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가 지각 한번 안하고 가장 열심히 하는 건, 독.서.모.임! 한주에 거의 한권씩 읽고, 단편-장편-중단편-장편 이런 식으로 골고루 읽는다. 모두 다 여성 작가의 책들인데, 난 여성 작가들이 쓴 SF 소설의 장벽이 이렇게나 높은 줄 몰랐다. 어슐러 르 귄의 ‘어둠의 왼손’은 어려운 지명들때문에 필기를 10페이지나 하며 힘들게 읽었고, 팁트리의 책도 쉽지 않았지만 영화적이고 사실적인 묘사들로 완전 소오름... 양성구유, 염색체의 변이, 생물학적 성, 시공간의 변화, 인간과 인간이 아닌 경계에 있는 모든 것들, 유토피아즘이 점점 사라져가는 시대, 민족, 국가, 사회의 개념 변화 등등 너무나 많은 다양성을 포괄하고 있어서 70-80년대에 쓰여졌다는 것이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계속 이런 류의 책들을 접하고 있으니, 신기한 꿈도 자주 꾼다. 그리고 얼마전 본 경계선(Border)이라는 영화는 근래에 들어 본 가장 충격적인 영화였다. 아작 출판사가 계속 SF책을 내주고 있어서 우리의 모임은 쉽게 끝나지 않을거라는 믿음이 생긴다.ㅎㅎㅎ (아작 출판사 사장님 흥하세요!!!)
어제는 드디어 내가 모임 첫주에 추천했던 박문영 작가님의 ‘사마귀의 나라’를 읽었고, 많은 이야기들을 나눴다. 나는 이미 세번째 읽은 책이다. 한국소설을 거의 읽지 않던 내가 정말 우연히 이 소설을 읽게 되었었고, 그 계기로 한국소설에 대한 나의 편견들이 깨졌다. 그 만남이 조금은 운명 같다고 생각되기도 했다. (너무 개인취향이라 이 책을 처음 접하신 분들은 놀라기도 하셨지만-ㅎㅎㅎ)
‘사마귀의 나라’라는 이 책은 현재는 절판이 되어 볼 수 없는데, 나는 초판도 가지고 있고, 작가님을 직접 만나 싸인도 받았다. (히히) 책 내용은, 방사능과 오염물질들로 인해 피폭되어가는 기형의 인간들이 사는 섬에 대한 이야기이다. 처음에는 사마귀가 주인공이라 생각했었는데, 여러번 읽다보니 사마귀가 살고있는 섬 전체가 주인공인 디스토피아적 소설이었다. 그건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이곳이 될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 실제로도 함께 모임을 하고있는 분의 가족이 원자력 발전소 근처에 사시다가 갑상선 암에 걸리셨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이건 그저 2083년, 우리의 다음 혹은 그 다음 세대, 근 미래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현재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사마귀의 나라'는 짧은 문장들이 엄청나게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고, 장황한 묘사 없이도 엄청난 상상력을 불러 일으키는 아주 묘하고 비참하고 흡입력 있는 소설이다. 소설 속 등장 인물들은, 유일하게 임신을 하고 있는 궁이라는 여자와 궁의 아들 사마귀, 그 섬의 이장같은 위치인 백씨, 백씨의 딸인 8개의 눈을 가진 팔룬, 검은색 이빨을 가진 이빨, 그의 여동생인 반점, 궁이 낳은 아이인 성기가 없는 무무, 다리 등 신체적 특징이 이름이 되어버린 자들이다. 그중에서 내게 가장 이입이 되었던 건 '반점'이었다. 폐쇄되고 버려진 그 안에서도 가장 주체적인 선택을 하고 자기의 의견을 말할 줄 아는 아이. 결국 모든것이 파국으로 치닫게 되지만, 해피하지 않은 상황에서 해피엔딩을 그린다는 건 기만인 것 같다고 나 또한 느꼈기에 결말이 맘에 들었다. 왜 아무런 희망조차 상상할 수 없냐고 반문하는 분도 계셨지만, 파국의 끝에서 비로소 파국의 전복이 가능하고, 그렇기때문에 새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도 있는것 아닐까 생각한다. 굳이 그것이 아름다움으로 종결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작은 깨달음 같은 것으로도 충분하다고 말이다. 조금만 신경을 쓰면 도처에서 볼 수 있는 죽음이라는 것, 주변에 벌어지고 있는 작은 일들에 귀기울이는 것, 다름을 이해하고 타자를 존중하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끊임없이 죄를 저지르고 있으니.......
독서모임 때마다 매주 심도있는 이야기들, 색다른 의견들을 들을 수 있어서 마음이 풍요롭고 외롭지가 않다. 철학 스터디나 다른 독서모임에서 느꼈던 중압감이나 쓸데없는 논쟁들이 없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모임을 하는 경우, 항상 목소리가 크고 말빨이 센 남자가 그 모임을 주도하곤 했었는데, 그때 느꼈던 답답함과 지릴멸렬함이 나는 싫었던것 같다. 지금 이 모임에 계신 분들은 다들 어찌나 박식하신지... 노트에는 읽어야할 책, 봐야할 영화나 다큐들의 메모가 빼곡히 쌓여간다. 이러한 시간들의 쌓여감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그냥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고, 활자를 마주하고 곱씹고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되었다. 독서모임은 올해 가장 잘한 일. 5년만에 나온 박문영 작가님의 신간 '지상의 여자들'도 샀으니, 아껴두지 말고 읽어야겠다. 사마귀의 나라 이후 어떤 글들이 펼쳐질까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