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젠 보라매 공원에 자전거를 끌고 가서 그늘에서 책 한권을 다 읽고 왔다. 벤치에 앉아 있는데 살랑 살랑 부는 바람때문에 낙엽 그림자가 나의 몸과 얼굴 위에서 한들한들거렸다. 손바닥을 위로 펴고 나뭇잎 그림자들이 만들어낸 모양들을 관찰하고 있으니 참 귀여웠드랬다. 내가 앉은 벤치의 건너편 왼쪽에는 무슨 일인지 모르겠는 30대 중반 정도의 남자가 우울한 얼굴로 꾸벅꾸벅 앉아 졸고 있었다. 가죽 크로스 백을 매고 반바지에 샌들을 신었는데, 근처 병원의 간병인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심신이 많이 지쳐보였다. 건너편의 오른쪽(그 아저씨의 옆 벤치)에는 앉아서 계속 발구르기를 하는 할아버지가 앉아계셨는데, 하도 발을 쿵쿵 구르시길래 신경이 쓰여 책을 못읽고 있었는데 갑자기 가슴팍에서 '하모니카'를 꺼내시더니 부는 것이었다. 나는 귀에 꼽고 있던 음악을 잠시 줄이고서 고개를 푹 숙이고 하모니카 연주를 들었다. 할아버지의 연주는 마치 구슬픈 아코디언을 연상케했고, 연주는 거의 수준급이었다. 내가 들어본 하모니카 중에 가장 뛰어난 테크닉과 구슬픔...그렇게 깊이 감정을 끌어올려 연주하는 건 처음봤다. 나도 모르게 발을 위아래로 흔들며 장단을 맞추었는데, 힐끔 자던 아저씨를 보니까 그 아저씨도 발을 까딱까딱하며 음악을 듣고 있었다. 자다가 무의식중에 흔드시는 건지, 아니면 진짜 음악을 감상하고 계셨던건지. 나는 그렇게 삼각형으로 앉아있는 졸던 아저씨와 하모니카 할아버지와 내가 참 재미있는 구도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까딱까딱 거리며 박자를 맞추던 발들.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가 떠오른건 왜 였지? 아무튼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순간이여 영원하라.
'자전거'에 해당되는 글 2건
- 2010.06.26 하모니카 할아버지
- 2010.04.11 시와 _자전거와 함께한 첫날 2
Text2010. 6. 26. 22:15
Travel/Egypt2010. 4. 11. 01:38
4시간동안 시와를 돌아다녔다. 유럽인들은 생각보다 꽤 많았는데 거의 어르신들이었고, 동양인에다 젊은 여자는 나밖에 없어서 처음에는 쓸쓸했지만 이내 행복해져서 여기저기 쏜살같이 돌아다녔다. 자전거 타면서 사진찍고 동영상 찍다가 넘어지기도하고.
야자수 숲 안에 있는 클레오파트라 샘도 가고, 망자의 산에도 가고, 아문신전도 가고. 한적하고 아늑하던 이뿐 시와라는 동네. 이집트 여행을 준비하면서 꼭 시와에 가서 자전거 탈꺼야, 라고 생각했었는데 실제로 할 수 있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요즘에도 가끔 시와에서 자전거타고 돌아다니던 이 날의 냄새..햇빛..사람들이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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