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2023. 4. 26. 18:22

"탯줄과도 같은 감정. 언제 죽음으로 이어질지 모르는."

"아이의 뺨과 귀 사이에 난 작고 귀여운 점을 보고 조각의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걸린다. 아이의 팽팽한 뺨에 우주의 입자가 퍼져 있다. 한 존재 안에 수렴된 시간들, 응축된 언어들이 아이의 몸에서 리듬을 입고 튕겨나온다." p.96

"그것은 기억과 호환되지 않는 현재였고 상상에 호응하지 않는 실재였으며, 영원히 괄호나 부재로 남겨두어야만 하는 감촉이었다." p.131

"조각도 한때는 한번 본 사람의 얼굴은 잊지 않았던 시절이 있다. 힐끔 일별했을 뿐이라도, 때로는 옷깃만 스쳤더라도 그 순간의 공기나 냄새 같은 것으로 다음번에 다시 대상을 마주쳤을 때 기억을 상기할 수 있었다. 그래야만 살아가고 그러지 않고선 일을 할 수 없는 날들이 있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그 소질은 천천히 사라졌는데, 그건 단지 나이 들어 후각을 비롯한 감각이 떨어져서가 아닐 것이다. 수많은 죽음이 쌓이고 겹쳐 그전의 얼굴을 새로운 얼굴이 덮어버린 것이다. 그것을 거듭하다 모든 얼굴이 까맣게 덧칠된 느낌...... 총천연색으로 빼곡히 그린 스케치북을 송곳으로 긁어낼 준비를 위해 까망으로 뒤덮는 저 아이처럼." p.210

"나름의 아픔이 있지만 정신적 사회적으로 양지바른 곳의 사람들, 이끼류 같은 건 돋아날 드팀새도 없이 확고부동한 햇발 아래 뿌리내린 사람들을 응시하는 행위가 좋다. 오래도록 바라보는 것만으로 그것을 소유할 수 있다면. 언감생심이며 단 한순간이라도 그 장면에 속한 인간이 된 듯한 감각을 누릴 수 있다면." p.211

Posted by go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