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2024. 1. 4. 13:45

2024년을 새로운 이슈로 시작하나 싶었지만 결국 새로운 이슈는 없었다. 12월 말, 나는 이른 새벽 출발해 익숙한 병원에 도착했다. 병원 역을 나오자마자 흰 눈이 펑펑 내렸다. 여느때와 비슷하게 대기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누웠다. 그날은 내가 가지고 있던 냉동 배아의 마지막 이식날이었다. 이번 배아는 눈사람처럼 생겼다.(괜히 귀여웠다.) 이식은 금방 끝났고 잠깐 누워있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 나왔다. 음. 왜 눈물이 나지? 하면서 머릿속에 떠오른 건 매번 동생 이야기를 하며 울던 아기의 얼굴. 밤마다 나에게 외치며 울었던 말…"나만 동생 없어!" 그리고 어젯밤에는 "두근두근 설렌다." 는 그런 말까지 했던 터 였다. 아기는 나보다 더 많은 기도를 하고, 더 간절하게 염원 하고 있었다. 2년 내내 내 배안에 왜 아기가 없는지에 대해 집요하게 물어온 아이였다. 그런 간절한 마음을 모르는건 아니지만, 아기를 낳고 육아를 하며 작업을 해온 그 시간들이 갑자기 폭풍처럼 몰려오더니 걷잡을 수 없이 많은 눈물이 눈에서 뿜어져나왔다. 그 힘든 시기를 다시 겪게 될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고, 이렇게 아기가 슬퍼하는데 왜 계속 이 몸뚱이는 실패만 하는지에 대한 마음도 있었다. 정말 다시는 겪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 모든 출산의 과정이 나에게 너무 지옥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출산할때의 그 트라우마가 나에게 제발 다시는 겪지 말라고 말하고 있었는데... 내가 지금 여기에 누워있다니. 인생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며 그렇게 눈물을 꾸역꾸역 삼키는데도 목구멍에서부터 울컥거려 자꾸만 뿜어져 나왔다.

한편으론 이런 감정을 느끼게 해준 나의 아기에게 고맙고, 또 마지막이 될지 모를 이번 이식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 떨리기도 하고, 걱정도 되고, 많은 복잡한 감정속에 10분간 마음속 폭풍을 잠재우려 노력했다. 시간이 흘러 일주일이 지나 새해가 되면서 테스트기에 손을 댔는데 결과는 뭐 뻔하게도 실패였다. 아침에 '엄마 뱃속에는 아기가 없다.'고 말하자마자 아기는 소리를 지르며 '엄마가 밉고, 싫다.'고 했다. 그리고 '엄마는 내 엄마가 아니야.'라는 막말까지 했다. 그리고는 또 화가난다며 엄마를 꼬집었다. 그러더니 엉엉 울면서 미안하단다. 엄마를 사랑한단다. 아기의 폭풍같은 감정 변화에 나도 쉽지 않은 아침을 맞았다. 속상해서 엉엉 우는 아기에게 '이건 엄마 잘못이 아니다.'라고 말했지만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뭐든 쉽지 않은 삶이다. 오늘은 더 더욱 쉽지 않은 아침이었고. 엄마에게 아기는 너 하나면 된다는 걸 잘 이야기했는데도 자기는 동생이 필요하다고 한다. '나는 우주에 하나밖에 없는 너의 엄마고, 너 또한 우주에 하나밖에 없는 나의 아기야.'라고 이야기했더니 엉엉 울며 계속 미안하다고 했다. 아기의 마음을 달래주고 작업실로 돌아와 수업을 했다. 그리고 이제는 올해의 계획을 세울 수 있겠구나, 보류해두었던 많은 일들을 시작해도 되겠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하늘이 나에게 더 이상 아기를 주지 않는 이유가 있을거라 생각했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 마음이 후련했다.

난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했다. 나보다도 내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 한 해였다. 그리고 이제는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해 연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기로 한다. 아기의 속상한 마음은 어쩔 수 없는 것이고 세상에는 원하는 걸 다 가질 수 없으니 말이다. 이제 24년 앞으로가 기대된다. 또 어떤 작업을 할까 내심 설레는 순간이다.^^

'Dia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현타오는 요즘 근황  (1) 2024.04.25
이런 저런 이야기들  (0) 2024.02.15
오랜만에 피아졸라  (0) 2023.10.19
상반기 근황 + 시험관  (1) 2023.05.15
봄이 왔다.  (0) 2023.03.13
Posted by go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