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2021. 4. 5. 13:18

# 어젯밤에는 아기가 새벽 1시 쫌 넘어 깨서 바로 잠에 들지 못했다. 내가 재우고 재우다가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 반쯤 지나서는 나도 멘탈이 탈탈탈 털리기 시작했다. 아기에게 짜증내고 소리 지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도 어제는 나도 모르게 너무 힘들어 왜 안 자냐고 큰소리를 냈다. 3시 40분쯤 도저히 안 되겠어서 다 내버려두고 부엌으로 갔다. 오전에 해야 할 일이 산더미라 그걸 마저 해놓으려고 이유식 만들 준비를 했다. 등 뒤에서는 아기가 계속 울고 도마에 칼질을 하는 내 멘탈도 말이 아니었다. 내가 옆에서 떨어지자 아기는 30분을 내리 울기만 했다. 거의 자지러지면서. 아기 우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 했지만 아기는 달래지지가 않았다. 이유식 만들기가 끝날 때까지 아기는 쏘서에 앉아 울고 있었다. 너무 버겁고 슬프고 힘이 드는 순간이었다. 다시 또 아기를 재우기 위해 들어간 건 새벽 4시 10분쯤이었다. 아기는 겨우 잠을 잤지만 나는 너무 정신이 또렷해져 버렸고, 그냥 모든 게 다 미안했다. 잠을 못 자는 아기 본인도 많이 힘들었을 텐데, 나는 그 순간을 견디지 못했다. 내 손만 필요로 하는 아기여서 밤이 더 고통스러웠다.

아침에 일어나니 날이 너무 청명하고 예뻐서 슬펐다. 날이 좋으면 기분이 좋아야하는데 간밤에 아기의 모습이 생각나기도 하고, 나의 부끄러운 모습도 기억이 났다. 허겁지겁 아기 등원 준비를 하고 유모차를 끌고 밖으로 나오니 산뜻하고 싱그러운 공기가 코끝을 찔렀다. 이렇게 예쁜 봄날에 우리 아기와 내가 같은 곳을 보며 가고 있었다. 아기는 찬 공기에 손을 쫙 뻗어 만지작만지작하는 시늉을 하고, 하늘을 바라봤다. 또 옆에 서 있는 나의 옷 주머니 소매들을 만지며 너무 재밌어하며 까르르 소리를 냈다. 어젯밤의 그 울음들이 공기 중으로 사라져 버리는 것 같았다. 

# 점점 수월해질 줄 알았던 육아는 점점 고되고, 나의 작업은 진전이 없다. 그나마 다행인것은 독서모임을 하고 있다는 것과 내가 크게 아픈 곳이 없다는 것. 매일매일 온몸이 피로하고 힘들지만 그래도 크게 아픈 곳은 없다. 이것이 참으로 감사하다. 탈탈 털려가는 멘탈을 잡기 위해서는 매일 작업실에서 내 생각과 마음가짐을 정리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나의 힘듦이 아기에게로 전이될 테니까. 내가 힘든 것을 남에게 전달하기 싫다. 자칫하면 자꾸 남 탓을 하게 되는데 그러지 않으려고 엄청 많이 고민하고 노력한 오늘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하고, 못하겠을 때는 한 발자국 멀리 떨어져서 나를 바라봐야 한다. 점점 인내심이 생기고 사랑이 깊어지고 감정에 다양한 결이 생겨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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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oun
Diary2021. 3. 20. 00:39

국현 서울관에 갈때마다 1층에 있는 미술책방에 들러 내 책을 확인해본다. 오늘은 작가의 서명이 담겨있다는 푯말을 보고 귀여워서 찍어봤음.

국현에서 나와 학고재와 국제 갤러리, 갤러리 현대, 원앤제이 갤러리, 소쇼룸을 둘러본 후 은경 작가의 전시장으로 향했다. 우린 2017년에 갤러리 밈에서 개인전을 할 때 위아래층으로 만났고, 그 이후에 여성작가 SF 독서모임에서 우연히 다시 만나면서 조금 더 친해졌다. 작업 이야기를 할 때에는 서로 진지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서 좋았고, 또 은경 작가의 대담함과 차분함 속에 깔린 예민함이 좋았다. 

