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사는거 별거냐 싶으면서도, 막상 내가 엎지른 여러가지 문제들은 해결책이 눈앞에 던저져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것이 된다. 왜 일까. 이유는, 공격적이지 않은 의도의 솔직함이라 하더라도 권위적인 사회의 체제안에서의 타자에 대한 솔직함은 어쩌면 사실보다 더 부정적 인식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으므로. 혹은 그들이 원하는 것은 솔직함이 아니었므로.(이게 더 맞는 부분인 것 같다. 슬프지만) 그렇기때문에, 내가 왜 이제서야 솔직함이 더이상 무기가 아님을 깨닫고 있는지, 아무런 방어막 없이 그것의 유용성을 신뢰하고 있었는지,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내 스스로의 마음가짐 자체가 불편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권위적이지 않은 사람들과 있으면 무한한 생동감을 느끼면서 나를 내려놓게 되는데, 그 반대의 경우의 나는 항상 알고 있으면서도 반복적으로 실수를 한다. (내 말이 오해없이 잘 전달될것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계속 위축되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오해의 가능성이 높은 사람 앞에서는 더 더욱 위축된다.) 그렇다면 왜 위축되면서까지 솔직함이라는 것의 힘을 맹신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바보였나. 타자에 대한 절대적 오해의 순간들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데, 구태의연하게 그것들과 나를 붙잡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바보 왕국의 나도 바보인거고, 그렇기때문에 결국 바보의 세상에서 뒤엉켜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많은 판단들을 유보시키고서라도 난 이 난제를 해결해보고 싶다. 어떤 방법이 있을까. 어렵다. 그래서 외로움을 이겨내기위한 방법들을 지켜나가게 되기만을 바란다.
여행을 하면 이 모든 문제들은 거뜬히 해결된다. 아니면 그저 해결되어 보이는 것일수도 있지. 그러나 확실한 건 나를 내려놓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는 거다. 단순히 나는 지나치는 행인일 뿐이기 때문에 삶에 녹아드는 진정한 경험을 온전히 누릴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 공간속의 나는 판단의 유보가 필요치 않은 상태로서 존재한다. 또 다른 나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사람이 사는 곳은 부대끼고 혼란스럽고 말과 말이 교차되면서 어지럽히고 거짓을 만들어내고 남을 할퀴고 밟고 올라가고 공격하고 방어하고 숨기고 아닌척하고 진실을 은폐하고 테두리를 만든다.
나는 솔직함의 안쪽을 살펴보고싶다. 그곳은 텅 비어 있는지 아니면 차고 넘쳐서 아무것도 받아들일 준비조차 할 수 없는지. 그런데 그것은 내려놓음이 가능한 공간에서만 그러고싶다. 그래서 예전보다 덜 외롭고 덜 힘들어진다면 좋겠다. 그리고나서 50년 쯤 뒤에 내 스스로에게 물을 것이다. 내 안의 솔직함이 어떤 모양으로 변화되어 왔는지에 대해서. 나는 내 작업이 순환의 통로가 되기를(무엇이든지간에), 그리고 그것은 단순한 환상의 열쇠같은 모습이 아니라 친밀한 괴력처럼 뿜어져 나오는 것이기를 항상 바란다. 그건 평생의 과제가 되겠지만. 나는 오늘도 여전히 바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