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지금이 불안해서 떠나고, 누군가는 쉬기 위해서 떠나고, 누군가는 새로운 만남을 기대하며 떠난다. 나는 너무 가진것이 없었고, 지금이 아니면 안되겠다는 심정으로 떠났다. 아끼던 기타도 2대 팔고, 작업실도 정리하고, 밥줄이었던 아르바이트도 2개를 관뒀다. 1년간 차근차근 모은 돈을 가지고 떠나던 그 심정은 '다 버리고 와야겠다' 정도였다.
멀고 먼 길이었는데, 무서울것도 하나 없었다. '설마 죽기야 하겠어' 하는 마음으로 현지인들만 타는 기차를 타고, 사막도시에 새벽 4시에 혼자 떨어지기도 하고, 비오는 날 숙소를 구하려고 2시간 넘게 걷기도 했다. 스스로의 약함을 인정하는 것도 싫고, 그런 나를 방치하며 살면 (적어도 나에겐) 안되는 거였다. 나는 내 정신력의 끝이 어디인지 테스트해보기위해 일부러 더 멀고 험한 곳으로만 다녔다. 그러면서 내가 생각하는 내 스스로의 결핍은 과연 무엇인지 생각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결핍. 그리고 이 여행이 끝나고 다시 새로운 여행을 떠날 때는 그 결핍들이 많이 사라져주었으면 하고 바랐다.
짝꿍씨가 요즘들어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을 걷고싶다며 함께 하자고 한다. 나에게 순례란 어떤 의미일까. 순례. 사실 생각해보면 나의 여행길 자체가 나만의 순례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여행길에서 내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나와 화해하고 그냥 자연스러운 나로서 살고자 노력했으니까. 순례는 정말 그냥 그런 것이었다. 만일 내년이든 내 후년이든 산티아고를 걷게 된다면, 혼자 걸었던 그 여행과는 사뭇 다른 순례자의 길이 될 것 같다. 조금 더 나의 내면과 만나게 될까 아니면 새로운 나를 발견하게 될까. 그러나 적어도 내가 혼자 다녔던 그 험한 길보단 좀 더 낭만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지 않을까. 이전의 내 여행은 오로지 나 밖에 없었다면 지금은 나보단 당신과 함께하는 그림으로 그려질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