너무 오랜만에 만난 셋. 너무 행복했고 좋은 만남이었다. 요다와는 5년 만에 만났고, 요다와 은경 작가는 근 10년 만에 만나 서로 얼싸안고 반가워했다. 20대 중반쯤 요다와 함께 작업실 쓰면서 참 재밌었던 기억들이 많은데, 우리는 이제 불혹을 앞두고 있다. 은경 작가의 전시장에서 만나 햇살 좋은 곳에서 마스크 벗고 수다 떨고 있으니 10년은 더 젊어진 듯했다.

은경 작가의 자화상들을 보고 있노라니, 내가 자화상을 그린 게 언제였더라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처음 그랬던 자화상은 2004년이었나. 벽을 짚고 구토를 하는 목탄 드로잉이었다. 나는 내 얼굴을 직접적으로 그린 자화상이 그리 많지 않지만, 각기 다른 형상들을 통해 그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자화상이기도 하고 자화상이 아니기도 한 그런 그림들인 것. 자신의 얼굴을 똑바로 마주한다는 것은 그만큼 큰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

은경.

'은경 얼굴'을 그리는 사람이다. 하지만 자기 얼굴에 자신의 이야기만 담아 그리진 않는다. '은경 얼굴'은 때로는 어떤 이야기나 상황을 그리기 위한 장치로서, 일종의 매개자로 역할한다. 현시대에 터져 나오는 수많은 사회적 이슈, 그중에서 놓치지 않고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주제는 사회적으로 충분히 보호받지 못한 대상들에 대한 것이다. 아쉬움, 슬픔, 분노를 넘어 당연한 권리에 대해 자신의 소리를 제때 적당한 크기로 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은 내내 은경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아 왔다. 온당한 자신의 소리를 내는 것이 연습되지 않고 익숙하지 않은 '또 다른 은경'들을 위한 소리를 내는 그림을 그리고자 한다. 피해자나 약자가 없는 사회는 세상에 없었다. 마땅한 주장을, 자기 소리를 내는 것을 피하지도, 두려워하지도 말라는 메시지를 은경 얼굴에 담아 그림 속 은경이들이 '또 다른 은경'의 편이 되어 같은 쪽에 나란히 서고자 한다. 그런 힘이 있는 그림을 그리는 작가이고 싶다.

2020.

*****

 

 

* 전시장에 가면 책이 한권 있는데, 전시를 준비하며 함께 나누었던 세명의 작가분들의 글이 수록되어있다. 꼭 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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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oun
Diary2021. 2. 27. 16:26

# 내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엄마의 마음, 엄마의 생각을 알까. 지금 내가 엄마의 나이가 된대도 나는 평생 엄마의 마음을 잘 알지 못할 것 같다. 그 사랑의 크기를 가늠이나 할 수 있을까. 엄마는 표현을 잘 안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어릴 적부터 그렇게 부엌에만 붙어계셨다. 우리 가족들이 먹을 것을 매번 손수 하시기 위해서 엄마의 앞치마는 오전부터 저녁까지 엄마의 목에 걸려있었다. 그래서 나는 부엌 노동이 싫었다. 엄마를 항상 붙들고 있는 '먹을거리'라는 게 싫었다. 엄마가 부엌에서 해방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고생스럽게 매일의 아침 점심 저녁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며 잔소리도 많이 했는데, 엄마는 그 삶이 진심으로 행복했던 거였나? 엄마는 그게 사랑의 표현이었나? 

