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도 러닝 연습을 하며 폭포까지 뛰었다. 뛰다보니 더 앞으로 가볼까싶어 더 더 앞길로 뛰었다. 그러다보니 대략 20년 전 내가 자취를 했던 그 옥탑방 동네가 나왔다. 여름엔 너무 뜨거워 숨쉬기 힘들었고, 겨울엔 너무 추워서 방안에서 옴짝달싹 못했던, 그저 춥고 쓸쓸했던 기억들이 스쳤다. 집 문을 들어가기 전, 옥상에서 발구르기를 하면 호다다닥 사라지던 바퀴벌레들, 먹던 과자봉지를 부엌에 잠시만 둬도 나타나던 개미떼들, 그리고 작은 냉장고엔 항상 성에가 끼어 있었지. 밤이되어 눈을 붙이려하면 창문으로 뒤쪽의 교회 십자가 불빛이 어른거리던 그 방. 잠시 그쪽으로 가볼까 싶다가 이내 발걸음을 돌렸다.
# 없던 희망을 쥐어짜서 희망이 있다고 나에게 주문을 걸며 살던 시절. 사람이 먹고사니즘에 너무 힘이 들기 시작하면 아주 먼 계획같은건 생각하기 어려워지는데도 그렇게 나는 하루 하루를 진한 밀도로 살아냈다. 어떤 날은 불꽃이 터지듯 나를 마구 바깥으로 밀어댔고, 어떤 날은 내가 녹아 사라질까봐 전전긍긍하며 차갑게 살았다. 그런데 그곳에 내가 오래 있을때마다 낡은 장판들이 내 몸을 잡아 끌어내리는 것 같았다. '당장 눈앞의 계획만 세우며 살아- 그냥 여기에 있어-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마- 좀 쉬어야될 것 같아-'
# 그때 그 시절의 나는 너무 기울어져서 뭐라도 붙잡고 싶었었는데... 그때 잡은게 유일하게 내 작업이었다. 내가 무얼 더 할 수 있었을까. 나는 많은 걸 놓쳤고, 그 많은 것들을 헤아리기도 지쳐서 앞만 보고 달렸다. 그래도 붙잡은 그것이 작업이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나. 나는 이제 사십이 넘었고, 20대의 나를 이렇게 추억할 수 있다. 그때의 나는 가볍지 못했지만 지나간 그 시절은 가볍게 느낄 수 있는 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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