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Egypt'에 해당되는 글 83건

  1. 2010.08.02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여기저기
  2. 2010.08.01 교감
  3. 2010.07.16 카이로 카이로 카이로
  4. 2010.07.11 핑크색 원피스를 입은 아이
  5. 2010.07.02 기억, 발걸음 4
Travel/Egypt2010. 8. 2. 00:51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집트 도서관. 환전한 돈이 다 떨어져서 씨티 은행을 찾느라고 알렉산드리아에서 시간을 너무 낭비했던터라, 정작 도서관 구경은 오래 하지 못했다. 시간이 너무 촉박해서 급히 도서관 내부에 전시되어 있던 작품들을 보고 책들을 휘리릭 둘러보았다. 외국인들 내국인들 다 많았지만 동양 사람은 별로 없었던 곳. 보다보니 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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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oun
Travel/Egypt2010. 8. 1. 01:28

# 미셸 우엘벡의 새 소설을 읽다가 '만일 내가 사랑을 이해하지 못했다면 그 나머지를 이해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라는 문장에서 갑자기 슬퍼졌다. 누군가가 나를 따뜻하게 안아준적이 언제였지 하는 생각과, 그저 마음을 나눌 수 있고 밤새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사람을 만나지 못한게 언제부터였지 하는 생각.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계속 같은 사람인데 왜 시간이 지날수록 사랑이 어렵게만 느껴지는 걸까. 연애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시간이 많이 흘렀다고 해서 그 사랑의 감정 자체가 사그러드는 것은 아닌데 점점 힘들고 어려워진다. 내 마음속에서 꺼지지 않는 사랑은 항상 넘치고 흘러 주변 사람들에게, 나의 작업에게, 주변의 물건들에게, 신에게마저 주고도 남았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어떻지? 하는 생각이 문득 엄습해오는 것이다. 난 오늘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너무 이뻐서 사랑을 마구마구 퍼주고 왔다. 아이들도 나를 사랑하고 나도 아이들을 사랑하고. 뭐니뭐니해도 사람과 사람이 주고받는 교감이 가장 아름다운 일인 것 같다.

# 여행은 내가 추구하는 감각들을 요동하게 하는 유일한 수단이자 장치이다. 내가 외부의 세계로 빠져들 수 있게하는 통로같은 것. 어둠속으로 침몰하는 눈부신 추억들을 고스란히 기억의 양 날개 위로 펼쳐놓았다. 바람이 거세게 불어 나를 그 환상 속으로 몰아넣고 있는 듯이.
세상의 곳곳에는 행복의 가루들이 널려있는데 그것들의 밀도를 결정짓는 것은 나의 몫이다. 그것들은 매우 섬세하게 놓여있기도 하고 눈에서 멀리떨어져서 찾기 쉽지 않도록 흩어져있기도 한다. 그것은 매우 한정적이기도 하고 무한하기도 한 시퀀스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나는 나로서 행복을 찾고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있지만 내가 원하는 열망은 매번 고스란히 피드백된다. 지금은 그런 상태이지만 내가 행복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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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oun
Travel/Egypt2010. 7. 16. 03:41

너무도 평범한 풍경이지만 난 이 사진이 너무 좋다. 4개월째 나의 핸드폰 배경화면이 되어주고 있는 카이로의 사닷역. (붉은색 M자가 메트로 표시다.) 고고학박물관은 카메라 반입이 금지라 숙소에 카메라를 두고 나왔다가 이 곳에서 30분쯤 앉아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핸드폰으로 찍었다. 심각한 교통난 세계 2위인 이곳에서 내가 몇번이나 무단횡단을 했었나. 정말 미친듯이 달리는 차로를 뛰어드는 스릴 만점의 목숨건 무단횡단인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절대 건널 수 없는 곳이었다. 정말 시끄럽고 정신없는 카이로의 한복판이지만 메트로에서 나와 길 건너 오른쪽 두번째 블럭 안으로 들어가면 맛있는 구아바를 파는 가게가 있고, 거기서 50m만 가면 발품팔아 무작정 찾아갔던 캐네디안 호스텔이 있다. 싱글룸이 45이집션 파운드였으니까 약 9000원 꼴이었는데, 그리 싼 편은 아니었지만 그곳에서 일하던 알바생들이 너무 어리고 착해서 마음이 갔던 곳이다. 나의 이집트 여행 마지막 날, 정말 아쉬움이 뚝뚝 떨어질 수 밖에 없었던 그 날, 지금도 카이로 카이로 카이로 카이로 중얼중얼거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곳이 바로 여기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꼭 한번 더 이곳을 가고 싶다. 너무 많은 미련과 아쉬움을 남기고 온 것 같다. 병이다,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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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oun
Travel/Egypt2010. 7. 11. 02:16


