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시절, 안창홍 선생님의 작업을 유난히 좋아했었다. 도서관에 가서 그분의 자료들을 찾아보고, 전시장이나 미술실기실에 돌아다니는 도록도 찾아보며 난 선생님의 작품세계에 심하게 매료되었다. 그 당시 내가 보았던 그림 안의 적나라한 표현과 쌕쌕한 컬러들이 전달하던 그 느낌을 지금도 지울수가 없다. 그렇게 내 마음속 0순위 원로 작가님으로 생각하고 지내다가 대학생이 되었고 3학년 즈음 학교에서 우연한 기회로 선생님을 만났다. 그 해의 예술제는 작가와 학생의 연계작업이 주제였다. 선생님은 학생들과 계속 연락을 주고받으며 작업 진행을 도와주셨는데, 나는 그 당시 누드 자화상으로 <다리를 벌린 상태로 허리를 180도 접어서 음부가 화면 앞으로 보이게 한 그림>을 그렸고, 음부에는 아주 큰 홍합을 붙였다. 그 당시 나는 수산시장을 돌아다니며 가장 크기가 큰(손바닥만한) 홍합을 찾아냈는데, 까만 털도 달려 있어 외관이 흉물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홍합은 건조된 것이 아니었기때문에 나는 그 손바닥만한 홍합을 찌고, 말리고, 오랜시간 완전 바짝 건조하고, 겉에 에폭시로 코팅까지 입혔다. 그러고나니 홍합의 크기는 처음의 1/3로 줄어들었다.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선생님은 내 작업 과정에 유난히 관심을 가져주셨다. 그 이후부터 난 선생님과 연을 맺고 자주 연락하고 지내는 사이가 되었다. 요즘에는 이틀에 한번꼴로 유머나 가십을 카톡으로 보내주시는데, 뭔가 저질스럽고 극단적인 사회 곳곳의 일들을 공유하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대화의 마지막은 항상 절대로 그림을 쉬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지금 이 시간이 지나면 절대로 돌아갈 수 없으니 항상 최선을 다해 살라고.
얼마전 노무현 서거 5주년에...이런저런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누던 중, 울적해진 내게 힘을 주셨다. 선생님은 이제 작업을 할때마다 힘들면 생각나는, 내게 없어서는 안되는 소중한 분이 되었다. 오래오래 예술가로 남아주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오래오래 건강하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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