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하지 않았을 때엔 죽어가는 동식물, 사라져가는 추상적인 단어들, 말을 하지 못하는 개체들, 인간이 만들어낸 사물들에게도 사랑을 주려고 부던히 노력했었다. 내 안의 감정들이 쓸데없는 곳에 소모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무엇보다도 오늘은 웃다가 내일은 우는 인간이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사랑이 없는 나의 삶은 건초더미위에 쓰러진 한마리 어린 양 같았다. 작업을 해야 비로소 나는 그 무미건조함에서 빠져나와 무한한 사랑을, 무한한 슬픔을, 무한한 고독을 즐길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굳이 다른 무언가들에게 사랑을 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슬픈 상념이 꼭 좋은 작업을 만들어내는건 아니니, 나는 더이상 그런 장중한 애가를 그림에 투사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그림으로 표현하려고 하는 것들은 달라지지 않았는데, 그림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것일까. 난 지금이 정말 행복하고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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