고요한 골목길에서 너덜해진 핑크색 원피스를 입은 아이가 나타났다. 자신을 찍고 있는 내 눈을 전혀 바라보지 않은 채, 계단을 손으로 쓸거나 허공을 바라보거나 빨래가 널어져 있는 담 너머를 응시하곤 했다.

난 혼자하는 여행이 좋았다. 지독한 외로움 끝에서 나는 무념무상의 상태가 되곤 했으니까.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는 상태의 나는 눈으로 들어오는 모든 것들을 있는 그대로 본능적으로 받아들였으니까. 밤이되면 큰 그림자들이 나를 덮쳤고, 타인들은 거대한 담장을 이루었다. 그것도 장미꽃 향기 폴폴나는 가시 덩쿨로 만들어진 담장. 오래된 벽 안에 둥지를 튼 새들이 내 머리위를 날아다니고, 나무들은 집 한채를 삼켜버리기도 했다. 사람보다 열배정도는 커 보이던 초코송이 모양의 짚풀더미, 거리의 인부들, 골목 어귀에서 차이를 들고 돌아다니는 꼬마 차이왈라들, 나일강 위의 까마귀 떼들... 나만 그 골목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으로 그곳을 버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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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oun
Travel/Egypt2010. 7. 2. 11:00

다음 날 아침에도 이 거리를 걸어가는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아. 비릿한 침을 삼키며 이 한산한 거리를 활보해. 이 거친 땅 위에서 자신의 체온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숲에 나는 그저 차가운 이방인. 나의 뜨거운 체온을 알아주던 이가 나를 데리고 숙소 옆 구아바 가게로 나를 데려가. 달달한 구아바 음료를 목구멍으로 넘길 때, 내 주위는 온통 눈 녹듯 녹아버리고 그 자리엔 잎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익어. 내가 살아온 길. 내가 밟아온 그 길. '나는 정말 열심히 살아왔나요? 사랑하며 살아왔나요?' 아무런 대답도 없는 그 길 위에서, 왁자지껄하던 그 길 위에서, 허름하던 그 길 위에서 나는 내가 움켜쥐고 살아왔던 빛을 잠깐 놔주었어. 그래도 나는 괜찮어. 부풀어버린 빛 조차 이곳에서는 반쯤 허물어진 집 같아서. 그 많은 희열과 고된 시간들 속에도 어쩌면 그 반쯤 허물어진 빛이 존재해. 차곡차곡 그 빛을 개어 가슴속에 포개어 둔 뒤에 배부른 그 길을 걸어. '나는 정말 열심히 살아왔나요?' 다시 되물을 때, 그제서야 숲 안에서 조용한 웃음을 지을 수 있었어.
이곳은 묶지 않은채로 엉켜버린 마음 같아서 애써 보이지 않는 것은 덮어버리고 생각들은 허공에 흩어져버리고 순간의 기억들만 남아. 지겹도록 이야기하는 푸르스트의 마들렌 같은 기억이 아니야. 시간에 금을 내고 벌어진 사이로 빠져나오는 능동적인 기억들이야. 체득될 수 밖에 없는 나의 피부와 뼈의 기억이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것들이 너무 많아져버려서, 이제는 애써 짓지 않아도 될 온기의 기억이야.
Posted by go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