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시 하나만 보고 달려온 긴 긴 시간들이 지나고... 별탈없이 전시를 마무리한지 벌써 한달 가까이 되어간다. 전시를 준비하는 동안 해야할 일들을 리스트업 해놨으나 왜인지 모르게 그 리스트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냥 마음속으로 다 미뤄둔 듯) 그저 내 앞에 닥치는 일들만 하나 둘 씩 처리해내고 있다. 그리고 그 미룸의 사이 사이에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뜨개’라는 “좋은” 취미가 떡 하니 자리를 잡았다. 뜨개를 할때만 비로소 생각이 비워진달까.(거의 명상 수준이다) 허리도 아프고 손가락도 아프면서 왜 놓지 못하고 계속 하고 있는건지 나조차도 잘 모르겠는데... 그냥 마음이 허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자꾸만 곱씹을 일들이 생각나서 더 이상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 전시가 끝나자마자 세식구는 코로나에 걸렸고, 2주 가정보육 후 아기를 어린이집에 보내며 그제서야 나도 좀 쉴 수 있었다. 그러나 잔기침은 아직까지도 계속 나오고 있고, 목구멍이 여전히 간질거린다. 조금의 자극에도 굉장히 예민해진 것 같은 느낌. SF 독서모임도 다시 시작했고 습관처럼 도서관에 들락날락거리며 책을 빌려오고 있으나 여전히 뭔가에 집중을 하기가 어려운 상태다. 그래도 너무 좋은건 울 아기랑 오랜시간을 같이 보낼 수 있다는 것! 전시 준비한다고 주말에도 작업실에 나갔기때문에 24시간 붙어있는 시간이 아예 없었는데, 전시가 끝나자마자 아기랑 시간을 보내니 정말 행복하고 기쁘다. 아기는 세상 행복하게 웃고 내가 사랑을 주는 것의 몇배로 나에게 사랑을 되돌려준다. 하늘에서 내려준 천사같고, 요정같고, 내 보물이고, 내 전부가 됐다. 이런 존재가 생기다니... 이렇게 이쁜 아기가 내 딸이라니하며 하루에도 몇번씩 감격스러워 하는 중이다.
# 아기 덕분에 이렇게 행복한 날들임에도 과거에 벌어진 불편했던 순간들과 해소되지 않는 감정들때문에 종종 불면에 시달린다. 떠올려봐야 무슨 소용 있겠냐마는. 그때의 그 감정들은 전혀 해소되지 않고 있는데, 무작정 참거나, 이해하려하거나, 안좋은 상상을 하는 것 따위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 차라리 불편한 감정을 버릴 수 있는 오물통 하나 있다고 생각하면 편해질까. 다 쏟아버리고 싶다.
어릴 적 나를 뒤돌아 생각하면 왜 좀 더 깊이 생각하고 말하지 않았을까, 오해가 만들어질 것 같으면 입을 다무는게 낫지 않았을까, 조금만 더 참고 신중했다면 어땠을까, 좀 더 살가웠다면, 좀 더 책을 많이 읽었더라면... 등등의 후회들이 스쳐간다. 그랬다면 달라졌을까, 아님 달라지는 것 없이 또 다른 상처들이 생겼을까. 왜 나는, ‘젊을 때 그런 사람 몇이나 있어~ 다들 실수하고 상처 주고받으며 사는거지. 나이들어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면 되는거야.’라고 나에게 이야기하지 못할까. 이유는, 그때처럼 비슷한 상황이 닥쳤을 때 (누군가가 나에게 상처를 줬을 때) 나조차도 쿨하게 넘기지 못하기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드는 생각은 지금 내가 해야하는 건 미워하기를 최대한 유예 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오물통을 더 큰 것으로 바꾸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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