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현에서 나와 학고재와 국제 갤러리, 갤러리 현대, 원앤제이 갤러리, 소쇼룸을 둘러본 후 은경 작가의 전시장으로 향했다. 우린 2017년에 갤러리 밈에서 개인전을 할 때 위아래층으로 만났고, 그 이후에 여성작가 SF 독서모임에서 우연히 다시 만나면서 조금 더 친해졌다. 작업 이야기를 할 때에는 서로 진지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서 좋았고, 또 은경 작가의 대담함과 차분함 속에 깔린 예민함이 좋았다.
너무 오랜만에 만난 셋. 너무 행복했고 좋은 만남이었다. 요다와는 5년 만에 만났고, 요다와 은경 작가는 근 10년 만에 만나 서로 얼싸안고 반가워했다. 20대 중반쯤 요다와 함께 작업실 쓰면서 참 재밌었던 기억들이 많은데, 우리는 이제 불혹을 앞두고 있다. 은경 작가의 전시장에서 만나 햇살 좋은 곳에서 마스크 벗고 수다 떨고 있으니 10년은 더 젊어진 듯했다.
은경 작가의 자화상들을 보고 있노라니, 내가 자화상을 그린 게 언제였더라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처음 그랬던 자화상은 2004년이었나. 벽을 짚고 구토를 하는 목탄 드로잉이었다. 나는 내 얼굴을 직접적으로 그린 자화상이 그리 많지 않지만, 각기 다른 형상들을 통해 그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자화상이기도 하고 자화상이 아니기도 한 그런 그림들인 것. 자신의 얼굴을 똑바로 마주한다는 것은 그만큼 큰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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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경.
'은경 얼굴'을 그리는 사람이다. 하지만 자기 얼굴에 자신의 이야기만 담아 그리진 않는다. '은경 얼굴'은 때로는 어떤 이야기나 상황을 그리기 위한 장치로서, 일종의 매개자로 역할한다. 현시대에 터져 나오는 수많은 사회적 이슈, 그중에서 놓치지 않고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주제는 사회적으로 충분히 보호받지 못한 대상들에 대한 것이다. 아쉬움, 슬픔, 분노를 넘어 당연한 권리에 대해 자신의 소리를 제때 적당한 크기로 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은 내내 은경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아 왔다. 온당한 자신의 소리를 내는 것이 연습되지 않고 익숙하지 않은 '또 다른 은경'들을 위한 소리를 내는 그림을 그리고자 한다. 피해자나 약자가 없는 사회는 세상에 없었다. 마땅한 주장을, 자기 소리를 내는 것을 피하지도, 두려워하지도 말라는 메시지를 은경 얼굴에 담아 그림 속 은경이들이 '또 다른 은경'의 편이 되어 같은 쪽에 나란히 서고자 한다. 그런 힘이 있는 그림을 그리는 작가이고 싶다.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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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장에 가면 책이 한권 있는데, 전시를 준비하며 함께 나누었던 세명의 작가분들의 글이 수록되어있다. 꼭 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