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2021. 1. 31. 21:54


# '나라는 사람이 엄마가 되어도 괜찮을까'라는 생각을 참 많이 했던 시절이 있었다. 결혼 후, 한 해 두 해 시간이 흐르고 둘이서 재미나게 잘 지내다가도 평생 아기 없는 삶을 살려고 생각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러나 막상 또 아기를 갖자니 이것저것 준비해야 할 마음가짐이랄까 현재의 상황이랄까 뭔가 생각하고 싶지 않은 그 무거운 부담감들 때문에 외면하고 있다가 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창작을 하는 직업이란 매 순간 자신을 위한 시간과 공간을 악착같이 만들어내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었다. 아주 작은 공간이라 할지라도 작업을 위한 공간, 그리고 주 4일 이상의 여유가 있어야 했다.(주 3일 이하로만 일거리를 찾았다는 얘기) 그렇게 악착같이 만들어내야지만 겨우 겨우 작업이라는 걸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아기를 낳는 순간 그 모든 게 사라질 거라 생각했고, 그 마음을 계속 가지고서는 평생 아기라는 존재를 거부만 하며 살게 될 터였다. 

그런데 내가 큰 결심을 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신랑 때문이었다. 나와 함께 살면서 매번 '아기는 없어도 괜찮다'는 의견을 내비쳤었는데, 그 모든게 나를 위한 배려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모든 게 바뀌게 된 것이다. 6년이 지나고 정말로 그 마음이 진심인지 다시 되묻자 '있으면 좋겠지'라는 말과 함께 주변 친구들의 아가들을 너무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정녕 이래서는 안 되었다. 그리고 그때 내 마음도 다시 한번 들여다보게 되었다. 나는? 내 마음은? 창작을 하는 사람이 아닌 그냥 서고운이라는 인간의 마음은? 주변 여성작가들이 '아기 절대 낳지 마라, 아기 낳으면 작업 못한다.' 등등의 말들로 겁을 줄 때 내 생각은? 지금까지 각개전투하듯 살아왔는데 그 이상 더 힘들어질 수도 있는데 그래도 결정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신랑의 솔직한 의견을 듣자마자 몇 달 정도 고민을 한 뒤 바로 시험관 준비를 했다. 그리고 우리에게 왜 자연스럽게 아기가 생기지 않았는지 그 원인까지도 알게 되었다. 현대 의학으로는 너무 단순한 문제였는데, 시험관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평생 아기를 가질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 15년 간의 작업활동 중에서 작업을 잠깐 쉰적이 있었다. 너무 돈도 없고 힘들었던 때 논문까지 써야 해서 잠시 그림을 그리지 않았었는데, 그 이후 다시 붓을 드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정말 끔찍이도 작업이 잘 되지 않았다. 작업실에 가 있으면서 3달 정도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캔버스 앞에서 허송세월을 보냈다. 나는 그때 감각이라는 게 얼마나 금방 내게서 떨어져 나갈 수 있는 것인지를 깨달았고, 머리가 굳는다는 게 뭔지를 알게 되었다. 그 이후 절대로 창작활동을 멈춰서는 안 된다는 그런 신념 같은 게 생겼다.

그런데 나는 지금 임신과 출산과 육아를 하면서 1년 반이라는 공백이 생겼다. 육아를 하면서 모든 에너지를 다 소진해버렸기 때문에, 조금의 쉬는 시간이 생긴다해도 그 시간을 작업에 대한 생각으로 채우기 어려웠다. 그러나 내가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건 아기가 100일이 넘으면서 일주일에 한두 번씩 작업실에 가서 타투 작업을 했다는 것. 작업실 월세 충당의 목적도 있었지만 육아에서 잠시 벗어난 그 3-4시간 동안 무언가를 창작하고, 투자한 시간만큼 재화로 돌아온다는 그 사실이 참 기뻤다. 아기가 돌이 될 때까지 나는 작업실 월세 충당의 목적으로 타투를 계속했는데, (지금도 하고 있는) 모유수유의 어려움은 점점 더 수월해졌다. 더 이상 작업실에서 유축을 하거나 아기를 먹이기 위해서 미친 듯이 집으로 달려가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 이제는 나의 인생 2막이 시작된 듯한 느낌이 든다. 오늘은 내 작업을 아끼고 사랑해주는 갤러리와의 전속 계약을 맺은 너무나도 특별한 날이다. 온라인 상으로 계약서를 써도 된다고 했는데, 나는 굳이 직접 가서 하겠다고 했다. 아버지가 새겨주신 인장을 사용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는 지금까지의 노력과는 비교도 안될, 더 더욱 각개전투의 싸움이 시작될 것이다. 육아 전쟁과 작업 전쟁. 지금까지 시댁이나 친정의 도움 없이 나와 신랑 둘이서 열심히 육아를 했고, 그 덕분에 쏟아지는 살림들을 어떻게 배분해야 더 수월하게 할 수 있는지 고민하면서 살림 자체가 패턴화 되어갔다. 이제는 육아는 육아대로 열심히 하면서, 나 자신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나의 시간 나의 공간을 애써 지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것은 창작을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이고,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해야만 한다. 나에게 작업실이 있다는 사실이 이렇게 큰 의미를 지닌다. 그것이 없었다면 나는 아무것도 못했을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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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o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