아기를 낳고 일년 간 아주 열심히 부엌 노동을 했다. 가스레인지와 오븐이 매일매일 돌아갔고, 설거지는 하루 세 번, 바닥은 하루 스무 번씩 닦았다. 자취할 때 가스를 2주 정도 튼 적이 없는 나로서는 너무 신기한 일이었다. 아기를 생각하는 마음만 있었다. 나는 그게 (부엌일을 싫어하는) 나에게 진짜 힘든 일인걸 알았지만 그땐 힘든 줄 몰랐다. 그러고 나서 일 년 뒤 내 손가락을 보니 손가락 마디 끝부분이 다 거칠거칠해지고 하얀 각질이 일어나 있었다. 엄마 손을 만질 때마다 느꼈던 그 거칠고 메마른 나무 같은 느낌이 내 손가락에서 났다. 

나는 알지 못한다. 엄마의 마음을. 엄마는 자식이 50이 되어도 엄마 눈엔 귀여운거라고 했는데, 이제야 그 말의 의미를 아주 조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형부의 부재로 모든 식구들의 멘털이 힘들었을 때에도 엄마는 언니를 챙기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매주 언니의 밥을 위해, 언니의 마음을 토닥거려주기 위해 먼길을 오고 갔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나와 아기는 자주 볼 수 없었다. 그때마다 엄마는 너무 서운해하지 말라고, 엄마가 미안하다고 말하셨는데, 내 아이를 내가 돌보는 일을 왜 엄마가 미안해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말했다. 나는 그게 더 좋았다. 엄마가 내 자식 때문에 힘든 게 싫었으니까. 도움이 정말로 필요하면 말할게, 그런데 나 혼자서도 괜찮아.라고 말하면서 혼자 으쓱하기도 했다. 엄마는 매 순간 미안해하신다. 이제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엄마니까 그런 건 당연하다는 걸 이제는 알겠다. 나도 똑같이 내 아이에게 그렇게 하게 될 테니까. 

# 최근 작업이 잘 안풀려 힘들었다. 작업을 하려 하면 아기를 데리러 가야 하고, 그런 시간이 반복되다 보니 초조하기만 했다. 그런데, 얼마 전 만났던 작가님들 몇 분께서 좀 시간이 필요한 게 당연한 거라고 말씀해주시면서 많이 응원해주셔서 힘이 났다. 매일 밤마다 아기를 재우고 나면 몸이 너무 피곤한데도 잠이 안 왔다. 목구멍이 멍든 것처럼 갑갑하고 막 심장 안으로 뒷걸음질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드로잉북을 펼쳐놓고는 아무것도 안 하고 멍 때리다가 새벽을 넘기는 일도 많았다. 꿈속에서는 불안해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그럴 때마다 불안한 꿈을 꿨고, 일어나면 팔다리도 쑤시고, 손가락 마디마디가 부어있어 주먹이 잘 쥐어지지 않았다. 출산 후에 거의 8달 정도까지 손이 부어있었는데, 나아졌다가 최근에 다시 붓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도 작업 스트레스는 스트레스고, 아기만 보면 힐링이 되니까 아기 앞에서는 매일 열심히 아가를 웃기고, 아기와 놀고, 책도 하루 20권 이상씩 읽어주고, 집안 청소도 열심히 하고 그러고 산다. 주변이 더러우면 더 스트레스받으니까. 작업실에 와서는 캔버스에 젯소칠을 하고, 굳은 붓들을 녹이며 작업 준비를 한다. 준비 자체만으로도 마음이 좀 편안해지는 것 같다. 작업할 것들, 자료들을 모으며 충만한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이런 마음들 때문에 계속 작업을 하게 되는 걸까. 나는 엄마 노릇과 작가로서의 삶 이 두 가지를 능숙하지는 않더라도 잘 해내고 싶다. 난 완벽한 사람이 아니어서 항상 노력이 몸에 베어 있는건가보다. 최선을 다하는게 무엇인지 잘 모르면서 그저 최선에 가깝게 되기를 바라며 그렇게 사는 것. 누가 뭐래도 나는 그런 내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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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oun
Diary2021. 2. 9. 21:48

