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선과 선원들 <뿔> 앨범이 나오고나서부터 종종 작업할 때마다 틀어놓고 듣긴 했는데, 가사를 이렇게 곱씹은 건 처음인 듯. 편선님은 시집을 내셔도 좋을 것 같다. 계속 가사를 읽고 또 읽고. 곡을 먼저 쓰고나서 가사를 입히는 것 같은데, 끊어서 들어가는 단어들이 연결되는 그 지점이 너무 훌륭한 거 아닌가. 좋다 좋아.
빠르게 휜다 사방이
가늘고 길다 시간이
틀림이 없다 사람이
사람으로부터 가장 먼
새들이 운다 끝없이
타들어 간다 여름이
되풀이 된다 사람이
사람으로부터 가장 멀리서
우리들은 매일 오지요
나는 아무 것도 기억하지를 않아
우리들은 매일 낳지요
나는 아무 것도 사랑하지를 않아
우리들은 매일 오지요
나는 아무 것도 기억하지를 않아
우리들은 매일 낳지요
나는 아무 것도
사랑할 수가 없는 발생
아무도 없는 시장에 앉아
울먹이며
노래를 시작합니다
말 같잖은 말 집어치워
노래를 노래합니다
사람이 아닌 사람을 위한
너의 목소리
달 달 무슨 달 쟁반같이
/
새파랗게 멍든
네 어미의 가장 성스러운
숲 속으로 흰 천을
두르고 당신의 사슴
같은 벌레는 빠르게
오래된 나무를 기어올라
없는 바다에 쓸려
돌아오지 못할 만큼
멀리
어디까지 왔니?
아무도 못 보았니?
어디까지 왔니?
이게 바로 네가 원한 세상이야
어디까지 왔니?
아무도 못 보았니?
어디까지 왔니?
이게 바로 네가 원한 세상이야
이게 바로 네가 바란 세상이야
이게 바로 네가 원한 세상이야
이게 바로 네가 바란 말들이야
하나 둘씩 모습을 감추지 않고
솔직하게 자신의 뜻을 드러내며
하하 웃으며
너는 혀를 길게 뺀 유년기
그건 가장 처음 뱉은 거짓말
너는 명왕의 피를 이은 아이
그건 영원히 울리는 뿔피리의 끝
/
아니 아닌 말들이 아닌
밤이 아닌 말의 밤
아니 그리 두려운 밤은
오지 않아 오지 않아 네가
아닌 내가 아닌 모든 내 안에
들지 못한 내
아니 돼지가 아니 우는
물이 아닌 밤의 말이
되새김 되먹지 못한 머저리
내 손과 발 결박 결정 결과적인
부적절 부정 부조리 불행하고 늙고
보드라운 손
모든 곳에 있을 때
나는 꽃밭에서
너를 비웃는 사내
그 혀를 잘라요
눈이 아홉 개 달린 개
우리는 외계인
멀리 솟아오르는 지옥의 불길
손 내밀면 언제나 잡힐 것만 같던
네 어머니의 죄 없는 공장은
하이 앤 로우
추운 눈을 가진 사람
느리게 번져오면
가장 높고 귀한 이
옷 매무새를 풀어
머리까지 잠긴 채
숨을 멈춥니다
모든 것이 제자리인 세계
/
나뭇잎 사이로 시뻘건 태양
땅에는 내장을 흩뿌린 채
누워 동그랗게 뜬 눈으로 다가오는
제 자신의 섭리로
존재하는 죽음을 맞이할 제
어디에선가 들려오는
영롱한 방울소리
아이가 되었다
인사를 잘 한다
손뼉을 맞춘다
두 뼘이나 큰다
뺨을 맞게 된다
팔이 부러진다
속옷을 적신다
허무함을 안다
신문을 읽는다
담배를 태운다
사랑을 해본다
이별을 겪는다
아이를 낳는다
아침을 만든다
삶을 살게 돼버려
자연스레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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