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ks2011. 11. 11. 02:02


정복수 선생님이 개인전을 하시고 있는 사비나 미술관에 들렀다가 우연히 선생님을 뵈었다.
이번 전시의 제목은, '존재의 비망록. A memorandum of Existence.'
정복수 선생님의 작품들은 생경하면서도 아찔한 미소들을 품었다. 신체가 절단되고 내장이 튀어나오는 이미지들은 어쩌면 고통스럽고 혐오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가만히 지켜보고 있노라면 울룩불룩한 혀, 쌀알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것 같은 작은 입, 관람객의 눈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듯한 눈동자가 마치 어린아이의 것 같다. 그로테스크하지만 귀엽다. 화면위에서 움직이는 현란한 붓놀림의 흔적. 나는 그것을 보고 있다가 선생님께서 작업을 하시면서 얼마만큼의 희열을 느끼셨을지 상상해보았는데, 나중에 선생님께 여쭤보니 선생님은 근 40년 간 작업을 하시면서 한번도 행복한 적 없고 희열은 느낀적도 없고 작업이 마음이 든적이 없다 하신다. 외로움을 채워나가는 것이 작업이라고 말씀하시는 모습에 절로 숙연해질 수 밖에.
집착, 관심, 동요, 회고, 진실, 상처, 인기, 만족, 숭배, 혼란, 죽음, 격정, 고백, 충격, 은총, 각오, 번민, 영광, 회상, 허풍, 쾌락, 의견, 자유...이런 단어들이 화폭의 여기저기에 작은 글씨로 적혀있다. 아주 가지런한 글씨다. 집착과 죽음.
작업은 혼란과 삶의 위태로움속에서 이리저리 뒤적여지다가 곧 폭발하는 듯하고, 그러면서도 "세상이 지저분하다고 슬프지 말자"고 다독여주기도 한다.


울부짖으면서 꾼 꿈 / 모든것을 포기하면서 꾼 꿈 / 사람들한테 아픔을 주면서 꾼 꿈 / 그러한 꿈을 이루는 것이 그림이다 / 그림은 나를 찾아 떠나는 / 머나먼 방랑이다 / 그림은 방랑의 흔적일 뿐

작품 <십계명>의 오른쪽 귀퉁이에 쓰여진 글이다.
오늘 선생님을 뵙고서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릴 것이며 어떻게 살아가는 삶이 나를 위한 삶인지, 의연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희열과 고통. 빈자리를 메꾸는 것. 물질적 풍요의 허상, 미래에 대한 작은 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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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o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