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연속 장소 바뀌어가며 설치를 했다. 어제는 갤러리 수에 나의 페인팅 작품들을, 오늘은 시대여관에 나의 드로잉들을 걸었다. 두 장소는 정말 너무 상반될정도로 느낌이 다르기에, 장소가 주는 아우라가 작품에도 많은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있다. 시대여관은 동대문 역 근처, 창신동에 있고, 1940년대 피난민들이 살던 쪽방촌에 위치해 있는 아주 역사적인 장소다. 작년 겨울 작가 네다섯이 모여 장소를 보면서 그때부터 기대어린 마음으로 전시를 준비했다. 준비하면서 서너명의 작가분들이 더 섭외되었고, 나를 포함한 총 8명의 작가분들과 이 전시를 함께 하게 되었다. 나는 2018년 갤러리 조선에서의 작업 중, 가장 나중에 그렸던 죽음의 흔적 작업들 ‘<앉은자리 sickseat>와 <누운자리 sickbed>’를 좀 더 그려보고 싶었다. 나의 작업 노트와 기획자이신 김시하 작가님의 글을 이곳에 첨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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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표피들은 '흔적'이라는 오래된 시간의 축적으로 우리의 눈앞에 놓여있다. 이 흔적들은 발견되자마자 없어질 것들이다. 나는 발견되자마자 사라질 그 흔적들을 캔버스 위에 고정시키고, 누구의 흔적인지 모를 죽음의 자리를 바라보며 나의 죽음의 흔적을 엿본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면서.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잘 살기 위해' 생에 집착하는 많은 일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죽음과 애도의 시간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The surfaces of death are laid before us through longstanding accumulations of time that we call “traces.” These traces are fated to disappear once they are discovered. I take these traces that disappear upon discovery and fix them in place upon the canvas, spying the traces of my own death as look upon a place of death whose traces cannot be attributed to anyone—all while constantly posing the question of how we ought to live. Some time for proper death and mourning may be needed to understand the many people among us who fixate on life in order to “live well.”
■서고운 Gounseo,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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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욕욕 Yok Yok Yok, 전시의 변 ● 1. 어느 작가의 포스팅으로 기억 소환하듯, 책장 속을 뒤져 꺼내 들은 책, 죽기전에 마지막으로 썼다는 찰스 부카우스키의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는 다시 봐도 정말 끔찍했다. 그의 글 솜씨가 끔찍한게 아니라 그가 쏟아 놓은 말들은, 세상에 대한 제기랄, 니미럴쯤의 배설이 가득한 문장이었기 때문이다. 멋부리지 않은 글들이 심장을 파고 들었다. 일평생 글쓰기만이 그를 구원했는데, 그런 그를 엿보며 나를 구원하고자 했던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생각하니, 갑자기 답답해졌다. 사람들은 예술가들이 대단한 무언가를 지니고 있어 그것 때문에 제 살을 파고먹는다고들 하지만, 그것보다는 바로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 때문에 잠식되어 점점 고립되다 자멸하기도 한다. 예술을 받아들이고 예술가들을 바라보는 일은 모든 감각을 열어놓아야 가능한 일임에도 세상의 잣대는 언제나 그 반대다. 일반적인 관념, 방식, 해석 따위로 가로세로 줄치기를 하다 보면 빙고가 아니라 쇠사슬이나 쇠창살이 되고 마는데도 너무나 손쉽게 예술가를 사회의 벽에 가둬 놓는다. 한 번 생각을 해보라, 갇힌 예술/ 예술가라니. 생각만으로도 괴로움이 느껴지지 않는가. 마치 tv 안에 온 세상이 있으니 되었다 라는 논리인데, 보라, tv는 그저 네모난 큐브일 뿐이다.향기도 나지 않고 냄새도 없다. 그런데 더 짜증나고 화나고, 답답한 건 대부분, 같은 길에 있는 이조차도 그러한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정말 끔찍하다. 그리고 아무도 그에 관해서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자기조차 그 끔찍한 이들 중의 하나일 수 있다는 걸 애써 부정하려는 듯이. 화려한 미사 여구 없이 , 미학적, 미술사적, 사고, 태도, 모든 걸 뒤로 한 채, 지금의 이 상태를 보자면 부글부글 끓어오르지만 넘치지는 않은 욕망의 발화점을 지닌채 기회를 보거나 때를 기다리는, 그런 상태다. 찰스 부카우스키 의 글을 인용하자면 "제기랄, 정말 괜찮은 작품이 없다는 걸 나는 믿을 수가 없다. 온통 시시껄렁하다." 그런데 그건 당연한 일이다. 예술가들이 그 욕망의 발화점에 불을 지펴 폭발하고 용암처럼 꾸르덩꾸르덩 산등이를 타고 내려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2. 전시아이디어를 서로 공유했을 뿐 그럴싸한 그림은 없다. 그러니 글을 미술적으로 멋들어지게 써야할 이유도 없었다. 그저 사라져가는 공간을 부여잡고 이야기나 좀 해볼까?에 가깝게 이 일은 시작됐다. 그런데 그것 또한 강력한 어떤 최음제 같은 것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여기 있는 예술가들은 거창한 타이틀이 없어도 작품 안에 서거나 그 외 삶 자체에서도 그 어떤 이들보다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치열하고 그 욕망의 들끓음을 항상 심장에 위치시켜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감각으로 무장된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공간을 던지니 작가들은 반응하기 시작했다. 나는 어쩌면 전시장에 누군가가 흘린 작은 동전을 작품으로 둔갑시키는 일에 지쳐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한동안은 나도 전시된 동전도 예술가의 특별함으로 보면 특별하지 라는 것에 도취되어 있었으나 그건 그냥 동전일 뿐이고 오히려 "어머, 동전이 있어, 내가 주웠어, 횡재했네" 라고 행운이라 여기며 동전을 주워드는 것이 더 예술적인 시그널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기 시작했는지도. 그래서 예술이라고 우기며 그럴싸하게 보여주는 전시보다 전시에 참여했든 안 했든 예술가들이 무언가를, 영감을, 경험을, 이야기를 얻는 전시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관객을 위한 전시보다는 예술가들을 위한 전시가 되기를, 혹시 아는가, 그것이 어느 예술가의 발화점에 불을 지피는 성냥 한 개피가 되어 줄지. 그렇게 피운 작은 불씨가 화산이, 용암이 되어줄지 말이다.
