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원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현재를 따르는 노예이다. 현재가 만들어낸 색조와 형식의 노예이며, 하늘과 땅에 매인 하인이다. 심지어 자신을 둘러싼 것을 경멸하면서 자기 안으로 더 많이 숨는 사람까지도 그러하다. 비가 올 때나 하늘이 맑을때나 그렇게 숨지 않은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추상적인 감정의 내면에서만 감지되는 모호한 변화는 비가 오기 때문에 혹은 비가 그쳤기 때문에 사실로 나타날 것이다. 우리가 그런 변화를 느끼지 못할 때 그 변화는 감지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시간을 느끼지 못한 채 시간을 느꼈기 때문이다.
우리들 각자는 한 명 이상이며, 다수이지만, 각각 자기 자신을 지루하게 연장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자신의 환경을 증오하는 자는 그 환경으로 인해서 기뻐하거나 고통을 받는 사람이 아니다. 우리 존재의 광활한 식민지 안에는 다양한 방식으로 생각하고 느끼는 수많은 유형의 군중이 있다. 할 일이 별로 없는 오늘, 전적으로 성스러운 휴식시간에 내가 이처럼 인상적인 몇 줄의 문장을 쓰는 바로 이 순간에도 나는 여기서는 보이지 않는 바깥의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자이다. 이 순간에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에 만족하는 자이며, 기뻐하는 자신의 육신과 아직도 어렴풋이 차가운 손을 느끼는 자이다.
스스로에게 낯선 사람들로 구성된 나의 세계는 다르지만 빼곡히 모인 군중처럼 단 하나의 그림자를 투사한다. 글을 쓰는 이 평온한 육신, 빌려준 압지를 돌려받기 위해서 보르게스씨의 높은 책상을 향해서 걸어가는 구부정한 이 육신을 말이다.
-불안의 책 15(20) 1932. 12.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