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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첫 영어 장편 영화인 <더 룸 넥스트 도어>를 봤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영화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이 영화를 내 최애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영화가 끝나고 한참을 죽음에 대한 명상을 했던 것 같다. 자신의 죽음을, 아니면 가까운 타인의 죽음을 어떤 방식으로 받아들일지에 대해, 그리고 관계들, 시간들 사이의 여러가지 감정들... 죽음에 대한 세심한 대화들과 위로와 안녕을 바라는 마음에서 너무 따뜻하면서도 비극적인 감정이 계속 교차되었는데, 그건 이 둘의 연기가 너무 훌륭했기 때문인 것 같다. 영화 속 아름다운 컬러들에 매료된 상태로 죽음에 대한 성찰을 할 수 있게 해준 영화. 나는 이 영화를 사랑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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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내 삶은 생과 사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삶과 죽음이 하나의 유기체처럼 큰 바다를 향해 작은 강물들이 모이는 듯 해. 그리고 나는 망망대해에 돛단배 하나 타고 하릴없이 흐느적거리는 존재처럼 느껴져. 살아간다는 건, 죽는다는 건 도대체 뭘까.
나는 삶과 죽음이 한 단어로 불리는 것을 들으며, 이제 막 백일을 넘긴 내 조카를 보며, 오늘도 생의 의미를 반추하며 길을 나서. 엄마 손을 잡고 소아과에 진료를 받으러 가는 유아를 보고, 반세기 전에는 엄마 손을 잡았을지도 모르나 지금은 바싹 마른 나무처럼 늙어버린 손으로 폐지를 줍고 있는 노인을 봐.
결국 인생이란 것도 그런게 아닐까. 나에게 주어진 것은 무엇이든, 그게 돈이든 나의 인연이든, 심지어 내가 차곡차곡 쌓아온 기억이든. 세월이 흐르면서 민들레 홀씨가 날아가듯 서서히 하나 둘씩 바람을 타고 사라져가고 나중에 홀로 남은 나 자신만이 눈을 감게 되는 것.
적지 못한 감정, 담지 못한 마음, 쓰지 못한 기억, 하지 못한 노래. 그리고 잊지 못한 사람에 관한 모든 기억을 하나씩 잃어간다는 건 어떤 비극일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다 부질없이 느껴지는데, 나는 뭐가 아쉬워서 모든 것을 꽉 붙잡기 위해 아등바등 현재을 보내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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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신의 탄생을 선택하지 않았다. 우리는 다만 낳아진 존재다. 이것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기에 내가 어떻게 할 수도 없다. 좋은 환경에서 태어났다면 감사할 일이다. 만약 나쁜 환경에서 태어났다면 더 나쁜 상황에서 태어나지 않은 것을 감사할일이다."
"바다를 보지 못한 사람은 바다를 상상할 수 없다. 우리는 죽음을 경험하지 못한다. 바다를 보지 못한 사람이 바다의 광활함과 깊음을 상상하지 못하는 것처럼 죽음을 경험하지 못하는 우리가 어떻게 죽음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다만 죽은 자들로부터 배워 지금 우리 삶에 도움이 되길 바랄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죽은 자들로부터 무언의 말을 들어야하고 그들에게서 배워야한다."
나주영 법의학자님의 책은 그 전에도 읽었어서 쉽게 쉽게 쓰신다는 거 알고 가볍게 골랐다. 그런데 이번에도 꼭 필요했던 이야기들, 콕콕 찝어서 이야기해주셔서 다시 한번 되새기면서 책읽기를 끝냈다. 사전 연명의료의향서도 매번 써야지 써야지 하고는 잊어버리고...이번에 이 책 읽고 빨리 써놔야겠다고 다짐. 죽음이라는 것이 모든 것을 끝내는 것은 아니니 현실에 충실하고 죽음을 기억하며 잘 살자는 큰 이야기들인데 죽음과 관련된 책과 그림 영화들을 추천해주셔서 좋았다. <제 7일>, <죽음의 에티켓>,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는 곧 읽어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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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보고싶었던 영화 <공작새>를 드디어 보았다. 보고 나왔는데 계속 여운이 남아 가던 길을 멈추고 이 글을 쓰고 있다.
이 영화는 올해 나의 최고의 영화다... 나는 퀴어 영화를 즐겨보는 편이고, 가끔은 퀴어 영화에 반감이 있는 사람들에게 그게 왜 반감이 드는지 묻고 싶은 심정일때가 많다. 그리고 그냥 그들의 삶을, 내가 잘 모르는 삶을 바라보고, 쉽게 판단하려는 오류를 범하지 않으려 한다. 그런데 가끔 퀴어 영화들을 보면 저예산 독립 영화일 경우가 많아 퀄리티가 떨어지거나 연기가 매우 어색한 경우나 연출에 있어 아쉬움이 클때가 많았다.
그래서 였을까? 공작새는 내가 지금껏 본 그 어떤 퀴어 영화보다도, 아니, 그냥 퀴어라는 단어를 빼고도 참 좋은 영화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난 가끔 유투브로 왁킹 댄서들 배틀 영상을 볼 때마다 감탄을 하고 침을 흘리며 보곤 했는데, 이 영화에는 실제로 왁킹댄서로 활동하고 계시는 해준님이 배우로 나온다. 얼굴, 표정, 연기… 다 빠지는거 없이 멋졌고, 특히 춤 추실때… 피지컬 장난아닌데 그 긴 팔과 다리로 진심을 다해 추는 모습에 정말 전율이 일었다.
내가 뽑은 최고의 씬은 고향으로 내려가서 조깅을 하다가 추는 즉흥 춤 장면 아닐까. 그 춤 장면이 두번 나왔는데 둘 다 너무 아름다웠다. 카메라 무빙과 연출의 힘도 대단하다고 느꼈다.
영화 보면서 잘 우는 타입 아닌데 이 영화 보고 3번이나 눈물이...ㅠㅠ 아. 아름다운 미장센에 빠져들다가, 배우들의 연기에 또 빠지고, 해준님의 춤에 빠지고, 마지막 용서와 화해를 통해 연대하는 장면에서 빠지고… 뻔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뻔하지 않게, 진심으로 다가온 그런 영화였다고 고백해본다. 결국은 사랑이고 연대이다. 따뜻하고 아름다운 이 영화를 다들 많이 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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