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2024. 2. 1. 11:25

우연히 신간도서 라인에서 발견한 책인데, 빌려놓고도 앞에 첫 페이지를 넘기기가 무서워 며칠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가 손을 댔다. 손을 대자마자 나는 김초롱씨의 트라우마들과 고통의 민낯에 완전히 침몰할 지경이었는데, 마음이 너무 아프다가도 대견하고, 함께 울고 싶다가도 다시 일어나라고 응원하고 싶은 마음으로 그렇게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곱씹으며 읽었다. 결코 그런 고통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알 수 없는, 바로 그 지점에서 나의 무지함에 너무 창피함을 느끼기도 했고, 과거에 되도 않는 위로를 한답시고 쉽게 내뱉었던 말들(특히 나의 가족에게)이 내 마음에 비수처럼 꽃혀서 너무 미안했다. '특히 우리 언니한테...제일. 난 정말 도움이 하나도 되지 않는 동생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도 나를 사랑해주어서 고맙다.'

끊임없이 슬프다가 마지막 즈음에 초롱씨가 그 고통의 시간들을 견뎌내면서 했던 일들 중에서 다리미질과 게스트하우스 청소를 선택한 것에 정말 박수를 보냈다. 그렇게 될 수 있기까지 초롱씨와 초롱씨의 주변 인들의 노력에 정말 감동했다. 그녀가 수천번 마음속으로 되내어야만 했던 것들을 함께 호흡하며 읽어내려갔고, 이 책을 주변 사람들에게 추천했다. 꼭 읽어봐야만 한다고, 그러지 않으면 잘 모를거라고. 우리는 알아야된다고. 정말 좋은 책을 새해에 읽게 되어 정말 좋았다. 그리고 초롱씨에게 너무 고마웠다. 앞으로의 그녀의 삶을 정말 많이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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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oun
books2024. 1. 3. 16:04


-등 뒤로는 오래전 시간들이 사라져가고 발밑으로는 짧은 과거들이 사라져가면서 그래도 매일 한 발은 현재, 다른 한 발은 미래라는 불완전한 땅을 밟으며 나아가고 있다. 각자 자신의 삶을 살아내는 몫을 감당하고 있으며, 걸어온 시간에 비해 앞으로 걸어갈 시간에 대해 무지한 건 나이에 상관없이 마찬가지니, 서로의 무지를 따뜻하게 바라봐줄 수 있다면, 우리는 친구가 될 수 있다. 모두 자신만의 몫을 감당하면 그만이다. -p.53

-‘타인은 지옥이다’라고 얘기했던 고백을 나를 향해 뒤집어보면, 나 또한 누군가에게 지옥이다. 내 의도와는 다르게 그에게 지옥을 선사할 수 있다. 그러나 잠들지 못했던 시간이 지나 잠들 수 있는 시간을 보내면서 울고 싶은 마음도 사라진 지금은, 그래도 내가 누군가를 구원할 순 없어도 지옥을 선사하는 사람이 되지 않기를, 아주 작은 희망이라도 가지고 싶다. 긴 시공간 속에서 수많은 콤마 중의 하나인 인간이 이미 존재한 이상 서로에게 지옥이 되지 않기를, 내가 언제든 타인에게, 그리고 나에게 타인이 지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하루에 한 번이라도 생각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p.184

 

***

 

성미샘의 책을 읽었다. 성미샘이 살아온 인생들이 스펙트럼처럼 촤르르 펼쳐졌고, '그녀의 인생을 내가 똑같이 살았다면 나는 과연 잘 이겨낼 수 있었을까, 성미샘 정말 마음이 단단한 사람이구나.' 싶었다. 많은 트라우마들 속에서 이렇게 굳건히 자신의 삶을 잘 살아내고 있는 저자를 보며, 나도 힘을 얻는다. '저자가 이런 사람이라서 타인에게 좀 더 세심할 수 있었구나, 나도 좀 더 성숙해져야 겠다.' 그런 생각을 했다. 타인의 무지도 따뜻하게 감싸안아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에 나도 동감하며 읽었다. 성미샘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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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oun
books2023. 8. 14. 10:49

-먼지 구름이 가라앉으면 보이는 우리의 얼굴은 저마다 다르게 생긴 사람들이겠지. 그러나 서로에게 뭔가를 해주려고 늘 기다리는 사람들이겠지. 자기 생각을 말하다가 상대를 다치게 하고, 자기도 다치는 사람들이겠지. 차라리 입을 다물까. 집이든 몸이든 뭐든 그냥 다른 사람들이나 떠들라 하고 우리는 이렇게 아이차럼 장난이나 치며 살까. 하지만 자꾸 울고 싶은 일이 생기는 걸 어쩌나. 어떻게 막을 수 있나. 시간이 흐르면 또 다른 사건이 우리 가슴에 유성처럼 떨어질 것이고, 그때마다 우리는 서로 소매가 엉킨 채로 함께 걸어갈 것이다. p.83