굳이 보태는 말. ● 시대여관은 1940년대 피난민들이 살던 쪽방촌에 위치한 장소로, 여관으로 들어서는, 마치 이상한 나라 엘리스의 땅굴 같은 그 문을 지나기전 자리한 맥주펍의 주인장의 눈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동대문의 흐름대로 사라질 위기에 있던 곳이다. 사라져 간 많은 것들이 그렇지만 이 곳 역시도 자본의 한 꼍이자 사회구조의 약자를 위한 최소한의 공간이었기에 이 같은 맥락에서 작품과 예술가들이 위치하기에 적절한 공간이었다. 이곳에는 최영미 시인의 시대의 우울의 한 테마가, 사라진 역사의 인물이 재해석되고, 관음증이, 죽음이, 처연함이, 발광하는 빛이 그리고 역설적인 색들이, 공존해 있다. 굳이 하나의 테마로 , 묶어 정의 내리지 않아도 보는 이들에게는 보일 그것이. 오래 전 30캐럿을 대표적으로 여성 그룹 활동가 페미니즘을 기반으로 한 활동이 활발하던 시절이 있었다. 많은 여성 작가들이 본인이 처한 사회의 현실을 그룹 활동을 통해 작품으로 표현하며 움추려 들던 자아를 표출하던 시기가. 지금시대에서 성별이 앞선 그룹 활동은 없지만 이번 전시는 그 맥락이 포함되어 있음을 부인하지 않겠다. 일종의 ' 유닛 활동' 이랄까 . 욕욕욕 YokYokYok 은 내뱉는 욕(속어, slam)이기 이전에 욕망, 욕구, 접미사로는 식욕 성욕, 물욕 과 같은, "욕欲"에 기반한다. 그 욕에 충실하다보면 사실 이는 상대적으로 '욕' 을 가리고 사는 ' 여성' 에 접근하게 되기에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이 모두 "일부러"_' 여성'을 주제로 작업하지는 않는다. 기존에 해온 작업들이 이 공간과 이 주제로 같이 공존하게 되었을 때 어떤 맥락으로 읽힐지, 자연스럽게 녹아든 성 역할과 사회와의 관계, 그것이 어떻게 보여질지에 더 주목한다는 표현이 맞겠다. 사실 모르겠다. 배설하듯이 욕구와 욕망을 드러내어 놓는 일을, 그것의 가치를. 어떤 사람은 심지어 무성애자처럼 아무런 '욕' 도 느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저 대항하기 위함일까. 하지만 어떤 일은 드러내놓아야만 할 때가 있다. 그리고 나는 그게 지금이기를, 바란다. ■ 김시하
About the Yok Yok Yok exhibition ● 1. Like recalling an old memory from an author's internet post, it horrifies me even now to look at the book I scoured my bookcase to find: The Captain Is Out to Lunch and the Sailors Have Taken Over the Ship, said to be the last thing that Charles Bukowski wrote before his death. The horrific thing is not his writing ability—it's the words he unleashed, the sentences filled with excretion, something like a "fuck you" or "go to hell" directed at the world. The inelegant words truly dug into my heart. I felt suddenly stifled at the thought: throughout his life, writing had been his only salvation. What was I doing trying to save myself by spying upon that? People sometimes say that artist possess something extraordinary that makes them dig into and consume their own flesh—yet it is because of people who view things in that way that they can become increasingly eaten away, isolated, destroyed. We can only accept art and see artists when we have opened all our senses, yet the standards of the world have always been the opposite. The more we array ourselves horizontally with our everyday ideas, methods, and interpretations, the more they become chains or bars rather than examinations. All too readily, we confine artists within the walls of society. Think about it, captive art/artist—is it not agonizing even to think about it? It is the same sort of thinking that sees it as enough for the whole world to be on TV. Look at it: the TV is nothing more than a cube. It gives off no scent, no smell. What is even more exasperating, more infuriating, more frustrating, is that most people share the same thoughts—even people who follow the same path. It's truly awful. And no one talks about it. It is as though they are doing their utmost to deny that they too are among those terrible people. Looking at the situation now without any florid rhetoric—leaving aside all the things about esthetics, art history, thought and attitude—it is a state of waiting for an opportunity, a state with an ignition point of desire that roils and bubbles but never spills over. As Charles Bukowski writes, "Damn it, I can't believe there are any really decent works of art. They're all tripe." But it's natural—the artists continue stoking that ignition point of desire until it erupts and they descend along the ridge like roiling lava. ● 2. We have merely shared exhibition ideas at this point, without any paintings to speak of. So there was no reason for me to write this in some artistically grand way. It began out of something akin to trying simply to grab hold of a disappearing space and talk about it. Yet it was also similar to a kind of powerful aphrodisiac. Even without