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2023. 4. 14. 15:38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우주 속의 창백한 푸른 먼지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바로 우리가 무력한 존재라는 당위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과학은 지금 우리가 있는 행성, 발 디딘 장소, 거대한 세계 속 미약한 우리의 존재를 말해준다. 하지만 미약함을 직시한 사람들이 무엇을 선택하는지는 과학이 말해주는 영역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는 세계 속에서 미약하면서 존엄하기를 선택할 수 있다. 그 선택은 미약하기에 더 경이로울 수 있다."

"사람들은 유토피아를 꿈꾸면서도 사실은 유토피아가 없다는 것을 안다. 차가운 우주는 유토피아를 허용하지 않는다. 냉혹한 물리법칙도 인간의 진부한 규칙들도 이 우주에 유토피아를 위한 자리를 남겨놓지 않는다. 그곳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영원히 그리운 세계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차가운 우주의 유토피아를, 그곳으로 가는 길을 상상한다. 어쩌면 그 모순에 맞서며 다른 세계로 가는 길을 상상하는 것이, 소설의 일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이처럼 인간이 작고 큰 존재들에게 생의 시간을 빚지며 살아가는 우주먼지라는 사실을 나는 자주 생각한다. 그리고 한 사람의 호기심과 사랑이 어떻게 결심과 강인함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생각한다."

Posted by goun
books2022. 12. 7. 23:46

내가 정말 정말 사랑했던 이집트. 이집트에 빠져서 매일 이집트 관련 책을 보고, 람세스와 사랑에 빠졌던 때가 2010년이니 벌써 12년이나 지났다. 이집트에 대한 관심은 2009년 ‘스핑크스의 눈물’이라는 개인전을 열고 난 후 관심이 열망으로 번져 걷잡을 수 없이 이 곳에 쫙 빨려들면서 시작되었다. 이집트를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고나서는 이집트 여행을 위해 일을 더 많이 하고, 돈을 모으고, 깜지가 될 정도로 A4용지에 이집트 왕조를 정리하고, 밤새 람세스 책을 읽고, 유물 유적들의 의미와 내용들을 익히곤 했다. 그 종이들은 여행의 시작과 끝까지 내 주머니에 고이 접혀 나와 함께 여행을 했다.^^ 2010년 이집트로 여행을 갈 당시에 찾아봤던 책들과 비교해보니 그때 이런 책이 나왔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생각이 든다.ㅎㅎㅎ

그냥 훑어보기만 해도 엄청 디테일하게 많은 것들이 잘 설명되어 있다. 최초로 피라미드를 쌓은 왕인 네체리케트에 대해, 기자 피라미드를 쌓은 4왕조의 계보에 대해, 피라미드의 변천, 피라미드 분포도...이집트의 장례의식, 오벨리스크...투탕카멘...파라오들...다양한 신들과 신전들 뿐만 아니라 그 당시의 생활 양식들과 오락, 엔터테인먼트, 벽화를 보는 법까지! 정말 방대한 내용을 잘 압축해 정리해놓은 책이다.
특히 이집트 여행당시 200여구 넘게 미이라를 본 것 같은데, 사진 촬영이 안되서 눈으로만 담고 왔다가 이 책에서 설명해주는 미이라에 대한 자세한 내용들을 보니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이런 디테일한 설명! 람세스 2세가 치조농루증을 앓고 있었다네. 오래 살고 죽은 미라는 피부가 까맣고, 젊은 시절 죽은 미라는 피부가 빨간 육포 같았는데 그런 느낌이 일러스트에 잘 담아진 것 같다.

미이라 박물관에 가면 미이라 만드는 순서와 그 때 썼던 도구들까지 다 전시되어있는데 도구들이 너무 얇고 견고하긴하나 마치 바늘처럼 작은 것들도 많아서 어떻게 그걸 다 해냈을까 감탄하곤 했다.

이집트는 어디를 가든 발에 채이는 것들이 유물 유적이었는데, 아쉬웠던 건 너무 관리가 안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현대 이집트인들은 매일 보는 게 다 수천년 전 유물들이어서 그런지 별 감흥이 없어보였으나 왕가의 계곡 밑 수십미터 아래에 그려진 벽화들만 보더라도 정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정도의 아름다움의 극치라 할 수 있었는데 말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호루스는 이집트를 다녀와 몇년 뒤 내 팔에 새겼고, 아누비스는 내 왼쪽 손등에 직접 새겼다. 하늘의 신과 죽음의 신을 동시에 좋아하는 나.^^ 이집트는 진짜 그러한 매력이 있다! 땅의 90퍼센트 이상이 다 사막인 그곳이 궁금한 분들은 이 책을 읽게되면 이집트로 떠나지 않을 수 없을것이다!ㅎㅎㅎ 이 책은 여행을 다녀온 사람이나 앞으로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책인 것 같다. 이렇게 매력 넘치는 책을 만들어 준 더 숲 출판사에 감사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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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oun
books2022. 9. 5. 01:30


작년에 출간 된 한강의 소설을 이제야 읽었다. 난 <채식주의자>나 <소년이 온다>보다 <희랍어 시간>을 더 좋아했다. 책을 읽는 순간부터 이미지가 끊임없이 허공에 떠 있고, 뭔지 모를 아득함과 그것을 통과하는 온기가 느껴지는 그런 글들을 좋아했던 것 같다. 이 책이 무슨 내용인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초반을 읽었을 땐 약간 희랍어 시간이 떠오르기도 했는데, 뒤로 가면 갈수록 심장이 조여오고 숨이 잘 안쉬어질 정도로 소년이 온다보다 더 강렬하게 강한 뭔가가 심장에 쿡 박히는 느낌이 들었다.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여서 내 머리를 한손으로 받쳐들고 끝까지 읽었더랬다. 한강이라는 작가의 글빨은 누구든 다 아는 사실일테지만 이런 종류의 책은 아무리 글빨이 좋다 해도 절대 쉽게 쓰여질 수 없다는 것, 정말 온 몸의 사력을 다해 썼다는 것이 이 책을 관통하는 팩트다. 사서 읽지 않은것이 매우 후회될정도로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까지 마음이 시렸다. 그리고 이 작가가 이 소설을 쓰기위해 감내한 힘든 시간들을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진정 고통에 도달하는 길은 고통 뿐이구나. 작별하지 않고 작별할 수 없는 시간들을 계속 살아가야 하는 현재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좋은 소설이었다. 깊은 울림을 주는 그런 소설. 보석처럼 반짝 반짝 빛난다.

Posted by goun
books2022. 8. 8. 01:52

이쁘게 놓여있다. :)

서고운 작품집 <Outlanders> 구매 가능합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미술책방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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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oun
books2022. 6. 16. 16:01

"그 후 나는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자신을 부풀리고 과장하며 주도권을 쥐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그의 욕망과 리듬을 존중하고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것, 그러나 받아들이는 것을, 하나하나의 선물을 인생의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배울 줄 아는 것, 그리고 자만하지 않고 강요하지 않은 채 똑같은 선물을, 똑같은 기쁨을 상대방에게 줄 줄 아는 것이다. 요컨대 단순한 자유다. 세잔은 무엇때문에 생빅투아르산을 '매 순간' 그렸겠는가? 그것은 매 순간의 빛이 하나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삶이란 그 모든 비극에도 여전히 아름다울 수 있다. 그렇다,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루이 알튀세르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Posted by go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