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수미 선생님의 비평을 한시간동안 들으며... 선생님은 내게 정말 도움이 되는 실질적이고 디테일한 이야기를 해주고 싶으셨구나하고 가슴 깊이 느꼈다. 어떨땐 굉장히 실랄하게 독설도 많이 하시지만, 내게는 내 작품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 다 같이 이야기하는 자리를 만들고 싶어하셨던 것 같다. 내셔널지오그라피 사진과 내 작업을 연관지어 설명하셨을 때에는...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알고는 있었지만 별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죽음을 죽음이라고 대놓고 표현하고 싶은 의도가 전혀 없고, 죽음의 강렬한 고통과 자극, 어두운 죽음의 실체...이런 것들을 표현하고자 하는것이 아닌,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사라지고 소멸되는 과정에서 전복된 아름다움을 표현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나는 결코 죽음을 경험할 수 없다. (어떤 사건 사고가 닥치지 않는 이상) 갤러리 대표님은 '성남 화장터에 안가보고서 죽음을 논하지 말라.'라고 말하며 마치 내가 무슨 상상만으로 거대한 서사를 가볍게 이야기하는 것처럼 말씀하셨는데, 나는 이미 22살에 갠지스강에서 시체를 불로 태우는 장면을 봤었고, 시체를 운반하는 골목에 있던 게스트 하우스에서 지냈다. 그때 시체를 운반하던 가장 카스트의 아래에 있던 사람들의 노랫소리가 정말 구슬펐다. 갠지스 강 위에서 보트를 타고 까만 연기 자욱한 시체들 가까이로 갔을 때, 해골 하나가 장작 아래로 툭 하고 떨어졌다. 9년전의 그 죽음을 목도하는 순간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어쨋든, 경험한 자만이 창작에 있어 자격요건(?)을 갖춘다는 그 이상야릇한 논리는 '죽음'을 이야기 하는 지점에서는 잠깐 벗어나있기로 한다. 내가 죽어볼수는 없잖아? 비판은 무시하고 비평만 잘 들으면 되는거니까 무조건적으로 마음에 안든다는 둥 불편하고 보기 싫다는 둥의 쓸데없는 감상따위는 잊어버리기로 한다.(비평가님의 말은 절대 아님) 그리고 나는 크리틱에 굉장히 많이 익숙한 사람이어서 비평이 정말 좋았는데, 그 자리에 있던 디자인 전공자들이나 후배들은 꽤 놀랬는모양이다. 응. 그들이 익숙하지 않은걸까 아니면 내가 고새 맷집이 강해진걸까나. 남을 쉽게 비판하는 사람은 자신의 무능함을 쉽게 들켜버리기 마련이다. 아는게 없으니 아는것만 가지고 왈가왈부하고, 부분이 전체인 줄 아는 것이지. 나이 헛먹고 정말 그러기도 쉽지 않다. 가여운 영혼에게 애도를.
# 주변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도 정말 가지가지다. 어쩌면 너무 오랜 시간동안 그 사람의 행동을 모두가 방치해두고 있던건 아니었을까. 계속 덮어두고 덮어두다가 결국에는 본인만 모르고 모두 다 터져버리게 될지도 몰라. 왜 이런 상황까지 오게된것인지 나는 생각하고 싶지가 않다. 얼마전 페친 한분이 올린 글을 인용하자면, "친구 덕 볼려고 들지만 않으면 아무런 문제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 말이 정답이네요. 자꾸 내 안의 빨간 버튼을 누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것을 나는 그 아이에게 '누르지마!'라고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말을 해야 하는 가치를 잘 모르겠다.
# 새벽에 글을 쓰다보니 온통 디스글이구만. 내일이면 비공개할지도.=_=
'Works > 2011-2013 : Allegory of In-betweennes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고운 개인전 Allegory of In-Betweenness, 사이성의 알레고리 (0) | 2013.07.03 |
---|---|
구토 (0) | 2013.06.27 |
갤러리 가는 길 (2) | 2013.06.25 |
모래 여자 (0) | 2013.06.24 |
비평 영상 관련 (0) | 2013.06.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