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업은 연약하고, 소외받고, 무력한 것들에 귀를 기울이면서 그것들을 애도하는 작업으로 변화되어왔다. 규정지을 수 없는 ‘경계’에 있는 것들을 찾아다니면서 나의 작업에 대한, 예술에 대한 생각은 [예술은 정의롭지 못한 심연에서 자라나고, 잔인함과 희생을 본질로 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점점 자라나게 되었다. 세계의 곳곳에서 비극적이고 참혹한 사건 사고와 희생자들이 만연하고, 현실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의 초현실적인 모습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것은 너무 현실적이기 때문에 초현실적인 이미지로 다가오기도하고, 내가 그 상황에 직접적으로 놓여있지 않기 때문에 비극은 한 순간에 죽음에 대한 판타스마고리아를 품은 이미지 혹은 어둠의 형이상학적 장소로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들은 슬프게도 우리와 아주 밀접한 현실임을 인정해야 할 수밖에 없다.
슬픔의 기저에는 삶과 죽음이라는 경계에 놓인 수많은 것들이 다양한 의미의 수수께끼들을 품고 새롭게 태어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애도의 작업을 통해 그들을 위로하고, 제단을 만들거나 위령의 날을 그린다. 눈이 먼 자들의 필연적 향연들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그들에 의해 고통 받은 자들과 무분별한 죽음을 애도한다.
이 무시무시한 두려움과 비극들은 환상적 알고리즘을 통해 완화되는데, 그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위이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비극적인 감정들을 가지고 우리의 앞에 서 있는 죽음을 향해 앞으로 나아간다. 그것은 삶에 대한 대항이자 무기력에 대한 반항이고 그 비극의 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황홀함과 고통의 이면이 섞인 알 수 없는 그 무엇이다. 나는 그것을 작업 안에 표현하려 하는 것이다.

최근에 나는 <위령의 날, 맬러카이! 맬러카이!>와 <희생자들>이라는 작업을 했는데, 맬러카이는 헤브라이어로 ‘나의 사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다른 의미로는 호모섹스(homosex)의 속어이기도 하다. <위령의 날> 작품 안에는 작년 유기견 보호소에서 데려온 (한쪽 다리가 불구인) 나의 개가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이 쓰는 베일인 부르카를 뒤집어쓰고 스핑크스처럼 앉아 있고, <희생자들> 작품에서는 털이 수북한 원숭이의 옷을 입은(원숭이이거나) 자가 해골가면을 쓰고 자기 자신을 거울에 비추며 앉아 있다.
삶의 거대한 괴물은 우리 인간이 가진 야만성을 잠식시킬 만큼의 허구적 욕망, 부풀어 오르는 무지와 무관심, 이기주의와 냉소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잔인함과 희생은 아무리 눈을 감고 보지 않으려 해도 보지 않을 수 없고, 반드시 마주하여야 하는 것이다. 나는 현실을 거시적으로 보는, 얇고 넓은 셀로판지를 눈앞에 두고 세상을 보는 낭만주의자가 아니라 그 현실을 비틀어보고 완화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고 애도하고자 하는 예술가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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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o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