# 2016년이었나. 갑자기 내 혀에 이상한 자국들이 생겨난 걸 발견했었다. 그때는 왜 그런 자국들이 생겼을까 하고 내과 진료를 볼 때 한번 의사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그건 다른 쪽으로 가서 진료를 보시라' 이런 답변에 그냥 별거 아니겠지 하고 넘어갔더랬다. 2016년에는 엄청 큰 스트레스를 받았던 사건이 있었다. 모 레지던시 면접에서 베를린 레지던시 최종합격자로 나를 선정해놓고는 독일에 가기 몇 주 전에 독일행이 취소되었고, 1차 2차 심사 때도 없었던 다른 작가가 베를린으로 가게 된 사건이었다. 내가 왜 독일에서 리젝 되었는지 그 기관에서도 알지 못하였고, 나이가 어려서, 영어 인터뷰가 있어서 라는 둥의 이상한 이야기들만 하고서는 갑자기 미안하다는 말로 모든 게 취소된 사건이었다. (사실 나 대신 간 작가는 잘못이 없는데도 계속 내게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그 당시, 매일매일 독일서 할 작업들만 생각하며 기대에 부풀어 있었고, 하던 강사일도 정리를 했었다. 그런데 한순간에 독일도 못 가고 작업도 못하고 일까지 못하게 되었으니 그 스트레스는 어마어마하였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이를 악 무는 습관을 가지게 된 것이.

얼마 전에 치과에 갔다가 엄청난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이를 악 무는 습관이 너무 심해서 입 안쪽에 이상하게 자라난 잇몸 뼈와 양쪽 볼 안에 찝힌 자국들과 혀의 자국들이 너무 선명했고, 또 위쪽 어금니는 이미 금이 가고 썩어있었다. 이 원인이 스트레스라고 하는데, 2016년부터 이래 온 것이니 5-6년 간 내가 나를 이렇게 만들어왔구나 싶었다. 정도가 심하다고 했다. 그래서 치료를 이것저것 해야 하는데 돈도 많이 들고, 가뜩이나 시간도 없는데 치료는 해야 하니 참 착잡한 심정이 들지 않을 수 없다.

# 스트레스라면 또 2018년이 대단했다. 전시를 했던 곳에서의 이런저런 일들로 마음의 상처를 받고 악몽 같았던 2주를 보냈다. 전시 오픈날까지 현수막이고 포스터고 조명이고 제대로 됐던 것이 없었고, 하물며 현수막은 같은 날 오픈하는 모 작가의 것과 어울리지 않는다며 내게 아무 말 없이 이미지를 바꿔놓기도 하였으니 내 자존심이 갈기갈기 찢겨 바닥에 버려진 것 같았다. 더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상황을 덮어두고 나만 잊어버리면 된다고 생각할까도 했지만 난 그러지 못했고, 갤러리에서 내게 요구하는 여러 일들을 거부하며 더 상황이 안 좋아졌다. 스트레스가 쌓이고 쌓여 결국 내 마음이 점점 피폐해지고 조금씩 잘못된 습관이 생겨 지금까지 내 몸을 아프게 해왔던 것이다. 이 문제 때문에 3차 신경 통인 줄 알았던 턱관절, 광대, 편두통의 원인이 이 악무는 습관 때문이었다는 것도 이번에 알게 되었다. 

스트레스를 제어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이제는 스트레스가 사라진다해도 습관이 되어 나를 망치고 있으니 빨리 치료가 시급해진 것이다. 2021년에는 좋은 일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우리 가족이 행복하고 작업도 잘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말하니 큰 욕심들은 이미 내 인생에서 사라져버린 것 같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이 욕심들이 가장 큰 것들이 아닌가도 싶다. 건강하게 사는 것과 작업을 함께 할 수 있는 삶.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오늘도 마음을 다 잡아본다.

