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은, 이참에 말랑하고 보송하고 행복한 작업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말했다. 난 정말이지 어떤 목적을 가지고서 작업을 하기보다는 진심으로, 마음 깊숙한 곳에서, 온전히 내가 느끼고 겪은 일들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지금까지도 그래왔다고 자부하지만...그게 아니었을수도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다. 무엇인가가 내 마음 주변을 계속 뱅뱅 돌다가 멈춰버린 느낌이 들었을 때, 난 여행을 선택했고 여행 이후 주위를 돌던 것들은 소리소문없이 떨어져나가버렸다. 무심코 어디로 갔는지 찾으려했을 때 나를 가득 채운 건 새로운 감정들이었는데... 그것들이 점점 부풀어올라 나를 잠식할 것 같아서 두렵기도 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제껏 해왔던 작업들은 내게 약간의 괴리감이 들게 했다. 그래서 지하 수장고에 묵혀둔 포장을 뜯어 계속 그림을 쳐다보다가, 몇 개의 캔버스를 물감으로 덮어버리기도 했다. (권교수님이 내게 제일 바보같은 짓이라고 말했던.) 어쨋든 나는 그림에 조금 더 솔직해져야겠다고 느꼈다. 지금 나는 작업이 잘 풀리지 않아 너무 괴롭지만, 더 좋아질거라고 생각하고싶다. 긍정이 과잉이 되면 꽤나 큰 문제가 되겠지만, 이정도 위로는 괜찮을거라며.
Text2012. 10. 18. 23: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