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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3.05.26 나의 아버지, 전각가 서용철. 3
  2. 2012.01.18 아버지 3
Text2023. 5. 26. 02:11

부모님이 시골로 내려가신지 벌써 20년이나 지났다. 부모님의 시골생활은 처음부터 정말 녹록치 않았는데, 아버지의 전각 박물관 운영이 잠시 중단되기도 했고, 먹고사는 문제로 간간히 일을 나가시기도 했고, 박물관 천장에서 물이 새거나 집 안의 수도가 터져 작은 공사와 작품들 보수로 엄청 고생도 많이 하셨다. 이사도 무지 많이 하셨고, 그 사이 아버지의 6000점 넘는 돌들이 옮겨지다가 부숴지거나 금이 가기도 했다. 다시 터전을 잡은 영주에서도 또 몇번의 이사 끝에 작품들을 잘 보관할 수 있는 공간을 찾으셔서 얼마전에야 그 공간을 볼 수 있게 됐다.

얼마 전, 만성적으로 불편해하시던 아버지의 부비동 쪽 코 수술을 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엑스레이를 찍다가 폐에서 2.7센치 정도 되는 암을 발견했다. 두달 전 다른 곳에서 찍었던 엑스레이에서는 아주 깨끗했다고 했는데. 그 두달 사이에 그렇게 빨리 커질 수 있는 것이었는지 의문이 들면서 이런 암 조기발견은 너무나 큰 천운이라는 생각에 다행이라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내가 시험관을 계속 실패하며 나에게 오지 않은 그 운들이 아버지에게 가서 이렇게 천운을 누리시는 거라면 전혀 슬프지 않다고 느꼈다. 내가 병원에 생필품과 반찬들을 이고지고 가져갔더니, 그 돌덩이 같이 무거운 걸 바리바리 싸들고 온 딸이 안쓰러웠는지… 아버지가 병상에서 내게 고생했다고 문자를 보내주셨다. 그런거 참 안보내시는 분인데. 나는 아기도 잘 키우고 싶고, 착한 딸도 되고 싶고, 작업도 잘하고 싶고 그렇지만....뭐니 뭐니 해도 건강이 가장 최고니까! 아버지의 코 수술은 잘 끝났고 이제는 폐 수술을 앞두고 있다. 이런저런 검사들을 하고 난 뒤, 5일만에 병원 퇴원을 하며 함께 시골에 왔다. 작업장에도 들렀는데, 아프셨는데도 그 사이 이렇게 정리를 잘 해두신걸 보니 참 몸을 움직이는걸 좋아하시는 건 여전하다 싶었다. 나도 아버지의 그런 면들을 닮았다.

할아버지의 작품을 처음 보는 아기가 돌에 엄청난 관심을 보였다. 아래에 깨진 돌들을 보고 있는 할아버지와 손녀.
이 흰색 단 아래에는 돌들이 가득 가득 쌓여있다. 아직 그 돌들은 바깥 구경을 못하고 있는 상태다.
아빠의 작업장에서 발견한 옛날 잡지. 지금이랑 비교하니 느낌이 너무 다르다. 울 아빠 너무 많이 늙어버리셨네...ㅠㅠ
요즘은 찾기 어려운 상아. 아버지는 내 도장도, 울 아기의 도장도 모두 상아에 새겨주셨더랬지. 귀한 도장이다.
해남 옥돌인데, 일일이 다 갈고 다듬어서 만드신 도장이다. 아버지가 아주 오래전 해남 옥돌을 사들이기위해 아파트를 팔고 그 돈으로 억대의 돌들을 다 사들이셔서 해남에는 옥돌이 없다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있는데, 그건 루머가 아니고 정말 사실이다.ㅎㅎㅎ 아버지가 해남에 있는 돌들을 다 사셔서 이제는 구하기 힘들다고 한다. 6000점이나 되는 전각 작품들이 다 그 해남옥돌로 만들어졌다.
이런 돌들은 중국산 돌이다. 해남 옥돌과는 차이가 나는 돌들이지만 이 또한 구하기는 쉽지 않다.
아버지는 <성서> 신약과 구약을 6년만에 돌에 새기셨고, 최단기간 최다전각으로 세계 기네스를 보유하고 계시다. 작품들 사이에는 아버지의 명예가 소박하게 놓여있다.
이 돌이 금보다 비싼 돌이라는 "계혈석"이다. 이름은 마치 닭의 핏빛 같다고 해서 붙여진 것인데, 붉으면 붉을수록 훨씬 가치가 높다고 한다.

아빠의 칼들들 보고 있으니 시간의 무게가 느껴지네. 아버지가 오래 오래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그래서 아버지가 작업도 계속 하시고, 또 아버지의 작품도 많은 분들이 보셨으면 좋겠다. 이제 곧 수술을 앞두고 있어서 걱정이 많다. 수술이 잘 되서 이전보다 더 건강해진 모습을 뵐 수 있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한다. 아버지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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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oun
Text2012. 1. 18. 20:25

얼마전, 인도를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만나는 모임에 갔었다. 인도를 다녀온 사람, 그리고 곧 갈 사람들끼리 커리와 탄두리치킨을 먹으면서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었고, 난 그 시간이 좋았다. 한참 밥 먹고 라씨도 먹으면서 떠들다가 우연히 내 옆자리에 앉았던 여학생이 알고보니 서예를 전공했다고 했고, 전각을 배우고 있다고 했다. 그 학생은...서예나 전각쪽은 과가 얼마 없어서 참 배우기가 어렵다고 말하면서, "소문에 누군가가 해남에 있는 옥돌을 죄다 사들여서 아예 해남옥돌을 구할수가 없다던데 그게 사실인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 왈, "그 사람이 제 아버지예요." 라고 말했더니, 화들짝 놀라면서 그게 사실이었냐고 완전 놀라워했다. 성경을 해남에 있는 옥돌에 완각하는 게 소원이자 일생의 꿈이셔서 평생 모으신 돈으로 해남 옥돌을 다 사셨다고. 그리고 그 돌들은 강원도 횡성에 고이고이 진열되어 있다고. 몇천개가 되는 돌들 때문에 아버지는 "내가 죽으면 이 돌들 다 땅에 묻어라."라고 하신다고.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나는 아버지의 에너지 덕분에 더 힘을 내고 작업을 한다.

작업이 안되서 아빠에게 전활했더니, 뭐든 너무 성급하게 하면 될것도 안된다고 하시며, 기를 불어넣어 주신다고 수화기에 대고 "기를 받아라~ 기를 받아라~" 하신다. 귀여운 우리 아버지. 내게는 아버지 없는 세상이 상상도 안되는데. 어릴적부터 아버지의 빈자리를 상상하며 많이도 울었다. 올해 설에는 좀 더 착한 딸노릇을 해봐야겠다. 보고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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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o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