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2023. 5. 15. 12:06

# 아기가 나에게 온 걸 처음 확인해봤던 그날을 떠올려본다. 7년의 난임에 급히 시작했던 시험관. 예상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던 다양한 검사들과 시술 과정들은 꽤 버틸만했고, 두줄을 봤던 그 순간! 내 마음은 마치 헬륨 풍선처럼 붕 하늘로 떠올랐다. 그때부터 안정기가 될 때까지 걱정으로 똘똘 뭉친 무거운 돌 들을 하나 둘 씩 내려놓았던 지난한 시간들이었다. 이제와 생각하니 그렇게 한번에 아기가 나에게 와준건 정말 신의 도움이자 인생에 한번뿐인 큰 선물같은 것이었다. 그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를 그때는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그런 날들이었다. 

# 작년 말부터 다시 시작한 시험관은 4년이나 지나선지 예전과는 달랐다. 다시 재발한 용종을 또 떼어내야했고, 내막의 두께때문에 이식이 중단되었다. 시작한지 5-6개월만에 첫 이식을 했는데, 피검을 하기도 전에 너무 단호하게 한줄인걸 발견하고 이번에는 실패를 완벽하게 직감했다. 4년 전, 붕붕 뜨던 헬륨 풍선같았던 내 마음을 나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그 풍선은 펑 하고 터져서 아주 아주 무겁게 저 깊은 심연 속으로 가라앉았다. 다들 예전처럼 순조롭게 잘 될거라 했다. 이번에도 예전 처럼 바로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아가는 매일 매일 나에게 동생 이야기를 했고, 엄마 뱃속에 아기가 있다고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 이식한 상태였을 때 아기는 기린 그림을 그렸고, 엄마 기린 배에 아기가 있다면서 동그랗게 배를 크게 그린 다음 그 안에 아기 심장을 그려달라고 말했다. 내가 작고 빨간 심장을 그려주니 아기는 만족스러워 했다. 엄마 배에 착 붙으라며 배를 만져주던 아기의 따스한 손이 생각난다. 기다림에 지친 아기는 이제 거의 울먹이며 말한다. "엄마, 동생은 언제 생기는거야? 동생은 왜 안나와?" 그러면 나는 계속 웃기만 한다. 아기에게 할 말이 없어서. 다음이 있는거니까. 응 다음에 또 하면 돼. 하면서 다시 이식을 했는데 이번에도 또 실패를 하고 말았다. 아기는 내 뱃속에 또 아기가 있다고 말했는데. 괜한 기대를 품었나. 시간이 흐르며 괜찮았던 멘탈은 점점 파사삭하고 무너지는 것 같다. 그리고 주변에서 하는 말들이 내 몸과 정신을 망가뜨리고 있다. 병원에서는 무조건 눕지 않아도 된다, 눕눕하는건 더 착상을 방해하는 행동이다, 일상 생활을 하면서 가벼운 산책 정도를 하는게 더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나는 전문가의 의견대로 열심히 따랐을 뿐인데, 눕지 않아 실패했다고 하는 말이 내 귀에 들려오니 마치 내 잘못으로 인해 이식에 실패했다는 것 처럼 들려 너무나도 힘들었다. 시험관은 내 자의로 시작한 게 아니다. 모든게 울 아기의 바람으로 시작한것이고, 너무 간절히 동생을 바라는 아기를 볼때마다 엄청난 책임감이 생기는 것이다. 이제 다시 처음부터. 배에 하루 세번씩 주사를 놓고, 난자 채취를 하고, 이틀에 한번씩 초음파를 보고, 약을 몸에 주입하며 그렇게 지내야 되는 것인지 너무나 고민이 된다. 다시 하고 싶지는 않은데, 하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을 하면 울먹거리는 아기의 얼굴이 떠오른다. 어떻게 해야할까. 나는. 

# 작업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시간이 이렇게 확 확 지나간다. 나의 일상을 다시 되돌려놓고 싶다. 이번 여행은 어쩌면 정말 내가 너무나도 간절히 원해서, 가야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기와 함께 가는 여행이 쉽지는 않겠지만 나는 믿어보련다. 스트레스를 줄이고, 더 나은 상태의 내가 되어 오기로. 그리고 내가 하고싶은 작업을 잘 하는 내가 되기를. 지나가는 시간을 두려워 하지 않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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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o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