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2013. 3. 4. 12:09

서고운 작가님께.

서 작가님이 가끔씩 느끼곤 하시는 그 감정, 아마 정확히 같을 수는 없겠지만, 저 역시 이곳에서 특히나 많이 느끼고 있는 감정과 무척 닮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 역시 혼자서 가만히 생각에 잠기다 보면, 문득 한없이 막막한 느낌이 들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무엇부터 손에 잡아야 할지 몰라 그저 멍해지거나 두려워질 때가 많거든요. 그 말씀, 그 표현이 정말 맞아요, 외로움 같은 게, 정말이지 툭 하고 터져버릴 때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또 제가 안으로만 열정을 꾹 꾹 눌러담는 성격이라, 마구 지르듯이 분출하지도 못한다는 게 또 저 나름의 병증이라면 병증이겠지요.

작업. 우리의 작업은, 아마 서로 세부적인 성격은 다르겠지만, 자신과의 대면, 그 지독한 외로움과 적막함과 함께해야 한다는 점에서, 매우 닮아 있기도 한 것 같습니다. 그 외로움과 적막함이 때로는 소중한 친구가 되지만, 가끔은, 가끔 같은 자주, 양날의 검이 돼서 우리를 마구 찌르기도 하는 것 같아요.

숙명이다, 운명이다, 생각은 해보지만, 가끔씩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그런 불가해한 느낌, 전 우주를 앞에 둔, 그 무한한 공간을 마치 앞에 둔 듯한 그런 느낌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 저는 우주에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정말 많이 봅니다.^^;)

서고운 작가님의 메시지가 너무 반갑고 짠해서, 왠지 동병상련이 느껴져서, 이렇게 제가 두서도 없는 넋두리를 늘어놓고 있네요. 아무튼 서고운 작가님, 서고운 작가님의 작품들은 제가 예전에 좋아했던 작가들, Paul Delvaux, Clovis Trouille 등과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개인적으로 느끼면서도, 또 그들과는 전혀 다른 어떤 잠재적인 힘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서 작가님의 그림들을 처음 봤을 때 열광적으로 끌려들었던 바로 그 힘, 서 작가님은 그런 힘을 갖고 있는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마 그런 힘을 갖기 위해서는, 작가 스스로가 의도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저 외로움과 적막함에 의한 어떤 결핍과 소모, 희생이 따랐던 것이겠지요.

그 결여와 소진의 제물이 훗날 무언가를 보상할 거라고 말씀드리고 싶진 않습니다. 일단 저부터 제 자신에 대해 그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 믿지는 않으니까요. 그러니까 어쩌면 우리는 어떤 보상이나 내세 같은 확답을 기대하기 때문이 아니라, 대단히 유물론적으로, 언제나 승산 없어 보이는 게임을,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바로 그 매력/마력에 끌려서, 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그 힘의 지배자이자 동시에 그 힘의 노예가 아닐까요. 이 기이하면서도 매력적인 SM 관계가 우리의 힘과 외로움, 그리고 우리의 폭발력과 적막함을, 그렇게 역설적으로 동시에 지탱해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함께 힘을 내면서도, 또한 동시에 함께 힘을 빼고, 외로움을 분연히 떨쳐 잊어버리면서도, 또한 동시에 그 적막함 속으로 침잠해야 하는, 아마도 우리는 이러한 이상한 심연에 자진해서 빠진 것인지도 모르죠.

하지만 심연에서, 미궁에서, 계속 노닐 겁니다. 때로는 길을 잃지 않은 척, 혹은 길을 잃었다는 걸 즐기면서, 아마도 계속 이 유한한 공간에서, 바로 그 유한 속에 있는, 아니 오직 바로 이러한 유한 속에만 존재하는, 그런 무한을, 그 무한한 쾌락과 고통의 결합체를, 아마도 계속 따라갈 것 같습니다.

 

뜬금없는 말이지만, 저는 서고운 작가님의 그림들을, 너무 너무 좋아합니다.^^

 

***

 

최정우 선생님께 받은 글. 참 감사하고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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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o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