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들어 보는 영화들이 다들 외로움에 허우적거리는 내용들뿐이구나. 그래도 그런 영화들은 내게 무척이나 위안이 된다. 나라는 인간도 언제까지 외롭지 않다고 박박 우기며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니. 얼마전 본 브라질 영화 Como Esquecer (So hard to forget, 너무나 잊기 힘든, 2010)는 마음에 쏙 드는 대사들이 참 많았다. 크게 어떤 일이 벌어지지도 않고, 반전이 있다거나, 야하다거나, 감동적이라거나 그런게 아닌데도 아주 마음에 쏙 와닿는 그런 영화였다. 연기도 좋았고, 독백형식이 많은것도 좋았고, 음악도 좋았다. 그 어느것 하나 부자연스러운 건 없었다. 와인을 마시고 그저 서로의 마음을 도란도란 나누는 그 장면이 좋았다. 무언가를 잊는것과 잃는것은 같을까?...적당한 시기라는 건 없어. 그저 내가 희생하는 편이 나아...갑자기 죽음이 솔직하게 말해왔어. 메마른 약속들의 존재가 그 어떤것보다도 낫다고...환영만큼 현실적인 것이 있을까?...
내가 채워온 여러가지들을 비우는 과정이 꽤 힘들게 느껴진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잘 모르겠다. 집중하고 싶은데 집중할 수 없는 이 상황이 두렵고 힘든건 사실이지만, 이것또한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스스로 다독이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자꾸만 괴롭다 괴롭다 괴롭다고 마음에서 말하는데, 그건 당장 확신할 수 없는것들 때문이다. 분명 나는 잘 해낼것이다. 잘 해낼 수 있겠지. 초조해하지 말아야지.
# 그대의 눈은 마른 가지의 색 처럼, 딱딱한 건자두 빛의 작은 구멍만 남겨져있다.
그대는 나를 보며 그 어둡고 마른 터널로 나를 잡아 이끈다.
당신의 너털거리는 발걸음 속에는 텅빈 시체의 냄새가, 고약한 살 내음이, 고독과 소음의 충돌만이 남아있다.
그대가 건넨 허공의 손짓은 이미 슬픈 상념에 젖은 사람의 손짓이요, 산 이의 마지막 시선이다.
오, 그대여. 그대는 어찌하여 두 눈을 잃었습니까.
-네팔에서 두개의 안구가 없이 구걸하고 다니던 노인을 보고 쓴 시.
# 세상 사는게 참 쉽지 않다고 생각되면서도, 한편으론 그렇다고 딱히 어려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돈이야 먹고 사는 문제니까 평생 생각해야하고, 나는 어차피 작업을 해야하니까 투잡을 하는 건 당연하다. 인간관계는 누구나 힘든 문제일거고.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치사한 여러가지 상황들이 생겼을 때, 그것을 견디느냐 마느냐의 문제이다. 최소한의 내 자존감을 지키면서 사는 것이 어려운것이다. 그리고 작업을 계속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좋은 작업을 꾸준히 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기위해서는 내가 원하는 작업이 무엇인지를 알고, 꾸준히 계속 해나가야한다. 주변의 어떤 말들에도 현혹되지 말고, 상처받지 말고, 내 갈 길을 가야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작업을 보는 내 주관적인 눈은 꽤나 까탈스러운 것 같다. 나는 가벼운 그림이 싫고, 감각으로만 무장된 그림도 싫다. 장식적인 그림도 싫다. 너무 과하게 오타쿠 적인 그림도 싫다. 팝아트 싫고. 너무 쉽게쉽게만 풀어낸 작업도 싫다. 같은 스타일 반복하는 그림도 싫다. 분명 그런 그림들도 미술계 안에서는 필요하겠지만 나는 싫다. 참 어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