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나의 은사님께 어제 받은 글을 일기장에 적어봤다. 처음에 받았을때도 울컥해서 눈물이 나려고 하는걸 꾹 참다가, 오늘 아침에 남편에게 읽어주면서도 눈물이 나려고 해서 그렁그렁하니까 남편 왈. 자기를 이렇게 믿어주고 응원해주시는 분이 있다는것에 감사하면 되지 왜 울고 그러냔다. 맞다. 그런데 자꾸만 나는 눈물이 난다. 선생님의 존재 만으로도 힘이 났었는데, 이젠 선생님이 많이 늙으셨다. 내가 육아때문에 힘들어하고 그럴때 너무 속상해서 계속 남편 다그치셨던 분. 그게 나에게 할 수 있는 가장 큰 애정이었던 분. 내가 작업을 잘 못해서 선생님이 걱정하시는거 다 알면서 작업을 못하고 있는 내가 너무 미워서 자책도 많이 했다. 보여드릴 신작이 별로 없어서 연락도 못드리곤 했다. 이런 나의 마음을 다 안다는 듯 어디에서는 선생님은 나를 응원해주고 계셨던 모양이다. 비내리는 오늘. 김필선 노래를 들으니 마음이 더 슬퍼지네. 내가 우주고 내가 전부인 우리 아기. 그리고 나의 작업. 나의 전부였던 작업...
# 어제도 러닝 연습을 하며 폭포까지 뛰었다. 뛰다보니 더 앞으로 가볼까싶어 더 더 앞길로 뛰었다. 그러다보니 대략 20년 전 내가 자취를 했던 그 옥탑방 동네가 나왔다. 여름엔 너무 뜨거워 숨쉬기 힘들었고, 겨울엔 너무 추워서 방안에서 옴짝달싹 못했던, 그저 춥고 쓸쓸했던 기억들이 스쳤다. 집 문을 들어가기 전, 옥상에서 발구르기를 하면 호다다닥 사라지던 바퀴벌레들, 먹던 과자봉지를 부엌에 잠시만 둬도 나타나던 개미떼들, 그리고 작은 냉장고엔 항상 성에가 끼어 있었지. 밤이되어 눈을 붙이려하면 창문으로 뒤쪽의 교회 십자가 불빛이 어른거리던 그 방. 잠시 그쪽으로 가볼까 싶다가 이내 발걸음을 돌렸다.
# 없던 희망을 쥐어짜서 희망이 있다고 나에게 주문을 걸며 살던 시절. 사람이 먹고사니즘에 너무 힘이 들기 시작하면 아주 먼 계획같은건 생각하기 어려워지는데도 그렇게 나는 하루 하루를 진한 밀도로 살아냈다. 어떤 날은 불꽃이 터지듯 나를 마구 바깥으로 밀어댔고, 어떤 날은 내가 녹아 사라질까봐 전전긍긍하며 차갑게 살았다. 그런데 그곳에 내가 오래 있을때마다 낡은 장판들이 내 몸을 잡아 끌어내리는 것 같았다. '당장 눈앞의 계획만 세우며 살아- 그냥 여기에 있어-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마- 좀 쉬어야될 것 같아-'
# 그때 그 시절의 나는 너무 기울어져서 뭐라도 붙잡고 싶었었는데... 그때 잡은게 유일하게 내 작업이었다. 내가 무얼 더 할 수 있었을까. 나는 많은 걸 놓쳤고, 그 많은 것들을 헤아리기도 지쳐서 앞만 보고 달렸다. 그래도 붙잡은 그것이 작업이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나. 나는 이제 사십이 넘었고, 20대의 나를 이렇게 추억할 수 있다. 그때의 나는 가볍지 못했지만 지나간 그 시절은 가볍게 느낄 수 있는 내가 되었다.