-같이 살자는 말을 할 수 없다면 자주 보자는 말도 하고싶지 않았다. 저 너무 어딘가와 이곳 어딘가의 사이에 우리가 서 있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나는 우리의 감정을 조심스럽게 다루고 싶었다. 우정의 색깔이 다양하다는 것은 사랑이 하나의 감정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이런 말을 어떻게 전달해야 너를 이해시킬 수 있을까. 무엇보다, 나는 왜 너에게 이해심을 요구할까. 그냥 이대로도 우리는 잘 지내는데. 하지만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도 우리가 여전히 기숙사와 월세방을 맴돌고 있다면, 그것은 분명히 문제가 될 것이다. 언제쯤 어디에 발을 내릴지 모른다는 것은. 일단 발을 내려야 그다음을 떠올릴 수 있을 테니까. p.121

-한동안 술잔만 비워내던 언니가 말했다. 선생님, 청춘이 아름다운 건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아도 세상을 시시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이예요. 그 시기가 지나면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만으로도 세상이 공포로 다가와요. 제가 지금 그래요. 모든게 공포예요. 그래, 그럴 수 있어. 근데 경희야, 너는 지금도 청춘이야. 세상을 계속 시시하게 봐도 돼.

선생님은 늙었어요. 맞아 난 늙었어. 근데 안 늙었어요. 그래. 아직 안 늙었어.

선생님, 앞으론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제자한테 절대로 재능있다는 말은 하지 마시라고요. p.175

-가끔 드라마 속 인물이 부러워. 모두가 기억해주는 삶을 살잖아. 가짜인데 그런 삶을 살아. 나는 진짜인데도 그런 삶을 살지 못하는데.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언니가 원하는 건 기념비처럼 우뚝 일어선 삶이었을까. 모두가 돌이보며 감탄하고 기다리는 삶이었을까. 언니도 알겠지만 그런 삶은 누군가의 희생이 가려지는 삶이잖아. 전쟁이 무서운 게 그런거잖아. 누군가의 희생을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는 몰지각. 누군가의 피해를 부수적인 것처럼 생각하는 반지성. 그렇게 지킨 영토와 신념은 후대에 전해져 이젠 아무도 찾아가지 않는 곳의 기념비로 남잖아. 그러니까 언니도 다시 생각해봐. 언니의 삶에 기념비를 우뚝 세우고 싶은지. 언니의 청춘과 슬픔과 기쁨을 그 아래에 묻어두고, 단 하나의 비를 세우고 싶은지. 그러는 동안 언니가 잃어버릴 것들을 생각해봐. 언니는 내 말을 묵묵히 듣더니, 사람마다 세우고 싶은 단 하나의 비가 있어, 라고 단정짓듯 말했다. 나는 그런게 없는 사람도 많다고 답했다. 이젠 그런 시대야. 기념비를 세우는 게 촌스러워진 시대. 단 하나의 기념비가 아니라 요리조리 상황을 살피면서 끼니를 이어가는, 자기 몸 하나 누일 곳을 확장해가는 그런 삶이라고. 우리는 순간을 살고 미래는 여기 없지만, 미래를 우리가 만들어갈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어. 그래서 다들 회사에 다니고, 돈을 벌고, 직업을 갖는 거야. 자기 만족 본위의 직업이 아니라 월급 만족 본위의 직업을. 언니 인생의 우선순위는 거꾸로 세운 기념비처럼 괴상해. p.192

 

***

난 이서수 작가의 책 <엄마를 절에 버리러>를 먼저 읽고 나서 이번에 <젊은 근희의 행진>을 읽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20-30대의 내 삶이 너무 떠올라서 정말 뼈 때리고 현실에 후려맞는 느낌이 들었다. 살면서 후회는 절대 안하겠다 다짐하지만 그런건 별로 없는것 같고, 내가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한 것들은 여전히 미궁에 쌓여 있으면서 자꾸만 물음표를 남긴다. 너무 좋아했지만 너무 싫어진 사람, 끝내 판단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말 한마디에 판단되어지는 상황들, 자꾸만 울고 싶은 일이 생기고 나혼자선 막을 수 없던 날들, 어린아이처럼 살고 싶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너무 애늙은이처럼 살기도 싫어서 발악하던 때, 감정을 조심스레 다루지 못해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받던 날들, 여전히 바뀌지 않던 미래, 습관처럼 되내이던 주문같은 외침들, 발을 딛고 살아야된다고 생각하면서도 허공에 둥둥 떠 있던 참새처럼 살았던 내가 보인다. 막 머리통을 휘갈기는 느낌이어서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읽는 중이다. 특히 자매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너무 현실적이고 놀랍다. 다음 책도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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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oun
books2023. 8. 9. 18:32

