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2015. 3. 11. 20:15

# 난 혼자하는 여행을 좋아한다. (가끔은 동행을 만나 폭풍 수다를 떨고, 마치 관광이 주 목적이었던 것처럼 행동했을때도 있었지만.) 혼자하는 여행은, 서로에게 미안해하지 않고 사색의 시간을 마음껏 누릴 수 있어서 좋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혼자이길 원했기때문에 혼자 있었더라도, 혼자라는 사실 때문에 힘들었던 순간이 정말 많았다. 얼마전 문득 그때가 생각나서 침대에 누워 예전의 기억들을 떠올려보았다. 

네팔 카트만두에서 숙소가 없어 쩔쩔매다가 백팩커스 숙소에 들어가 7달러짜리 방에 누웠는데(화장실이 바깥에 딸린 방이었다) 붉은색의 등 아래서, 그 고요한 적막 속에서 내가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는 잘 기억이 안난다. (조금 슬펐던 기억 밖에는.) 마음이 많이 피폐해진 상태로 여행하던 때, 룸비니의 한국 절 대성석가사에서 일주일을 지내며 매일매일 드로잉 북을 펼쳐놓고 창밖만 바라봤던 기억도 난다. 혼자서는 먼 곳을 여행하는게 불가능해서 여행사를 찾아다니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혼자 열기구를 타러가고, 혼자 밥을 먹고, 혼자 그림을 그리고, 혼자 재즈바엘 갔다. 아주 좋았지만 좋지 않기도 했다. 나는 그때가 그립기도 하고 그립지 않기도 하다. 조금은 무력한 상태에서 나름 긴 여행을 마쳤고, 현실에 순응하는 현명한 방법이랄까, 편안하게 내 삶을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이랄까... 뭐 그런 중요한 옥빛 해답 아닌 해답을 얻었다.


# 추억할 거리는 너무 많고, 경험해야 하는 일들도 너무 많다. 아주 근사하진 않아도 낡고 이국적인 흔적들 속에서 타인의 삶을 엿보는 건, 내 삶을 가장 잘 돌아볼 수 있게 하는 일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단단한 내 자신이 되기 위하여 계속 나를 낯선 상황에 몰아넣었던 것도 같다. 무서웠던 순간도 있었고, 혼자서 감당하기 어려워 혼자 울기도 했다.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지 못한 채 나이를 먹는것이 두려웠다. 지겹도록 반복되는 날들은 내 작업을 방해하고, 나의 머릿속을 갉아먹는 좀벌레 같았지만 이제는 그것보다 더 큰 가치가 무엇인지 안다. 나에게만 집중되어있었던 시간들, 그 시간들이 얼마나 가치있는 시간이었는지도 알고, 그 안다는 사실 자체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안다. 이 모든 것에 감사할 수 있게된 지금이 좋다. 이젠 더 이상 혼자만의 여행만을 갈구하지 않아도 된다. 많이 채우면 채울수록 비워야할때가 올 것이다. 나는 그날들을 위해서 계속 사색하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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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o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