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앞두고 너무 병치레가 잦다. 이번 전시가 유독 그렇다. 지금까지 개인전 준비하면서 전시만 끝나면 매번 아파서 힘들었는데, 이번에는 전시 전에 액땜을 하는건가 싶다. 작가 활동을 한지 14년째인 올해까지의 전시는 45번. 그 중 개인전은 벌써 아홉번째인데, 모든 전시가 거의 인맥이 아닌 내가 직접 공모하고 선정되서 전시한 것들이다. 전시라는게 인맥을 통해서도 많이 이뤄지는데, 나는 거의 다 공모였고, 전시를 통해 작품 판매가 되지 않으니 다시 불러주지 않는것도 큰 이유다. 지금까지 레지던시는 모두 2차 인터뷰에서 떨어졌고, 인터뷰마다 질문이 아예 없거나, 이상한 질문들(예를들어, 너무 방구석에서만 작업한 느낌이 드는데 어떻게 생각하나요? 혹은 내용적인 부분에 너무 집착하는 것 같네요 등등)뿐이었다. 회화 작업을 제대로 이해하고 질문을 던지는 면접관들은 아무도 없었다. 회화 작가들을 많이 뽑지 않기도 하지만. 레지던시 운이 없으니 평론가나 큐레이터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는 당연히 별로 없다. 확실히 레지던시를 한번이라도 한 작가들은 그들만의 바운더리가 생겨나고, 같은 동기 작가들과 꽤 많은 교류를 나눈다. 그리고 평론가 매칭 프로그램을 통해서 많은 이들을 만난다. 나는 그런 경험을 할 수 없었기에 지금까지 작업을 열심히 하는 작가들의 전시에는 꼬박 꼬박 참석하려고 노력했고, 그래서 내 주변에는 정말 절실히 작업을 하는 작가들이 많아졌다. 그것은 내가 작업을 꾸준히 하는데 있어 엄청난 에너지, 동력이 되곤한다. 그들도 나와 비슷하게, 혹은 더 힘들게 작업을 하고 버텨내고 있기에.
어제 오늘 목 상태가 많이 안좋아졌고, 목 보호대를 착용하고 작업을 하라는 의사의 지시에 따라 작업할 때와 이동할 때 착용하는데, 거의 15분 마다 한번씩 풀고 다시 눕고 다시 그리고 눕고를 반복하고 있다. 하루정도 쉰다고 회복이 잘 되는것 같진 않아서 작업실에 오지만 작업 효율은 극히 떨어진다. 그래도 디스크까지는 안가서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세상...쉬운게 없다.
이번에 전시를 준비하면서 꼭 이것들을 그려야만 한다는 나도 알아채기 어려운 어떤 '의지'같은 것이 있었다. 내가 그것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림이 나를 선택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시체더미들을 그리면서 내가 지금껏 그려왔던 시체더미들의 히스토리를 생각하게 되었다. 처음 그렸던 것이 2009년도부터다.
녹아내리는 육체. 2009
예기치 못한 사건, 2009
슬픔의 누런 발산, 2013
Blue Swamp, 2013 (위 작업과 연관되는 작업)
현기증, 2013
소년, 2014 (국카스텐 2집 앨범에 수록된 그림 중 '오이디푸스'라는 곡과 짝꿍인 그림)
대재앙의 날, 2016 (인도에서 전시된 그림들 중 한 점)
최근작에서는 예전보다 더 덤덤하게, 그러나 좀 더 감정을 담아 그렸다. 예전처럼 형제만 알 수 있도록, 혹은 부조처럼, 마네킹처럼이 아니라 진짜 사람처럼. 죽어있지만 살아있는 듯 하고, 살아있지만 죽어있는 듯 하게 표현하려했다. 예전 작업들과 많은 연결고리가 있지만, 결국 나는 이번에도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다. 꽤나 힘든 과정이다. 얼른 전시가 오픈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