내가 예전부터 많이 애정하는 박문영 작가님의 신간이 나왔다. <주마등 임종 연구소>라는 책 제목만 보고도 "이건 사야해!"하는 마음에 바로 구매 버튼을 눌렀다.^^ 난 <사마귀의 나라>라는 SF소설을 우연히 접한 뒤 많은 이들에게 그 책을 추천했다. 그러다 SF 독서모임에도 추천을 하기에 이르러...박문영 작가님이 우리의 모임에까지 절판이 된 그 책을 몇권 들고 오셨던 기억이 난다. (아니...복사를 해서 오셨던가? 우리가 복사를 해서 읽었던가? 그것까진 기억이 나질않네...난 현재 절판이 된 그 책을 소장하고 있다!) 아무튼 그때의 작가님은 뭔가 내가 상상했던 대로 진중하고 조용한 느낌의 분이셨고 전시를 하면 꼭 초대해달라고 하셨었는데, 난 육아를 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그때의 그 만남 이후로는 뵐 기회가 없었다. 작가님은 계속 창작활동을 하셨기때문에 계속 책들이 나왔는데, 그때마다 사 놓기만 하고 제대로 읽지를 못했다. 그래서 주마등 이 책부터 꼭 꼭 빨리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집에 사놓고 몇년간 읽지 못하고 있는 <지상의 여자들>도 펼쳐봐야겠...

울 애기가 그려준 그림을 책갈피로 쓰고 있다. 책을 열때마다 귀여움이 X1000000!!!!!

참 주옥같았다. 연필을 쥐고 몇 문장들은 계속 반복해서 읽었다. 그러다가 내가 죽기전에 가장 먼저 떠올리며 죽고싶은 장면이나 상황들을 남편에게 (갑자기) 카톡으로 보내게되는데......... 남편은 왜 이런 이야길 하냐고 하면서도 "맞아 그때 정말 좋았지" 라고 대답해주었다. 그리고 얼마전에는 "나도 마지막으로 떠올리고 싶은 기억이 있는데... 우리 애기랑 셋이서 엄마 까투리 주제곡을 불렀을 때야."란다. 나는 "굳이 그때를 왜?"라고 물었는데, "엄마 까투리 주제곡 가사가 너무 아름답잖아. 내가 불렀을때 가사 틀리면 애기가 아니야 그거 틀렸어 하면서 고쳐주고 다시 같이 부르고...그때가 너무 좋았어." 라고 말했다. 배시시 웃음이 나왔다. 그때 기억이 나서. 난 아기가 태어났을때도 참 행복했지만, 나에게 "엄마는 언제부터 엄마가 되었어요?", "저를 낳아주셔서 감사해요."라는 말을 하는 현재가 더 행복한 것 같다.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소설이었다. 예전에도 눈을 뗄 수 없는 전개와 필력으로 엄청난 이미지들을 떠올리고 상상하게 했었는데, 이번에도 너무 자연스럽게 그런게 가능했고, 파국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죽음에 더 가까워지려는 느낌이 좋았다.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은 그 만큼 생을 더 사랑한다는 뜻일거라는 짐작에서다. 작가님의 소설을 읽고 있노라면 내가 바라보는 세상,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 내가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은 내용들이 하나로 묶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렇기때문에 더욱 더 희귀하고 특별하다고 믿고, 그렇기때문에 내가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이유라고 믿는다. 작가님의 글을 오래오래 읽고 싶다. 

Posted by goun
books2023. 4. 26. 18:22

"탯줄과도 같은 감정. 언제 죽음으로 이어질지 모르는."

"아이의 뺨과 귀 사이에 난 작고 귀여운 점을 보고 조각의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걸린다. 아이의 팽팽한 뺨에 우주의 입자가 퍼져 있다. 한 존재 안에 수렴된 시간들, 응축된 언어들이 아이의 몸에서 리듬을 입고 튕겨나온다." p.96

"그것은 기억과 호환되지 않는 현재였고 상상에 호응하지 않는 실재였으며, 영원히 괄호나 부재로 남겨두어야만 하는 감촉이었다." p.131

"조각도 한때는 한번 본 사람의 얼굴은 잊지 않았던 시절이 있다. 힐끔 일별했을 뿐이라도, 때로는 옷깃만 스쳤더라도 그 순간의 공기나 냄새 같은 것으로 다음번에 다시 대상을 마주쳤을 때 기억을 상기할 수 있었다. 그래야만 살아가고 그러지 않고선 일을 할 수 없는 날들이 있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그 소질은 천천히 사라졌는데, 그건 단지 나이 들어 후각을 비롯한 감각이 떨어져서가 아닐 것이다. 수많은 죽음이 쌓이고 겹쳐 그전의 얼굴을 새로운 얼굴이 덮어버린 것이다. 그것을 거듭하다 모든 얼굴이 까맣게 덧칠된 느낌...... 총천연색으로 빼곡히 그린 스케치북을 송곳으로 긁어낼 준비를 위해 까망으로 뒤덮는 저 아이처럼." p.210

"나름의 아픔이 있지만 정신적 사회적으로 양지바른 곳의 사람들, 이끼류 같은 건 돋아날 드팀새도 없이 확고부동한 햇발 아래 뿌리내린 사람들을 응시하는 행위가 좋다. 오래도록 바라보는 것만으로 그것을 소유할 수 있다면. 언감생심이며 단 한순간이라도 그 장면에 속한 인간이 된 듯한 감각을 누릴 수 있다면." p.211

Posted by go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