새소년 신곡이 얼마 전 유툽에 뜬거 알고 있었는데 시간 여유가 없어서 이제야 들었다. 그런데 소윤의 나레이션을 듣고 깜짝 놀라버렸다. 내가 예전에 안나푸르나에 올랐을 때, 그리고 최근에 다이애나 베리스퍼드-크루거의 책 나무를 대신해 말하기를 완독했을 때, 그때의 내 심정과 생각을 황소윤이 똑같이 말하고 있는게 아닌가! 우린 전생에 뭐 였나?ㅋㅋㅋㅋㅋ 5일 전에는 인스타그램에 산에 대한 나의 생각을 썼다. GOUN: "왜 바다보다 산이 좋았나 했더니... 봄, 여름, 가을, 겨울 이 사계절 풍경을 하나의 산에서 다 느끼면서 올랐던, 그 안나푸르나 산속의 숲들 때문이었던 것 같다. 벌써 다녀온지 13년이나 지났지만 기억은 선명하다. 숲에서는 실제로 행복한 기분을 느끼게 하고 면역체계를 통해 뇌에 영향을 미치는 알파 및 베타 피넨 pinene이라는 성분이 생성된다고 한다. 그 피넨이 나무에서 빠져나와 공기 중에 떠돌다 우리 몸에 흡수된다. (실제로 피넨의 좌선성 회전분자는 피부와 폐의 표면에서 쉽게 흡수되며 인간의 면역체계를 향상시킨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그것은 우리에게 마음의 평온을 주고, 작은 미물인 내가 전체에 속하는 일부라는 걸 느끼게 해준다. 산을 오를때에는 죽은 나무 같은데 살아있고, 살아있는데 죽은 것 같은 나무들을 많이 보았다. 그 나무들 사이사이로 너무나도 작은 생명들이 있었고, 발치에 치이는 벌레들과 귓가에 짹짹거리는 새들의 대화가 기억에 진하게 남아있다. 그때 산은 나에게 엄청 많은 걸 알려준 것 같다. 다녀오기 전의 나와 다녀온 후의 나는 너무 달랐으니까. 내 딸도 언젠가는 내가 느낀 그것들을 느껴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든다."
SOYOON: "...지금은 죽어있는 나무 옆에 앉아있다. 산에 오면 죽어있는 것들과 살아있는 것들, 죽어있어 보이는 것과 살아있어 보이는 것들이 함께 공존한다. 이 감각이 아마도 내가 지금을 사는데에 죽어있어 보이지만 살아있는 것, 살아있어 보이지만 죽어있는 것을 감각하게 하는 가장 큰 경험이자 근원적인 독서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산에서 자라는 것이 가끔 야속하기도 하다. 이곳 산은 도시에 비하면 아주 티끌같은 존재감이라서 누군가에겐 잠시 도피할 수 있는 곳에 지나지 않는다. 반대로 나는 도시로 잠깐 도피하고 있는 것일까? 어디가 내가 존재해야 할 또 다른 산일까? 그곳이 어디여도 괜찮은 것일까? 아니면 이곳, 지금 내가 앉아있는 이 땅 위가 내가 살아가야 할 곳일까? 계속해서 부유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나아가지 않으면 회상하게 된다. 내가 자라온 곳이 내가 돌아가야 할 곳일까? 내가 자라온 곳은 내가 버려야 할 곳일까? 아마도 몇년 동안은 분명히 나는 그걸 버려왔던 것 같다. 몇년이 흘러 지금 오늘 자라온 곳에 돌아왔을 때 나는 이곳에 더 머무르고만 싶어진다. 지금 이 죽은 나무 옆에 앉아있을 때에 이제 죽은것과 살아있는 것 모두 살아있는 것이라고 느껴지게 된다. 조화와 균형은 믿음 아래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조화와 균형은 실재를 감각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믿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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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윤의 생각들을 나도 참 많이 했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어딘지에 대해서, 그리고 내가 믿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그리고 20년 전 쯤에는 살아있는데 죽어있는 것 같고, 죽어있는데 살아있는 것 같은 그런 언캐니함을 가지고 그림 작업을 한 적도 있다. 그리고 그 낯섬을 안나푸르나 산에서 아주 강렬하게 느꼈었는데, 소윤은 하물며 그것을 동네의 뒷산에서 느꼈구나...ㅎㅎㅎ 그녀는 지금 그 감각들을 가지고 무언가를 하려하고 있는 것 같다. 다음번에 만들어질 음악들이 엄청 기대되네. 두 발을 땅에 잘 딛고, 답이 없는 행진을 씩씩하게 잘 이어나가기를 바란다. 건강하게, 조금만 덜 쓸쓸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