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SF독서모임에서는 스스로 '고독'해지기를 자처하는 것과 타인들과의 모든 연결고리가 끊어진 '고립'을 구분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다. 그래서 고독사가 아닌 고립사로 이야기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정말 그런 것 같다. 고독과 고립은 너무 다른 결을 가지고 있으니까. 사후에 얼마나 오랜 시간 고립이 되었는가로 고독사의 의미가 달라지기도 하니까. 함께 모임을 하는 분들 중에는 결혼하지 않고 아기를 낳지 않았더라면 늙어서 혼자 외롭게 살다가 고독사(or고립사) 했을 것 같다는 분들이 나 말고 2명이나 더 계셨다. (정말 반가웠다.ㅋㅋㅋ) 싱글일 때는 청소도 대충하고 살고, 빨래도 일주일에 1-2번 돌렸나 싶고, 장도 거의 안 봤다. 나는 뭘 먹고살았던 걸까? 부모님이 물려주신 건강한 몸을 20살에 독립하며 15년 동안 서서히 망가뜨렸고, 한의원에 가면 맥이 안 잡힌다고, 면역력 '0'라고, 이렇게 살면 안 된다는 말도 들었었는데. 전시만 했다 하면 여기저기 아파서 수술하고 이렇게 살아 뭐 하나 하면서도 매번 책 읽고 영화 보고 전시 보고 작업만 하면서 그렇게 살았다. 돈 되는 일은 할 줄 아는 게 없고, 그쪽으로는 머리가 전혀 돌아가지 않는 유형. 나에게는 현재와 근 미래만 있지 먼 미래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고, 할 수도 없었다. 당장 먹고사니즘을 해결해야 했으니까. 그래서 그렇게 15년 간 월세 인생을 살았던 걸까?
그런데 지금은? 결혼과 육아 때문에 너무너무 바쁜 하루를 산다. 싱글일 때도 엄청 바빴는데 그땐 머리가 많이 바빴고, 지금은 몸을 계속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다는 게 좀 다른 점일까. 하루에 설거지를 평균 2-3번 정도 하고, 2일에 한 번씩은 꼭 바닥 청소를 해야 한다. 쌓이는 머리카락과 먼지는 왜 그리 많은지! 그리고 하루에 1-2번은 빨래를 돌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기 빨래와 어른 빨래가 엄청나게 많이 쌓이게 되니. 작업실에는 일주일에 거의 6일을 간다. 그중 하루는 온종일 청소하고 아기 음식을 만드는 데에 시간을 할애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전부터 이른 오후 시간까지, 약 5-6시간 정도를 아주 효율적으로 잘 써야 하는 것이다. 거기다가 새벽에 아기가 눈을 뜨면 바로 내게 책을 들이밀기 때문에 계속 책을 읽어줘야 한다. 오전에도 등원 전까지 20권 정도 읽는 것 같고, 아기 하원 후에도 집에 오면 자기 전까지 20권은 거뜬히 읽는다. 아기는 독서광으로 태어났다. 그래서 하루 30-40권 정도는 읽고 있다. 이제 15개월 된 내 아기. 이렇게 계속 책을 좋아하고 글밥 많은 책들을 사다 나르다 보면 내 체력도 엄청 중요해질 것이다. 그래서 나는 정말 살려고 발악을 하며 일주일에 두 번 운동을 간다. 작업실에서 잠깐 글 쓰고 책 좀 읽고 점심 먹다 보면 작업할 시간이 자꾸만 밀린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딱 돌이 지나자마자 아기가 어린이집을 갔는데, 나와 애착형성이 매우 잘 되어있어서 헤어지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엄마는 언제든 내 옆에 있고, 나를 데리러 오니까. 나는 그 시간에 엄청 신나게 놀면 되는 것! 어린이집에서 더 놀고 싶어 해서 한 시간을 더 늘리기로 결정한 것도 아기가 또래 친구들을 너무 좋아해서다. 우리 집 아기는 정말 복덩이다. 엄마에게 그 한 시간은 너무 긴 시간이거든...!^^ 이런 건 기대하지도 않았었는데 붓질을 더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아기라니. 내 인생은 이렇게 많이 달라졌다. 이제 내 인생이 나만의 것은 아니니까 더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것 같다. 정신도 좀 차리고, 현실적인 부분들도 고려해가면서. 그러지 않으면 내 육체는 점점 안 좋은 방향으로 가게 될 것이니. 오늘도 힘을 내어본다. 김보영 작가님의 글을 인용해보자면, "어제와 같은 일상을 보내서 행복하다. 오늘이 어제와 같아서 행복하다. 모든 것이 변함없이 제자리에 있어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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