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표 스페이스 기획 전시인 <키우고 돌보고 함께 커간다>는 내가 아기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기획자이신 두여자(신하정, 임진세)작가님이 함께 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주셨다. 그때는 전시를 어떻게 풀어야할지 너무 고민이 됐고, 내 체력도 엉망인데다 오일 페인팅을 하고 싶은데 할 수가 없어서 참여 의사를 바로 전달하지 못했다. 그런데 페인팅을 하고 싶은 마음 = 욕심을 꾹 누르고 다른 형식으로 전시한다면 가능할 것 같았다. 그 다른 형식이라는 건 내가 육아를 하며 매일 3-4벌 씩 환복하던 모유자국 티셔츠를 활용하는 것이었다. 사실 모유수유를 하며 수유복도 몇벌 사뒀었지만 주구장창 모유가 흘러내리는 탓에 수유 패드고 수유복이고 뭐고 다 귀찮아져서 10장을 사두고 계속 환복했던 것이다. 그 티셔츠들을 가지고 작업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작업으로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는 하루에 여러벌씩 환복하는 걸 그만두고 하루에 딱 한장을 입고 있기만 했고, 퀘퀘한 냄새와 아기의 침, 이유식 흔적, 모유자국 등등이 모인 10장의 좋은 캔버스가 마련 되었다.
그 중 가장 큰 흔적인 모유 자국들은 매번 같은 자리에 묻어버려서 매일같이 빨아도 지워지지 않았다. 그 흔적들이 레이어처럼 쌓이고 쌓여서 누런 자국모양을 따라 곰팡이가 생기기도 했다. 24시간을 쉬지않고 육아를 하고 있으면 마치 육아 자체가 반복적인 '명상'처럼 느껴질때도 있었는데, 그런 반복적인 일들이 시간의 흔적으로 남아 곰팡이가 되는 과정은 경이롭기까지 했다. 그렇게 나온 '흔적 시리즈 _모유와 곰팡이 티셔츠 위에 텍스트 드로잉, 무지 티셔츠, 2020' 이 작업은 2019년에 했던 죽음의 흔적에 대한 작업들과 연결 지점이 있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비슷한 방향으로 흘러가다니, 작업을 할때는 그 어떤것도 우연은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참 신기했다.
이유식 작업 또한 내가 의도하지 않은 작업이긴 마찬가지다. 아기가 6개월이 되자 이유식을 시작해야 했는데 나는 초기 미음- 죽 이유식으로 가는 평이한 이유식 방식이 나와는 맞지 않는 것 같아서 (아기도 잘 먹지 않았고) 그냥 바로 아이주도 이유식을 시작했다. 음식 본연의 맛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고, 스스로 선택해서 먹는 즐거움을 빼앗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기는 그렇게 6개월부터 소근육을 쓰기 시작해 지금은 밥풀 하나, 연두부 가루(?)까지도 엄지와 검지로 집을 수 있게 됐다. 아기가 자라면서 뱃고레가 커지고, 고형식을 잘 씹을 수 있게되고, 양이 늘어나면서 나의 아이주도 이유식은 종류가 더 화려해졌고 작업을 하듯 음식을 만들었다. 매일 매일 오븐을 돌리고 아기가 먹을 수 있는 간식이나 빵을 구웠다. 아기는 매번 음식을 바닥에 던졌고 나는 그걸 닦고 닦고 닦고...내 손에서 물이 마를 틈이 없었다. 나는 원래부터 주방노동을 극혐하던 인간이었는데, 그게 아기로 인해 완전히 뒤바뀌는 경험을 했다. 아기를 잘 먹이기 위한 나의 노력과 시간들이 축적되어 사진으로만 기록해도 좋은 작업이 될거라며 주변에서 응원도 많이 해줬다. 그렇게 작업을 하듯 육아를 열심히 하며 이유식에 나의 예술혼을 불태운 결과 이렇게 100장의 이유식 작업으로 전시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유식 작업의 제목은 '오늘의 사랑노동'. 3X5사이즈(8.9X12.7cm) 사진 100장, 가변 설치, 2020.
전시는 내년 1월 15일까지다. 서울이 아닌 이천이라 멀긴 하지만, 근방에 계신 분들은 들러주셔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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