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률'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2.12.18 XXX
  2. 2010.07.01 터닝 포인트 2
  3. 2010.06.30 봉지밥
  4. 2010.06.23 Goodbye 7
books2012. 12. 18. 22:30

XXX

허기를 달래기엔 편의점이 좋다.

시간이 주는, 묘한 느낌을 알기엔 쉬는 날이 좋다.

몰래, 사람들 사는 향내를 맡고 싶으면 시장이 좋다.

사랑하는 사람의 옆모습을 보기엔 극장이 좋다.

몇 발자국 뒤로 물러서기에는 파도가 좋다.

가장 살기 좋은 곳은 생각할 필요 없이 내가 태어난 곳이 좋다.

조금이라도 마음을 위로 받기엔 바람부는 날이 좋다.

여행의 폭을 위해서라면

한 장보다는 각각 다르게 그려진 두 장의 지도를 갖는 게 좋다.

세상이 아름답다는 걸 알기 위해선, 높은 곳일수록 좋다.

세상 그 어떤 시간보다도, 지금 우리 앞에 있는 시간이 좋다.

희망이라는 요리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두근거릴수록 좋다.

고꾸라지는 기분을 이기고 싶을 때는 폭죽이 좋다.

사랑하기에는 조금 가난한 것이 낫고

사랑하기에는 오늘이 다 가기 전이 좋다.

 

이병률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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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oun
Text2010. 7. 1. 02:31


이병률 시인의 시집을 읽으면서 선배들이 전시하고 있는 연남동 space MAK으로 향했다. 바람이 부는 날은 바람이 부는 날로 어쩔 수 없이 내안의 고독에게 노크할 수밖에 없다. 진한 여운들이 내 눈안에 스밀 때엔 그렁그렁한 눈으로 천장을 올려볼 수밖에 없다. 학교를 다닐적엔 그저 아는 선배, 재밌고 웃긴 선배였다가도 이렇게 전시로 인해 자주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예전의 그냥 선배가 아닌 너무 고마운 나의 멘토이자 작업을 계속 하면서 앞으로도 꾸준히 만날 사람이 되어있다. 오늘 나는 너무 큰 고마움을 느꼈는데 아마 내가 고맙다고 말한 것의 100배 이상으로 고마웠을 것이다. 나의 터닝포인트가 되어준 여행에 대해, 그리고 그 이후의 일들까지 예상하는 것이 나의 센스였을거라고 운을 띄운 선배는 내 결정과 행동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많이 응원과 박수를 보내주었다. 작업을 위해 떠났던 여행은 4개월이 지난 아직도 내 인생의 절반 이상을 차지 하고 있으니. 내가 그 누구보다도 나를 잘 알고 나의 터닝 포인트가 언제인지를 잘 아는 사람이라고 했다. 여행 직후의 시간은 참 힘든 순간순간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도 나는 내게 사소한 경멸과 자기 비하를 아끼지 않았고 스스로 만들어낸 고독과 엉키기 일쑤였다. 그런데 나의 결정과 지난 시간들이 비로소 나의 방어막에서 벗어났다. 나도 알고 그 누구도 알고 있을거라고 생각하는 사실이 어쩌면 가장 위험한 것일텐데, 너무 쉽고 그래서 더 어려운 순간을 경험하면서 나를 좀 더 아껴야겠다고 다짐했던 순간이었다. 나는 잘 마시지 못하지만 오늘 쏘주를 정말 달게 마셨고, 사는 이야기, 작업 이야기, 행복했던 순간들을 토로하자 마음이 가벼워졌고, 산다는 것이 이리도 복잡하고 어렵지만 그래도 다들 이렇게 열심히 작업을 한다는 것에, 그런 사람들이 나의 곁에 있고, 오래 나를 봐왔기에 나를 그 누구보다 많이 알고, 그만큼 충고도 해줄 수 있고, 솔직해질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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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oun
books2010. 6. 30. 03:25

고파서 손이 가는 것이 있지요
사랑이지요
담을 데 없어 봉지에 담지요
담아도 종일 불안을 들고 다니는 것 같지요

눌리면 터지고
비우지 않으면 시금시금 변해버리는
이래저래 안쓰러운 형편이지요

밥풀을 떼어 먹느라 뒤집은 봉지
그 안쪽을 받치고 있는 손바닥은
사랑을 다 발라낸 뼈처럼
도무지 알 길 없다는 표정이지요

더 비우거나 채워야 할 부피를
폭설이 닥치더라도 고프게 받으라는 이 요구를
마지막까지 봉지는 담고 있는지요

바람이 빈 봉지를 채간다고
마음 하나 치웠다 할 수 있는지요

밥을 채운 듯 부풀려
봉지를 들고 가는
저 바람은 누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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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oun
Music2010. 6. 23. 13:45

논문 수정 따위...! 흥! 이라고 말하면서 어제는 도서관에서 이병률씨의 여행노트라던지, 시집 같은 것, 안나푸르나에서 있었던 일들을 담은 책을 죄다 빌려서 쌓아두고 보았다. 스웨덴 출신 Bobo stenson이 참여한 Goodbye 앨범을 볼륨 업 시켜서 집 전체가 쩡쩡 울리게 틀어놓고서 서원동의 오래된 주택 재즈바를 만들었다. 그리고 오래된 원두커피를 내려마셨는데 갑자기 한약냄새가 났다. 두둥 둥 두둥 콘트라베이스 소리. 아.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하지. 느린 템포가 주는 미약하게나마 슬프고 아름다운 선율. 마음이 안정되니 고루한 하루하루도 행복할 수 있겠다는 막연한 믿음 같은게 생겼다. 올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광화문과 시청에서 밤을 새웠고, 노브레인 음악에 맞춰 덩싱덩실 시청 광장을 방방 뛰어다니고, 모르는 사람 어깨 붙들고 줄맞춰 하다가 집에들어와 눈을 잠깐 붙이고 일어났는데 목이 너무 칼칼하고 온몸이 쑤신다. 어제 읽었던 책에서, "7억, 8천 8백 91만, 9백 서른 아홉개의 양말 같은 낙엽들이 모두 자기 짝을 찾을 것처럼 뒹굴었어요."라는 말이 생각나는 오늘. 그냥, 얼른 가을이 다가왔으면 좋겠다고, 내가 좋아하는 것, 사랑하는 것들을 꼭 기록해두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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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o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