any grandiose titles, the artists here intently pursue different approach from anyone else's—in their work as well as their lives—and are armed with a sensibility where they keep that roiling of desire constantly present in their hearts, ready to erupt at any time. This was their situation when the space was presented and the artists began to respond. It may be that I was tired of the kind of work where I took a tiny coin someone had dropped in the gallery and turned it into art. For a time, I too was carried away with the idea that the exhibited coin was special when viewed in terms of the specialness of the artist; it may be that I have only just begun to understand that the more artistic signal lies in regarding the coin as just a coin, in picking it up and thinking, "Wow, here's a coin I picked up. What a windfall!" Instead of an exhibition where I presented things in attractive ways and insisted on their being "art," I thought a better approach would the kind of exhibition where artists gained something—inspiration, experience, a story—whether they participated or not. An exhibition for artists rather than one for audiences. You never know—it could be the match that creates a spark at some artist's ignition point. The small ember thus sparked could turn into a volcano, into lava.
A necessary addendum. ● Situated in a flophouse neighborhood where refugees used to live in the 1940s, Epoch Inn's existence had been imperiled by trends in the Dongdaemun area of Seoul, right up until the time it attracted the notice of the owner of the pub located just before the door leading visitors inside like the rabbit hole in Alice in Wonderland. The same could be said for many other places that have disappeared over the years: it was a place for capital, but also a small setting for vulnerable members of the social structure, and in that context a suitable environment for artwork and artists. Existing here is a theme from the poet Choi Young-mi's Melancholy of the Era with the reinterpretation of figures from a vanished history; voyeurism coexists with death, with plaintiveness, with radiating light and paradoxical colors—something that will be visible to those who view it, even if it is not necessarily defined in terms of any one theme. Long ago, there was a time when this was an active base for feminism and activists with women's groups, most notably 30 Carat. It was a time when many female artists used their group activities to represent the social reality they faced through their art, to give expression to their cowering inner selves. While the same sort of gender-focused group activists are no longer part of the present times, the exhibition does not negate the presence of that context. It may be seen as a "unit activity" of sorts. The name YokYokYok is based less on the sort of "slam" we deliver to insult someone (one meaning of "yok" in Korean) than on desires (another meaning of "yok"): yearning, craving, appetite, lust, and all our worldly hungers. The choice may be an unavoidable one—for staying true to those "desires" actually leads us to the topic of "women," who tend comparatively to conceal the desires in their lives. That is not to say that the artists taking part in the exhibition all deliberately adopt "women" as a theme for their work. It would be correct to say that the focus is more on the context in which their previous works are interpreted when brought together by space and theme, or on how the naturally imbued gender roles and relationship with society are reflected. I actually don't really know about it—about revealing our urges and desires like excreting waste, about the values that inform that. Some of us may not even experience any desires at all, like asexuals. Is it simply as a form of resistance, then? But with some things, there comes a time when you must express them. And I hope that time is now. ■ Siha, Kim
전시는 5.17-5.31일 까지 입니다. 많이 보러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