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2014. 3. 15. 13:37

2010년에 탈탈 털어 이집트에 다녀온 뒤 내 통장엔... 여행갔다 남겨온 돈 50만원이 전부였다. 그걸로 1-2달을 버텼고, 버티면서 일자리를 알아봤었다. 그리고 빡세게 알바를 뛰면서 작업실을 찾기위해 발품을 팔았고, 보증금 200만원짜리 옥탑방을 찾았다. 주인 아저씨께는 100만원씩 두달을 후불로 드릴테니 작업실을 좀 쓰면 안되겠냐고 사정을 이야기했고, 아저씨는 내가 불쌍해보였는지 그러라고 말해주셨다.(아주 고약하고 독한 고집쟁이 아저씨였는데...) 알바비가 통장에 입금되기 무섭게 100만원씩 두달을 보증금으로 보냈고, 이후 몇달간 그 옥탑방에서 작업을 했다.

옥탑은 2개의 방이 있었고 옆집은 조선족 부부가 살았다. 그런데 낮에는 여자가 있고 밤에는 남자가 있었다. 각자 다른 시간에 일을 하는 부부였다. 밤이 되면 조선족 남자가 옥상에 웃통을 벗고 서서 내 방 창문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나와 몇번 눈이 마주치기도 했다. 여름이라 창문을 열어놨어야 했는데, 남자가 무서워서 나는 꽁꽁 문을 닫고 작업을 했다. 화장실은 공동으로 사용하는 것이었어서 남자가 없는지 꼭 확인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2010년은 그렇게 덥고 힘들고 어렵게 살았던 기억뿐인데, 그 와중에 또 논문을 쓰느라고 정신이 완전 맛탱이 가버려서 더욱 힘들었다. 그래도 나는 논문에 점점 욕심이 생겨 94페이지나 써버렸다. 석사 논문을 쓰면서는 박사 논문을 쓰고싶다는 생각을 계속 했다. 그러나 나는 너무 거지였고, 박사 논문을 쓰고싶을 뿐이지 학위에 대한 욕심은 없어서 쉽게 포기가 되었다.

못다한, 아쉬웠던 여행이 계속 내 속을 뒤집어놓았어서 0원부터 돈을 다시 모았다. 2년 동안 2개의 알바를 하며 돈을 모아 제작년 3달간 여행을 다녀왔다. 그리고 2012년 다시 내 통장은 0원이 되었고 다시 알바를 2개씩 뛰며 작업을 했다.

 

4년이 지난 지금은 2010년과는 정말 다른 상황에 있다. 그때보다 마음의 여유도, 경제적 여유도 생겼는데 나는 그때처럼 발품을 팔며 사정을 하며 작업실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 이건 도대체 무슨 상황인걸까. 어제 문득 내 스스로에게 물어봤다. 지금 너 뭐하고 있냐고. 공간에 대한 투정아닌 투정을 부리며 작은 공간에서 할 수 있는 작업을 생각하고 있으면서, 왜 그때처럼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거냐고. 되돌아보면 4년전의 나는 벼랑끝에 몰린 사자같은 느낌이 든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그때의 힘듦을 감내하고 싶지 않은것도 같다. 조급하게 생각한다고 작업이 잘 되는것도 아니고, 내 스스로를 너무 몰아가고 채찍질하는 일도 지치는 일이고. 자연스럽게 물이 흘러가듯 내 인생이 그렇게 흘러가면 좋겠다. 상반기 다시 1개의 알바가 마무리되면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시기가 올 수 있을 것 같다. 오롯이 작업만 하며 살아가는 것도 지금 내 상황에서 정답은 아니고, 그렇다고 돈만 버는 건 미친짓이다. 무엇이 중도있는 삶인지 내 안에서 조율을 하는 것 자체가 가장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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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oun