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Egypt2010. 7. 16. 03:41

너무도 평범한 풍경이지만 난 이 사진이 너무 좋다. 4개월째 나의 핸드폰 배경화면이 되어주고 있는 카이로의 사닷역. (붉은색 M자가 메트로 표시다.) 고고학박물관은 카메라 반입이 금지라 숙소에 카메라를 두고 나왔다가 이 곳에서 30분쯤 앉아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핸드폰으로 찍었다. 심각한 교통난 세계 2위인 이곳에서 내가 몇번이나 무단횡단을 했었나. 정말 미친듯이 달리는 차로를 뛰어드는 스릴 만점의 목숨건 무단횡단인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절대 건널 수 없는 곳이었다. 정말 시끄럽고 정신없는 카이로의 한복판이지만 메트로에서 나와 길 건너 오른쪽 두번째 블럭 안으로 들어가면 맛있는 구아바를 파는 가게가 있고, 거기서 50m만 가면 발품팔아 무작정 찾아갔던 캐네디안 호스텔이 있다. 싱글룸이 45이집션 파운드였으니까 약 9000원 꼴이었는데, 그리 싼 편은 아니었지만 그곳에서 일하던 알바생들이 너무 어리고 착해서 마음이 갔던 곳이다. 나의 이집트 여행 마지막 날, 정말 아쉬움이 뚝뚝 떨어질 수 밖에 없었던 그 날, 지금도 카이로 카이로 카이로 카이로 중얼중얼거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곳이 바로 여기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꼭 한번 더 이곳을 가고 싶다. 너무 많은 미련과 아쉬움을 남기고 온 것 같다. 병이다,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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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oun
Travel/Egypt2010. 7. 11. 02:16


고요한 골목길에서 너덜해진 핑크색 원피스를 입은 아이가 나타났다. 자신을 찍고 있는 내 눈을 전혀 바라보지 않은 채, 계단을 손으로 쓸거나 허공을 바라보거나 빨래가 널어져 있는 담 너머를 응시하곤 했다.

난 혼자하는 여행이 좋았다. 지독한 외로움 끝에서 나는 무념무상의 상태가 되곤 했으니까.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는 상태의 나는 눈으로 들어오는 모든 것들을 있는 그대로 본능적으로 받아들였으니까. 밤이되면 큰 그림자들이 나를 덮쳤고, 타인들은 거대한 담장을 이루었다. 그것도 장미꽃 향기 폴폴나는 가시 덩쿨로 만들어진 담장. 오래된 벽 안에 둥지를 튼 새들이 내 머리위를 날아다니고, 나무들은 집 한채를 삼켜버리기도 했다. 사람보다 열배정도는 커 보이던 초코송이 모양의 짚풀더미, 거리의 인부들, 골목 어귀에서 차이를 들고 돌아다니는 꼬마 차이왈라들, 나일강 위의 까마귀 떼들... 나만 그 골목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으로 그곳을 버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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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oun
Travel/Egypt2010. 7. 2. 11:00

다음 날 아침에도 이 거리를 걸어가는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아. 비릿한 침을 삼키며 이 한산한 거리를 활보해. 이 거친 땅 위에서 자신의 체온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숲에 나는 그저 차가운 이방인. 나의 뜨거운 체온을 알아주던 이가 나를 데리고 숙소 옆 구아바 가게로 나를 데려가. 달달한 구아바 음료를 목구멍으로 넘길 때, 내 주위는 온통 눈 녹듯 녹아버리고 그 자리엔 잎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익어. 내가 살아온 길. 내가 밟아온 그 길. '나는 정말 열심히 살아왔나요? 사랑하며 살아왔나요?' 아무런 대답도 없는 그 길 위에서, 왁자지껄하던 그 길 위에서, 허름하던 그 길 위에서 나는 내가 움켜쥐고 살아왔던 빛을 잠깐 놔주었어. 그래도 나는 괜찮어. 부풀어버린 빛 조차 이곳에서는 반쯤 허물어진 집 같아서. 그 많은 희열과 고된 시간들 속에도 어쩌면 그 반쯤 허물어진 빛이 존재해. 차곡차곡 그 빛을 개어 가슴속에 포개어 둔 뒤에 배부른 그 길을 걸어. '나는 정말 열심히 살아왔나요?' 다시 되물을 때, 그제서야 숲 안에서 조용한 웃음을 지을 수 있었어.
이곳은 묶지 않은채로 엉켜버린 마음 같아서 애써 보이지 않는 것은 덮어버리고 생각들은 허공에 흩어져버리고 순간의 기억들만 남아. 지겹도록 이야기하는 푸르스트의 마들렌 같은 기억이 아니야. 시간에 금을 내고 벌어진 사이로 빠져나오는 능동적인 기억들이야. 체득될 수 밖에 없는 나의 피부와 뼈의 기억이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것들이 너무 많아져버려서, 이제는 애써 짓지 않아도 될 온기의 기억이야.
Posted by goun
Travel/Egypt2010. 6. 26. 23:06

