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전시를 보고, 마음속이 울렁울렁 거리다가 새벽에 읽은 시 때문에 갑자기 머리가 띵해져 그림 앞에서 계속 멍하게 그날을 떠올렸다. 그저 텍스트일수도 있지만 텍스트는 텍스트인데 마음이 날카롭게 조금 아팠다. 리처드 세라가 좋다던 너에게 보여주면 좋겠다고 생각한 그림 몇점이 있었지만 그저 눈으로만 보았다. 그리고 부서진 분필가루(장렬히 전사한), 거리를 가득 채운 매연, 네온사인, 빈 호주머니, 양복입은 어른, 빈 술병...등등의 단어들이 내게 파도처럼 쏟아져내렸다. 순간 그 단어들은 외로움을 간직한 드라마처럼 느껴졌다. 바로 드로잉을 했지만 그 느낌이 전달되진 못하였다. 나는 시를 읽고 작업하고 싶다고 자주 이야기하고, 또 시같은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도 했는데, 내가 쓰는 시들은 조금은 무섭고 잔인해서 내가 스스로 <야만 시집 시리즈>라고 이름 붙여놓기도 했었다. 내 시보다 더 나은 시를 새벽에 만나게 되어서 기뻤다.
_Axel Kra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