 새로웠다. 처음부터 끝까지 애쓰시며 전시 진행하신 큐레이터 조숙현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
봉은사 보우당에서의 전시, 그리고 봉은사 뒷길 산책길에서.^^
정선 강원랜드에서의 전시. 12명의 작가들이 모두 각기 다른 하나의 섬으로 표현되는 전시였기에 작품대의 디자인과 색, 질감이 모두 다른데, 대리석 바닥 디피는 꽤나 어려우셨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작품 아래에 놓인 타일 덕분에 작품이 돋보일 수 있었던 것 같다. 컬러도 굳 굳! 어려운 디피 고생하셨습니다.ㅠㅠ
마지막으로 정선 아리샘터 전시까지. 거의 한달간 전시를 진행하면서 작업실에서 빛을 보지 못하고 있던 나의 예전 작품을 전시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저 작업을 한게 벌써 7년 전이라니.ㅎㅎㅎ 전시가 잘 마무리되어 감사한 마음.^^
코엑스에서 열린 어반브레이크 2024 vip 오프닝에 다녀왔다. 이 곳에서 가장 핫한 부스가 어디냐고 묻는다면 단연코 <리아킴X오와칠호> 부스일 것이다! 들어서자마자 파워풀한 느낌의 설치 + 영상 작품들과 멋진 페인팅, 그리고 하나부터 열까지 손수 만든 옷들이 나를 맞아주었다.
10년 전 우리가 만났던 문래동 작업실에서는 각기 다른 성향의 4명이 함께 작업을 했다. 윗층이었던 1층에는 공사장이 있어서 낮에는 항상 쿵쿵 하는 소리가 들렸고, 지하1층 작업실의 천장 콘크리트는 자주 떨어졌고, 가끔 비가 새거나 물이 찼고, 모든게 다 불안정했다. 환풍기도 없어서 그 유리섬유로 만든 건물 지하는 항상 퀘퀘한 냄새가 났는데, 그 어둑어둑하던 지하 작업실이 그냥 나의 30대 같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그냥 20대 때와 다르지 않게, 똑같이, 암울하고 어둡고 불안했으니까. 요즘 현우님과 만나면 "그때 그 작업실은 정말 최악이었어."라고 말하곤 하는데, 그래도 나는 그런 최악의 작업실이었던 그때가 가끔 생각난다. 그리고 최악이었지만 때론 너무 즐겁고 행복하기도 했기 때문에 그립기도 하다. 그때 묘경은 설치작업과 영상작업을 하고 있었고, 나는 국카스텐 2집 앨범 작업을 했고, 남옹은 입체 작업을 했고, 막내 인선이는 평면 작업을 했다. 쓰다보니 그리운 시절이 맞는 것 같다. 그 문래동 지하 작업실에서 나온 우리는 뿔뿔이 흩어졌는데, 그때 묘경은 507호 방에서 원규오빠와 함께 옷과 가방을 만들었다. 매일 매일이 불안과 싸우는 시절이었다. 그 가방과 옷을 여기저기에 가지고 나가 팔기도 하고, 편집샵 같은 데에 입고하기도 했다. 그때에도 이 둘은 작업 얘기만 하면 두 눈을 반짝였다. 설령 유명하진 않더라도, 많이 팔리지 않더라도, 그저 내 자리에서 꿋꿋이 이 작업을 해내고 말겠다는 그런 의지가 엄청났다. 나는 이 두사람을 보면서 작업이 막히고 힘들때 용기를 냈던 것 같다. 지금은 에이젼시의 소속작가가 되어 여기저기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데, 그때의 오와칠호와 지금의 오와칠호는 다르기도 하지만 여전히 같기도 하다. 항상 진지하게 작업하고, 새로움을 찾고, 발전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정말 멋지고, 여전히 반짝반짝 빛난다. 힘들고 불안하다고 해서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결국 자신이 하고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오와칠호를 열렬하게 응원한다. 내 친구들. 원규옹이 내 얼굴 보자마자 한 얘기는 "우리 빨리 커피마셔야 해"였다.ㅋㅋㅋㅋㅋ 빨리 커피를 마시자구!!!!!
2005년에 첫 개인전을 한 이후로 (햇수로) 2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지금까지 내 작업 인생에서 딱 하나, 내가 절대로 이야기하지 않았던게 ‘희망’이라는 키워드였고… 그 이야기를 그렇게 쉽게, 아름답게 표현해도 되나? 그런 생각이 가장 컸는데… 생각해보면 그 당시의 나에게는 희망보다는 고통을 그리는게 더 편했던 것 같기도 하다. 세상이 너무 참혹하니까 희망을 말하는 건 기만같았다. 그런데 그렇게 오랜시간 파국들을 그리며 든 생각은 고통 또한 그렇다는 것이었다. 고통이나 힘듦 역시 희망 만큼이나 아니면 더 더 어려운 일이었는지 모른다. 나는 그런 종류의 쉽지않은 작업을 하며 나의 삶을, 나의 죽음을, 나의 주변을 돌아보고 정말 ‘잘’ 살아내고 싶었던 것 같다. 아주 모순적이게도 그랬다. 그리고 지금 현재의 나는 그 희망을 더 더 이야기해도 될것 같다고 느낀다. 아니, 더 이야기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뼈져리게 느끼고 있다. 그리고 이 작업은 내 작업들 중 가장 따뜻하고 가장 아름다운 작업으로 완성되었다.
정말 오랜만에 내 작업을 전반적으로 정리하고 소개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다 작년에 전시했던 갤러리 박영의 대표님 덕분이다. 내 작업을 이해해주시고, 응원해주시는 것도 모자라 이런 좋은 자리에 초대까지 해주셔서 서울클럽이라는 곳에서 작품을 전시하고 발표하게 된 것이다. 이곳은 1904년에 고종이 만든 사교클럽이고, 엄청 화려하진 않지만 역사가 굉장히 깊은 곳이었다. 이런 역사깊은 곳에서 내 전반적인 작품을 보여드릴 수 있다니 감개무량하였다. 스폐셜 지인으로 현우님도 함께 했다.^^
간추린다고 간추렸는데도 작품 페이지가 120이 넘어갔고, 20분 PT시간이 약간 초과되었다. 할말을 다 하지는 못했지만 꼭 해야하는 말들은 하고 왔다. 작품에 대한 설명은 항상 어렵고 힘들지만, 그 당시에 왜 이런 작업을 하게 되었는지, 왜 이것을 작업할 수 밖에 없었는지, 이걸 하지 않으면 안됐던 이유들을 이야기했고, 약간 걱정을 하긴 했지만 좋은 피드백들을 엄청 받고 왔다. 항상 티비로만 뵈었던 유별남 사진 작가님과도 인사를 나눴고,(알고보니 시아버님과 같은 미술대학 선후배 사이) 두 아이의 엄마인 이한정작가님도 이번 기회로 알게되어 좋았다. 좋은 에너지들을 얻었으니 작업을 위한 시간들을 단단히 다져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