이집트 서쪽 리비아 사막과 맞닿아 있는 시와. 시와의 사막 근처 시내에서 고기는 참 귀할 법. 풍경은 제 몫의 나르시즘을 챙겨 멀리 달아날 것 같았고, 그 틈을 타 재빨리 사진에 담는다. 저 무슬림 아저씨가 베이컨이 그린 교황처럼 잠시 스쳐보였던 건 나뿐만은 아니겠지? 벽에 새겨진 글씨들과 정갈해보이는 저울, 검은 비닐봉지 3개가 놓여진 위치들이 어쩌면 하나같이 아름다운 구도를 위해 놓여져 있는것 처럼 보이는 것이냐. 이런 풍경은 단지 풍경으로서만 존재하지 않는, 욕동하는 풍경처럼 보인다. 이것들이 내 자신을 탈육화 하게 하고 부동의 순간으로 대체하는 것 같다. 마치 꿈틀거리는 갓 잘린 탯줄을 담은 것마냥 가슴 설레던 순간. 아. 이런 느낌은 역시 여행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이라며, 단지 한장의 사진에 이렇게도 많은 의미들을 채우고 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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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oun
Travel/Turkey2010. 6. 21. 00:40

그 어떤 유물유적들 보다도 섬뜩했었는데 이 꼬맹이들은 잘도본다. 하긴, 이건 이집트에서 본 30구 넘는 미이라들에 비하면 별것도 아니다. 미이라 박물관과 고고학 박물관에서 본 미이라만 40구는 족히 넘을 듯.(왕과 그 부인들과 키우던 동물들의 미이라까지 다 포함하면 50구 넘고) 박물관 입구에서부터 나는 시큼한 냄새와 세세하게 그려진 미이라 만드는 과정 설명서와 코로 뇌를 빼고 간과 위를 빼내는 도구들...다 너무 흥미진진해서 문 닫는 시간 넘어서까지 박물관에서 미이라를 보았다. 다행히 의과대 친구가 옆에 함께있었기에 영어 해석은 그 친구가 다 해줬다. :)


이건 이집트에서 본 미이라인데, 사실 이건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우선 미이라 박물관과 카이로 고고학박물관(이집트에 있는) 내부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었기에, 아스완의 누비안 박물관에 있던 위의 미이라들만 촬영할 수 있었다. 그것도 약간의 돈을 내고서. 수천년 전 미이라의 이와 발톱에 경외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수십구를 봐도. 미이라의 머리카락과 다양한 색의 피부, 정교한 손톱과 발톱 등은 정말 뜨악 뜨악만 연발하게 했고 그 당시 이집트인들에 대한 존경심을 저절로 생기게 했다. 뭐니뭐니해도 람세스 2세의 미이라 모습에 충격. 젊은 나이에 미이라가 된 왕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머리카락 숱도 적고, 피부의 질감과...추정할 수 있는 생김새... 그냥 람세스 2세 미이라 보지 않고 마음속에 나이쓰한 람세스 2세만 담아둘 걸 그랬다. 람세스 책 5권 읽고 기대만땅하고 갔던 나와 친구는 가장 실망스러워했다지 아마.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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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o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