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은 이 글을 쓰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아서 늦었지만 컴퓨터 앞에 앉았다. 재난포럼에서 말하지 못했던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집으로 오는 길에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재난포럼에서는 지금까지 재난이나 죽음, 세월호라는 거대은유 혹은 상징이 되어버린 사건, 그것에서 파생되는 슬픔과 애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큰 패러다임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보편적인 상황들을 나열하거나, 외부적인 요인들과 비교하며 바라보거나 하는 여러 방식과 기제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 시간에는 이전의 포럼과는 조금 다르게 사적인 경험들의 결들을 서로 공유했고, 그것만으로도 굉장히 의미있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재난포럼을 들으면서 나는 그 안에서 답답함을 느끼기도, 그 답답함이 해소되기도, 그냥 공감으로 만족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공통적인 것은 그때마다 '나'라는 사람의 입장 혹은 생각을 계속 의심하고, 질문을 던지고, 되돌아보곤 하였다는 것이다.
# 나는 요즘 예전보다 더 무기력하고 우울한 상태이다. 그것이 꼭 어떤 사건 때문이라고는 말할 수 없고, 여러가지 재난들이 발생하는 과정에서 사회의 민낯을 계속 대면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것이 내 삶속에서 떼어낼 수 없다는 비극적인 상태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작업으로 꾸준히 죽음에 대해서, 애도에 대해서, 경계에서 사라지는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해왔는데, 세월호 사건 이후 내가 그것들을 바라보는 태도와 시각은 너무 많이 변했고, 그 과정에서 파국적 이미지들을 그려내는 행위 자체에 회의감 같은 것이 생겨버렸다. 그리고 계속 어떤 종류의 무력감과 악몽 상태를 계속 인지하려고 하고 있고, 그런 행동때문에 내 스스로가 점점 침몰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기도 했다.
#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나와 나의 윗세대가 자라온 환경...한국 사회에서 그저 입시가 삶의 목표인 것 처럼 내몰린 10대 아이들의 처지는 그냥 <재난 자체>라는 것. 나도 그와 같은 상황속에 있었고, 그때의 나는 <나는 없다>라는 문장을 다이어리에 써가며 내게 끊임없이 주입하곤 했다. 되돌아보면 나도 그런 경쟁사회 속에서 어떤 우월감을 느꼈던 적도 있고(어떤 분의 고백과 같이),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굉장히 두려웠다. 그리고 10대가 지나고 난 이후에, 절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간이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새벽 5시 30분에 시작되는 첫 타임. 그리고 다음날 새벽 2시까지 그림 그리기는 계속 되었고, 나는 그 좁아터진 실기실에서 하루에 4장씩 그림을 완성하곤 했다.
나는 세월호와 함께 침몰한 아이들과 같은 나이의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그 학생들이 얼마나 큰 불안과 두려움속에서, 혹은 내 세대와는 다른 상황들(정말 실낱같은 희망 조차 가질 수 없는) 속에서 얼마나 고통을 받고 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고 얘기해도 되려나) 몇몇의 아이들은 내게 힘듦을 토로하며 울거나 극단적인 제스쳐를 취하는데, 나는 그 아이들 편에 서서 '잘 할 수 있어, 잘될거야, 조금만 참아, 생각을 바꿔봐...'등등의 이야기를 하면서 결국 아이들에게는 '인 서울'을 강요하는 위선적인 선생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나는 어른이면서, 어른이라는 타깃을 증오하고, 학생들을 이해하는 척 하면서 결국은 기성세대와 다르지 않은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이런 자책감에 시달리고 있는 중이었는데, 오늘 양효실 선생님께서 너무 솔직하게 이야기하셔서 정말 놀랐다. 끄덕 끄덕. 선생님 말씀대로 '그저 나는 시간 강사이니깐 이 시간을 잘 때우면 되.'라는 쿨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 어쩌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진실이 무엇인지 이야기하는 강사는 그다지 필요하지 않을테니까. 지금 여기는 지옥이고, 아무런 희망도 없고, 이미 이곳은 너무 썪어있고, 지금 이곳이 파국이고 죽음이라고... 어떻게든 살아남아 우리는 생존하고 있지만 이것이 결국 살아있는 게 아니라 죽음과 마찬가지일 수 있다고...라고 이야기한다면? 나는 어떤 선생이 되어야 하지, 혹은 선생으로서의 자격이 있는지.
# 나이 많으신 어떤 선생님 한분이 왜 젊은 사람들은 독립을 두려워하고 안정적인 것을 찾으려고만 하느냐고 질문했는데, 나는 그것에 대한 대답을 이렇게 하고 싶다. 21살에 독립을 하고 온갖 고생이란 고생 찔찔히 하면서 지금까지 10년 넘게 알바 인생으로 살고 있지만, 그래서 내가 얻은것은 수많은 사회 속의 갭과 벽이었다고. 기존에 가지고 있던 두려움이 없어지거나 불안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두려움과 불안이 더 커졌을 뿐이라고. 이 사회를 탓하고, 기성 세대를 탓하고 싶은 마음 보다는 조금이나마 젊은이들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지는 말아달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세상이 변하고, 시대가 변하고 있는데! 나의 부모님은 여전히 뒷바라지 해주지 못함에 대한 미안함을 내게 이야기하시고, 그것에 대한 죄책감을 일부 가지고 사신다. 왜 이래야 하는지 나는 정말 모르겠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침몰해서는 안된다. 어쩌면 이 문장 하나가 지금의 나를 대변하고 있는건지도 모르겠다. 일말의 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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