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고 깊은 심연이 입을 벌리고 서 있어서 내가 이렇게 슬픈게 아니다. 빈 장화. 그런데 너무 무거운 그 장화 때문에 소름이 끼친다. 젖을 주는 늑대를 보고 있어서 슬픈게 아니다. 쉬지 않고 거리를 줄이고 있어도 줄지 않는 그 가까움때문이다. 나는 경적소리를 내는 스피커를 꿀단지 처럼 끌어안고 멍하게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공중에서 분해됬을지도 모를 그녀의 편지는 지금쯤 어디에 있나, 아니면 정말로 사라져버렸나. 나는 갑자기 장화에 들어있는 물을 생각하다가 느긋한 곡조를 듣고 있는 인형처럼 고요해졌다.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을 읽었다. 사람들은 여우한테 물리는 것은 참을 수가 있어도, 양한테 물리는 것엔 응당 화를 내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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