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엄마의 마음, 엄마의 생각을 알까. 지금 내가 엄마의 나이가 된대도 나는 평생 엄마의 마음을 잘 알지 못할 것 같다. 그 사랑의 크기를 가늠이나 할 수 있을까. 엄마는 표현을 잘 안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어릴 적부터 그렇게 부엌에만 붙어계셨다. 우리 가족들이 먹을 것을 매번 손수 하시기 위해서 엄마의 앞치마는 오전부터 저녁까지 엄마의 목에 걸려있었다. 그래서 나는 부엌 노동이 싫었다. 엄마를 항상 붙들고 있는 '먹을거리'라는 게 싫었다. 엄마가 부엌에서 해방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고생스럽게 매일의 아침 점심 저녁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며 잔소리도 많이 했는데, 엄마는 그 삶이 진심으로 행복했던 거였나? 엄마는 그게 사랑의 표현이었나?
아기를 낳고 일년 간 아주 열심히 부엌 노동을 했다. 가스레인지와 오븐이 매일매일 돌아갔고, 설거지는 하루 세 번, 바닥은 하루 스무 번씩 닦았다. 자취할 때 가스를 2주 정도 튼 적이 없는 나로서는 너무 신기한 일이었다. 아기를 생각하는 마음만 있었다. 나는 그게 (부엌일을 싫어하는) 나에게 진짜 힘든 일인걸 알았지만 그땐 힘든 줄 몰랐다. 그러고 나서 일 년 뒤 내 손가락을 보니 손가락 마디 끝부분이 다 거칠거칠해지고 하얀 각질이 일어나 있었다. 엄마 손을 만질 때마다 느꼈던 그 거칠고 메마른 나무 같은 느낌이 내 손가락에서 났다.
나는 알지 못한다. 엄마의 마음을. 엄마는 자식이 50이 되어도 엄마 눈엔 귀여운거라고 했는데, 이제야 그 말의 의미를 아주 조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형부의 부재로 모든 식구들의 멘털이 힘들었을 때에도 엄마는 언니를 챙기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매주 언니의 밥을 위해, 언니의 마음을 토닥거려주기 위해 먼길을 오고 갔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나와 아기는 자주 볼 수 없었다. 그때마다 엄마는 너무 서운해하지 말라고, 엄마가 미안하다고 말하셨는데, 내 아이를 내가 돌보는 일을 왜 엄마가 미안해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말했다. 나는 그게 더 좋았다. 엄마가 내 자식 때문에 힘든 게 싫었으니까. 도움이 정말로 필요하면 말할게, 그런데 나 혼자서도 괜찮아.라고 말하면서 혼자 으쓱하기도 했다. 엄마는 매 순간 미안해하신다. 이제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엄마니까 그런 건 당연하다는 걸 이제는 알겠다. 나도 똑같이 내 아이에게 그렇게 하게 될 테니까.
# 최근 작업이 잘 안풀려 힘들었다. 작업을 하려 하면 아기를 데리러 가야 하고, 그런 시간이 반복되다 보니 초조하기만 했다. 그런데, 얼마 전 만났던 작가님들 몇 분께서 좀 시간이 필요한 게 당연한 거라고 말씀해주시면서 많이 응원해주셔서 힘이 났다. 매일 밤마다 아기를 재우고 나면 몸이 너무 피곤한데도 잠이 안 왔다. 목구멍이 멍든 것처럼 갑갑하고 막 심장 안으로 뒷걸음질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드로잉북을 펼쳐놓고는 아무것도 안 하고 멍 때리다가 새벽을 넘기는 일도 많았다. 꿈속에서는 불안해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그럴 때마다 불안한 꿈을 꿨고, 일어나면 팔다리도 쑤시고, 손가락 마디마디가 부어있어 주먹이 잘 쥐어지지 않았다. 출산 후에 거의 8달 정도까지 손이 부어있었는데, 나아졌다가 최근에 다시 붓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도 작업 스트레스는 스트레스고, 아기만 보면 힐링이 되니까 아기 앞에서는 매일 열심히 아가를 웃기고, 아기와 놀고, 책도 하루 20권 이상씩 읽어주고, 집안 청소도 열심히 하고 그러고 산다. 주변이 더러우면 더 스트레스받으니까. 작업실에 와서는 캔버스에 젯소칠을 하고, 굳은 붓들을 녹이며 작업 준비를 한다. 준비 자체만으로도 마음이 좀 편안해지는 것 같다. 작업할 것들, 자료들을 모으며 충만한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이런 마음들 때문에 계속 작업을 하게 되는 걸까. 나는 엄마 노릇과 작가로서의 삶 이 두 가지를 능숙하지는 않더라도 잘 해내고 싶다. 난 완벽한 사람이 아니어서 항상 노력이 몸에 베어 있는건가보다. 최선을 다하는게 무엇인지 잘 모르면서 그저 최선에 가깝게 되기를 바라며 그렇게 사는 것. 누가 뭐래도 나는 그런 내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