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2014. 6. 7.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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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서>와 안토니오 타부키의 <꿈의 꿈>을 샀다. 둘다 얼른 읽어봤으면 하는 책들.

 

작업을 하면서 실패를 꾸준히 겪다보면 약간의 내성이 생겨버린다. 그러면서 나는 점점 겸손해지고 좌절에 익숙해진다. 얼마전 친척동생이 나를 보더니, 변하지 않을 것 같던 서고운도 늙고 있는 거냐면서 평생 피터팬처럼 살 줄 알았다고, 실망했다 한다. 그 녀석의 말 앞에 나는 깔깔 웃으면서 내가 도대체 뭐라고 안 늙고 베기냐고, 그저 평범하게 살면서 꾸준히 작업하는게 제일이라고 말했다. 삶이 평범한 것이 어쩌면 작업에 더 이로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걸 깨달은 게 얼마 안된다. 그게 늙음의 증거라면 나는 달게 받아들이는 수 밖에.(아님 말고)

그림을 그리면 그릴 수록 작업이 좋아지기야 한다면야 꾹 참고 계속, 오래오래 작업만 하겠지만 그런건 어디에도 없다. 자주 망하고, 내 재능없음을 탓하고, 지옥과 천국을 왔다갔다 하다가, 아주 새로운 곳(생각하지도 못했던 곳)에서 뭔가가 툭! 튀어나오면서 의외의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 사실, 실패의 반복 속에서 뭔가가 나와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닌데, 그러면서도 매번 반복되는 우연에 대한 갈증과 염원은 어찌 설명할 길이 없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나는 20대의 내 모습을 아주 넓은 바운더리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예전보다는) 20대에는 시간에 쫓기면서 그림을 그렸던터라, 작업만 온전히 많이, 오래 하기만 한다면 엄청 유명한 작가가 될 수 있을거라 생각했었으니깐. 이제는 내 나이 마흔을 생각해보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매우 먼 미래를 상상하는 것 보다는 당장 내일 무엇을 할지부터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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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o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