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날은 아기를 봐줄 사람이 없어 아기를 안고 버스를 타고 작업실에 왔다. 평일엔 어린이 집에서 아기를 봐주는 동안 그림을 그리지만 주말에는 변수가 많다. 지금까지 양가 조부모님들의 손을 빌리지 못해 더 더욱이 그랬다. 마음이 급했던 나는 그림 그릴 캔버스의 대각선 뒤쪽 소파에 아기를 앉히고, 유리 테이블 위에 영상을 틀어놔줬다.(어쩔 수 없었다) 그러고 나는 그림 그리느라 정신 없어서 캔버스만 보고 있었는데, 순간 콰당! 소리가 나서 뒤돌아보니 아기가 완전히 대자로 뻗어 바닥에 널부러져서 자지러지게 울고있었다... 너무 놀라 아기를 덜렁 들어올리고 보니 아기의 입이랑 턱에 피가... 어디에서 피가 나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입 바깥과 안쪽 둘다 상처가 난 것 같았다. 아마도 소파에 서 있다가 미끄러져서 유리 테이블에 박으며 넘어진 듯 했다. 아기 얼굴에 피를 닦고 있으니 내가 뭔짓을 한건가 싶어 작업실에 간지 한시간 반만에 다시 아기를 안고 버스를 타고 집에 왔다. 집에 와서 아기 몸을 구석 구석 보다보니 입가에 붓기가 가라앉으면서 상처가 보였는데 딱 유리 모서리 자국이었고, 갈비뼈 쪽에도 주욱 그어진 상처 하나가 보였다. 옷이 두꺼워 상처가 나지 않았을거라 생각했는데 그 상처를 보니까 좀 세게 부딪히긴 했구나, 정말 천만 다행이구나 싶었다. 아무튼 나는 너무 속상했는데 애기는 아무렇지 않은 듯 웃으며 잘 놀았다. 마음이 무지 힘들었다. 마포문화재단 공연을 마치고 돌아온 남편은 위경련으로 쓰러졌고, 난 누워서 모기를 13마리째 잡았다. (어디서 이렇게 모기가 나오는거냐.....ㅠㅠ) 그래도 더 크게 다치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 생각하며, 내일은 오늘보다 나은 하루, 아프지 않은 하루가 되기를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