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ks2010. 6. 21. 02:42
뭔가 단정짓기 어려운 그런 감정이 갑자기 마구 쏟아져나왔다. 새벽이어서 더 그랬나. 한편으론 기뻤고 그 낯선 시간들을 현재로 리와인드 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내 등뒤엔 항상 만개한 꽃이 있었는데,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어서 금방 져버리곤 했다. 만개한 꽃, 만개한 기억, 만개한 열망. 말과 글과 그림으로 표현되는 화려하고 빛나는 형식의 어깨위에 먼지를 탈탈 털어버려야 겠다. 그리고 나는 '사랑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시'를 아직 못봤는데 이 영화 진짜 보고싶다 너무.

이젠 올해 8월에 석사 졸업인데, 졸업을 한다고 크게 달라지는게 없다는걸 알면서도 왠지 속이 후련하다. 논문을 쓴답시고 붓도 들지 못한 내 선택이 나를 이렇게 우울의 끝까지 몰고갈 줄은 몰랐다. 당장이라도 작업실을 구해서 그림을 그려야한다고 상상하면 그것만큼 좋은일이 없을 것만 같다. 이제 일자리도 구했으니 한 시름 덜었고, 그만큼 예전처럼 시간을 쪼개어 쓸 수 있다는 생각에 뿌듯해진다. 시간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나를 옭죄겠지만, 그것마저 행복하다며 비명을 지를 것이 분명하니.
철학스터디를 하지 못하게 되서 혼자라도 책을 꾸준히 읽어야겠다고 다짐하는 중인데 과연 잘 될지 모르겠다. 철학 공부에 대한 생각들이 차츰 이전과는 확실히 달라지고 있는 건 분명하다. 인문학적 지식이 풍부한 분의 입담에 노이로제...는 아니고, 어떤 명확한 규준들로 세상을 보지 않기위해 공부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규준에 얽매이는 모습 자체가 모순이다. 내가 이런 말을 할 처지도 아니고 내가 그 모순의 수순을 따르지 않는다고는 말하지 못하지만 적어도 디테일한 차이를 존중할 줄 아는 논쟁이 된다면 더 좋지 않을까해서. 아. 어쨋거나, 자기 과시적 제스쳐 싫다.
나는 작업을 함에 있어 가장 필요하면서도 내 발목을 붙들고 있는 강박을 최대한 버리고 최대한 취해야 한다. 그래서 좀 더 동물적인 예술을 지향하고 싶다. 다른 의미에서의 매뉴얼, 경직, 보보 스텐손, 순수하다 못해 잔인한 욕망, 가난, 한꺼풀, 자아 도취, 잠금 장치, 경직된 글쓰기...회의 또한 달콤하다네. 음유시인 권기현의 말씀이야. 이 신새벽에 십일년만에 이런 이야기들을 붙들고 있다. 술좀 그만 마시고 종종 이야기좀 해. 이야기좀 합시다요. 난 이런 대화에 목마른 여자.

                                                        하 이집트의 서쪽 사하라 사막과 맞닿아 있는 곳,
                                                                         파니스 호수에서 2010

Posted by go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