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Egypt2010. 6. 28. 22:50


하루 한끼 식사도 제대로 못해서 기운도 없었고, 거기다가 이곳 남자아이들이 너무 추근덕거려서 툴툴거리면서 걷고 있다가 이상한 길로 가고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밤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도대체 숙소는 어디야...' 하면서 내 공간지각력을 탓하고 있을 때, 건너편 빵집 아저씨가 내 표정을 읽은건지 손가락으로 트램역을 알려준다. 다행히 헐레벌떡 뛰어가 역 발견. 밤의 침묵과 트램의 전동소리가 가까워지니 긴 긴 한숨도 사그라들었다. 사드자그로울 광장에 도착 했는데, 사진을 찍어달라던 저 아이때문에 트램을 내려서 찍어주었다. 복스러운 아이와 엄마의 미소가 나를 행복하게 했던 곳.


트램을 내려서 숙소로 걸어가는 그 깜깜하고 눅눅하던 길이 생각난다. 문이 없고 덜컹덜컹 거리는 엘레베이터는 몇번씩 타도 계속 적응이 안되었고. 왠지 많이 무섭고 잘 적응이 안됬던 도시였다. 카이로에서 5시간 떨어진 이곳에서의 하룻밤은 정말 무서웠고 침낭 안에서 얼굴도 못내밀고 떨면서 잤던 기억. 침대 오른 쪽 까만색 장농에서 목매단 시체가 툭 하고 튀어나와 내 침대 시트위에 떨어질 것 같은 좋은 구도. 번잡하고 더럽고 시끄러운 카이로의 숙소가 그리웠고, 얼른 이 도시를 떠나고 싶었다. 참 아름다운 곳이었는데 말이다.

Posted by goun
Travel/Egypt2010. 6. 26. 23:06

이집트 서쪽 리비아 사막과 맞닿아 있는 시와. 시와의 사막 근처 시내에서 고기는 참 귀할 법. 풍경은 제 몫의 나르시즘을 챙겨 멀리 달아날 것 같았고, 그 틈을 타 재빨리 사진에 담는다. 저 무슬림 아저씨가 베이컨이 그린 교황처럼 잠시 스쳐보였던 건 나뿐만은 아니겠지? 벽에 새겨진 글씨들과 정갈해보이는 저울, 검은 비닐봉지 3개가 놓여진 위치들이 어쩌면 하나같이 아름다운 구도를 위해 놓여져 있는것 처럼 보이는 것이냐. 이런 풍경은 단지 풍경으로서만 존재하지 않는, 욕동하는 풍경처럼 보인다. 이것들이 내 자신을 탈육화 하게 하고 부동의 순간으로 대체하는 것 같다. 마치 꿈틀거리는 갓 잘린 탯줄을 담은 것마냥 가슴 설레던 순간. 아. 이런 느낌은 역시 여행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이라며, 단지 한장의 사진에 이렇게도 많은 의미들을 채우고 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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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oun
Travel/Egypt2010. 6. 12. 15:12

바네사 비크로프트의 다큐멘터리 영화 '예술가와 수단 쌍둥이'를 보았다. 평소에도 바네사의 사진작업들을 꽤 흥미롭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번 수단에서의 작업을 보고나니 더 인상적이었다. 그녀의 작업은 예전보다 훨씬 덜 정치적이지만 뭔가 한마디로 정의내리기 쉽지 않은 내용들과 압축된 에너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다. 입양에 대한 그녀의 생각들을 추진해나가는 모습, 그리고 그 상황에서 그녀가 작업에 담으려한 메시지들, 입양이 좌절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극복하고 작업으로 풀어나가는 모습이 참 감동적이었다. 갸날프고 예민해보이는 그녀의 내면에서 발동하는 본질적인 에너지. 그것은 내게 필요한 부분이요, 가장 닮고 싶은 부분중 하나다. 그리고 그녀가 작업에만 몰두할 수 있게 하는 주변의 환경들도 매우 부러웠다.


나는 여행 중 수단 사람들을 몇몇 만났다. 아스완에서 정착해 살고 있는 사람들의 60~70% 이상이 수단 사람들인데, 그들은 자신들의 문화와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고 애썼다. 잠시나마 이집션이라는 말을 듣는다치면 의례 얼굴이 구겨지고 '나는 이집션이 아닌 수단 사람이다. 누비안이다.'라고 말한다. 그건 그들에게 남은 마지막 자존심의 표현같았다. 수단에서는 젊은 이들이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다른 곳으로 많이 떠난다. 수단이라는 나라에는 국민들을 위한 국가적 안보도, 그들의 희망도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여자들과 어린아이들은 그 안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위해 애쓴다.

