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리다의 책을 읽었다. 프리다는 내가 알던 것 보다 더 자유분방한 사람이었네...어디보자,,, 프리다와 관계를 맺은 사람은 10대 때 첫사랑 알렉스(알레한드로 고메스 아리아스)부터 시작해 여자 사서, 인쇄소를 하던 아빠의 친구 페르난데스, 티나(디에고 리베라를 소개시켜준 여자), 디에고 리베라, 니콜라스 머레이, 이사무 노구치, 레온 트로츠키, 그의 비서 장, 조지아 오키프, 쥘리앙 레비, 독일인 하인츠...알려진 것만 이 정도. 성적으로도 너무 자유로웠고, 자신의 사상도 자유로웠을 뿐만아니라 작업에 있어서도 자유로웠다. 그는 팬 섹슈얼리스트에다가 폴리아모리스트였던 것. 엄청난 다자연애 끝에 리베라와 재결합을 할 때 성관계를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쓴 것도 재미있다. 그녀는 처음부터 폴리아모리스트였을까 아니면 리베라의 계속되는 성적 외도때문에 복수심에 불타 시작된걸까? 아마도 나는 그녀가 태어났을때부터 폴리아모리스트였을거라 생각한다. 모든 부분에서 욕망이 강렬하고 솔직했던 그녀였으니까. 우리나라에서 그랬다면 나혜석에게 돌을 던진 많은 사람들처럼 똑같이 프리다도 돌을 맞았으려나? 프리다보다도 어쩌면 더 강렬하게 여성주의 예술, 민주주의 예술, 자유주의 예술을 하고자했던 나혜석이었는데, 자신의 서사를 그림으로 표현하기까지 그 당시 서양화라는 것은 나혜석에게 너무 큰 장벽이지 않았을까. 보고 듣고 배우는 것들 자체가 달랐기때문에 그림보다 글이 어쩌면 더 편한 매개체였을수도 있다. 나혜석의 작품을 평가하기 이전에 전쟁을 겪은 비운의 여성으로서의 삶을 먼저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주체적인 삶을 살아간 나혜석을 프리다처럼 똑같이 이해하고 싶고 그래야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비록 나혜석이 프리다보다 10년은 먼저 태어났지만 말이다.
# 나혜석이 살던 그 당시, 일본 유학이나 여행을 갈 수 있었던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부유한 집안의 사람들이었고, 그들은 여성이지만 정말 약자로서의 여성의 처지는 잘 몰랐던, 그런 사람이었을 것이다. 아마 나혜석도 그러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그녀는 자신의 처지가 어떠한지 잘 알았고, 그 앞이 어떠할지 알면서도 자신의 선택에 후회없이 살다 간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자신이 하고자하는 이야기들을 남기기 위해 끝까지 글을 썼고 작업을 했으니까. 글이 소실되고 그림들이 불타 사라져 남아있지 않다고해도 그가 보낸 그 시간들의 흔적은 남아있으니까. 그런 그녀의 삶은 반쪽 페미니스트로서의 삶이 아니었다. 만일 그가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다면 어떨까? 많은 것들이 달라졌을까? 나는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