Posted by goun
Diary2021. 2. 7. 14:23

# 22년 지기 친구와 전화 통화를 하다가 '인도가 왜 좋아?'라는 질문을 받았는데, 그 순간 내가 엄청 많은 걸 말하고 싶어 한다는 걸 알았다. 그건 밤을 새워도 될 정도의 일이었다. 인도가 좋은 이유도 있지만 싫은 이유도 있기는 해서 2-3가지 위험했던 상황들을 말해주니 자기는 죽었다 깨어나도 절대 그곳에는 못 갈 것 같다 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정말 위험천만한 일들도 있긴 했다. 내가 잘 기억을 하지 않으려 할 뿐. 갑자기 어딘가로 끌려가 돈을 뜯긴다거나, 분명 길을 안다고 말한 릭샤 아저씨가 나를 도로 한복판에 내려놓고 사라진다거나, 버스 맨 뒷좌석에 앉은 나의 옆으로 인도 남자들이 계속 내 몸을 터치하려 한다던가, 지나가다가 내 몸의 일부를 만지고 도망가는 일이라던가, 숙소에서 같이 지내던 친구의 가방이 다 털렸던 사건도 있었고... 화장실에 들어간 나를 몰래 훔쳐보던 인도 애도 있었다.(바깥에 있던 화장실이었는데 뒤쪽이 뚫려있었음) 쓰다 보니 엄청 많군! 그런데도 인도가 좋은 이유는 그런 일들보다 좋은 일들이 더 더 더 많고 크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갈 수 있겠지 인도. 너무 그리워서 또 글로 남겨본다.

# 나는 노력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열여덟살때인가, 노력이라는 단어를 매우 싫어하는 친구가 있었지. 그건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이유였던 것 같다. 그러나 매사에 노력파인 나는 노력 자체가 나쁘다는 생각을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노력이란, 시도를 하고 실패를 해도 거기서 머물지 않고 다시 시도 하고 실패하는 것이다. 실패를 할 수 있도록 해주는 매개이다. 실패가 반복되면서 나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아무런 노력 없이는 0.01%의 변화는 커녕 쉽게 퇴보하고 말 걸. 인간은 너무 쉽게 늙고, 너무 쉽게 퇴보한다. 생각이 늙으면 몸도 저절로 늙기 마련. 매사에 노력하고 배우려는 마음가짐으로 살면 모든게 흥미롭고 즐거울테다. 나는 지금도 계속 배울거리를 찾고 있다.

# 요즘 나혜석의 책을 읽고 있다. 읽다 보니 왜 나는 이제야 그 책을 읽고 있나 싶은 것이다. 유투브로 '경희' 소설을 읽어주는 분이 있어 그것도 계속 듣고, 나혜석의 일생에 대해서 이것저것 찾아보고 있다. 참 멋진 여자. 

사람은 쓸데없는 격식과 세간의 체면과 반쯤 하는 학문의 속박을 많이 받습니다. 있으면 있을수록 더 가지고 싶은 것이 돈 이외다. 높으면 높을수록 더 높아지고자 하는 것이 지위 외다. 가지면 가지는 만큼 음기로 되는 것이 학문 이외다. 사람의 행복은 부를 얻은 때도 아니요, 이름을 얻은 때도 아니요, 어떤 일에 일념이 되었을 때외다. 일념이 된 순간에 사람은 깨끗이 씻은듯한 행복을 깨닫습니다. 즉 예술적 기분을 깨닫는 때외다. 

인생은 고통 그것일는지 모릅니다. 고통은 인생의 사실이외다. 인생의 운명은 고통 이외다. 일생을 두고 고통스러운 병을 깊이 맛보는 데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 고통을 명확히 사람에게 알리는 데 있습니다. 평범한 이는 고통의 지배를 받고 천재는 죽음을 가지고 고통을 이겨내어 영광과 권위를 취해 낼 만한 살 방침을 차립니다. 이는 고통과 쾌락 이상 자기에게 사명이 있는 까닭 이외다. 그리하여 최후는 고통 이상의 것을 만들고 맙니다.

번뇌 중에서도 일의 시초를 지어 잊는다.

내 갈 길은 내가 찾아 얻어야 한다. 

p.191-192 나혜석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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