내가 만난 수단 사람들 중에는 아스완에 있는 필레섬으로 가기위해 펠루카를 운전하며 돈을버는 누비안이 있었는데, 그들은 그렇게 일해도 고작 일인당 이집트 파운드로 10~20파운드(약 2000원에서 4000원)를 번다. 바람이 반대방향으로 불때는 아무리 노를 저어도 제자리다. 30분~1시간을 꼬박 저어야 힘겹게 나일강을 건널 수 있다. 날도 더워서 이들의 이마에는 땀이 금방 뚝뚝 떨어졌다. 처음에는 이렇게 우리랑 잘 놀다가 나중에는 팁을 좀 무리하게 강요하기도 해서 아주 밝은 모습으로 헤어지지는 못했다. 이들에게 5파운드..10파운드...(500원..1000원)의 팁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알고 있었다. 그 돈을 아끼기 위해 이들과 언쟁을 하거나 얼굴을 구기고 싶지 않았다. 팁을 많이 줄수는 없었지만, 노를 젓는 캡틴이 내 눈빛을 읽었으리라고 믿고 싶다.
이들이 우리에게 알려준 노래는 "압두르기봐~ 헤나헤나~" 인데, 이 노래의 뜻이 "너무 좋아~ 가자가자~" 라며 내게 알려주어서 이 노래를 알게 된 후에 누군가가 음식점에서 이 음식어때? 라고 묻거나 기분이 어떠냐고 물으면 나는 '압두르기봐~"라고 말하면서 좋다는 시늉을 했다. 그때마다 사람들의 반응은 갸우뚱?이었다. 나와 내 친구를 이상하게 쳐다보거나. 나중에 알고보니, 압두르기봐는 아스완의 또라이 중에 상 또라이!!! 의 이름이고, 헤나는 내 팔에 있는 문신을 보고 이들이 즉흥적으로 지어낸 가사였다! 이 사실을 어떻게 알았냐면, 에드푸로 가는 펠루카를 탔을 때, 내가 밤에 압두르기봐 노래를 불렀더니 그 펠루카 캡틴이 배를 잡고 뒤로 꼬꾸라지면서 그 노래 어디서 배웠냐고 배꼽을 잡는거다. 그래서 이 동영상을 보여주었는데, 이 둘은 그 캡틴의 친구였고 그때 압두르기봐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도 알게됬다. 우리에게 귀여운 사기를 친 이 두명의 수단인들. 압두르기봐 사건이라고, 우리는 절대 잊을 수 없는 웃긴 일이었다. 그리고 압두르기봐 때문에 두번째 펠루카 캡틴은 이틀동안 나만보면 두시간동안 배꼽을 잡고 쓰러지기도 했다. 나는 '저사람 웃다 죽겠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나중에는 얼굴만 봐도 웃음이 터져서 내 배꼽도 사라질 뻔 했다!ㅋㅋㅋ 아 웃긴다 진짜. 요리하면서도 낄낄..아침에 배에서 자고 일어나서도 낄낄..아무튼 나와 캡틴은 진짜 끊임없이 웃었다. 자, 그럼 그 압두르기봐 음악을 즐겨볼까나. 흐흐


잊지못할 압두르기봐 사건을 만들어준 두 수단인들. 이들의 노래는 진짜 잊지 못할꺼다. 그리고
나중에 내가 압두르기봐가 누군지 알게되었다는 것도 이들은 모르겠지? 풉. 난 다 알고있다구!



계속 웃던 캡틴. 그렇게 깔깔거리고 오랫동안 웃다가 숨도 못쉬고 말이지..그렇게 웃는 수단인의 모습은 진짜 코믹 그 자체였다.
이들은 내게 있어서 이집트에서 만난 가장 특별한 수단인들이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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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oun
Travel/Egypt2010. 6. 11. 21:35


사막에서 하룻밤 자고, 다시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타러 지프를 타고 가는 중이다.


"아나 베흐벱 만수..."
"아나 베흐벱 만수..."
"아나 베흐벱 만수..." "나는 만수를 사랑해."

사막에서 돌아오는데 나도모르게 눈물이 났다.
Posted by goun
Travel/Egypt2010. 6. 9.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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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o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